호의
어떤 면에서 고대인의 의식 수준은 현대인보다 월등히 높았습니다. 그 기록인 성서는 아직도 연구대상이죠. 유교, 도교, 불교의 경전들도 그렇습니다.
성서는 창조주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는 면에서 다른 경전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표현의 정교성과 충실성에 있어서도 그러한데 사도들의 필서에 그런 점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죠. 물론 표현보다는 내용에 더욱 두드러지죠. 필서라고 하는 이유는 저자는 창조주이기 때문이죠.
창세기의 필자는 모세이죠.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호의적으로 보셨으나, 카인과 그의 제물은 조금도 호의적으로 보지 않으셨다.(창 4:4,5)
여기서 아벨의 제물, 가인의 제물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가인과 그의 제물과 같이 표현한데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물 이전에 사람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카인은 몹시 화가 났고 낙심했다. 여호와께서 카인에게 물으셨다. “너는 왜 그렇게 화가 났고 낙심하였느냐? 네가 돌이켜 선을 행하면 다시 호의를 얻지 않겠느냐? 그러나 네가 돌이켜 선을 행하지 않는다면, 죄가 문에서 도사리고 있으니 죄의 욕망이 너를 지배할 것이다. 네가 그것을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창 4:5~7)
마음은 그 무엇보다도 더 믿을 수 없고 무모하다.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겠는가? 나 여호와는 마음을 살피고 가장 깊은 생각을 조사하여 각 사람에게 그 길에 따라, 그 행위의 열매에 따라 갚아 준다.(예레미야 17:9,10)
66권의 모든 성서는 한 권으로 묶일 정도로 내용이 온전히 조화를 이룹니다.
낙심이나 분노는 감정과 그 표현이죠. 창조주는 그것을 살피긴 하지만 심판의 대상은 아닙니다. 인간의 떠오르는 생각의 무모함은 본래적인 것입니다. 그에 따른 감정도요.
돌이켜 선을 행한다는 표현은 그 이전에 그릇된 행함이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욕망이 자라면 죄(행동, 행위)를 낳고, 죄가 이루어지면 죽음을 낳습니다.(야고보 1:15)
인간이 생각과 감정만으로 심판을 받지 않지만 그것을 발전시키면 즉 자라게 하면 죄의 행위를 유발합니다. 그 궁극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인간의 죄는 본질상 크게 두 가지입니다. 두 번째는 인간을 해롭게 하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이 행복인데 그 목적을 깨트리는 것이죠.
첫 번째는 숭배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해가 되지 않아도 더 우선적이죠. 십계명의 처음 네 번째까지가 그와 관련된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 창조주이며 우주의 최고통치자에 대한 순종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그것인 순간적인 혹은 눈앞의 이득이나 쾌락을 가져오기 때문이죠. 하나는 증오나 분노, 시기심, 질투, 적개심, 복수심등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것을 다스리지 못하여 상대에게 해를 깨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죠.
행위의 열매라는 표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악한 의도, 저의가 있는 행동을 했어도 최종적으로 그 의도된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심판에 있어 참작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생각과 마음의 중심을 정확하게 간파할 수 있죠. 그 인식, 욕망, 의도, 동기, 감정 그리고 진실성, 사람으로서의 됨됨이 등등.
그리고 그에 따른 호의를 하느님이 인간에게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호의의 표현은 그에 따른 행위 즉 선행으로 나타났을 때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도 창조주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으므로 인간에게도 그런 기능이 있습니다.
사람의 영은 여호와의 등불, 그것은 그의 가장 깊은 곳을 샅샅이 살핀다.(잠언 20:27)
영이 있는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살필 수 있죠.
내 마음의 묵상이 당신에게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시 19:14)
다윗도 자신의 묵상 자체를 자신도 인식하고 있었고 창조주도 보고 계심을 알고 있었죠.
물론 다윗은 창조주로부터 호의를 듬뿍 받은 사람이죠. 그의 심각한 죄악들에도 불구하고 다 용서를 받았죠.
비결은
“오 나의 하느님, 내가 당신의 뜻을 행하기를 좋아하니, 당신의 법이 내 속에 있습니다.” (시 40:8) ... 그것은 온종일 나의 관심사입니다.” (시 119:97)
창조의 법에 대한 인식이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속에 그것이 있어야 창조주 관점에서의 선을 행할 수 있고 영원한 행복한 삶이라는 호의를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