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화의 의미
신체적으로 쾌적하게 생활하려면 냉장고, 에어컨 같은 전자기기들이 있어야죠. 휴대폰이나 노트북, 카드 같은 것도 원활한 사회생활에 필요한데 있으면 간혹 그런 것들에 대해서 '얘가', '쟤는' 하면서 의인법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꼭 그것들이 인격체인 것처럼 친근하게 느끼는 것도 삶의 생동감을 높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연구가들은 모든 존재에 의식이 있다고 주장을 하기도 하죠. 심지어 전자 같은 것도 꼭 의식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고도 합니다.
'무엇' 혹은 '어떤 것'을 '누구'인 것처럼 표현하는 의인법은 성서에 집중적으로 사용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이여, 들어라. 땅이여, 주의를 기울여라." 이사야 1장 2절의 이 표현은 의인법이고 은유법이라는 시각으로 볼 수 있죠. "지혜가 외쳐 부르고 있지 않느냐? 분별력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 않느냐?"라는 말로 시작하는 잠언 8장은 전체가 지혜를 의인화하고 있죠. "사망이 왕노릇하다.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다"와 같은 의인법은 흔히 쓰이죠. 특히 성서에서 성령에 대해 의인하하여 표현하는 사례가 많아 그것이 실제로 독립적인 인격체가 아닌가 하는 오해를 낳기도 하죠.
그것은 우리 안에 머물러 있고 또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을 진리 때문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과분한 친절과 자비와 평화가 진리와 사랑과 더불어 우리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요 2 :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과분한 친절이 여러분이 나타내는 영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의 마지막 구절이죠.
위 요한 2서의 인사말에서는 진리, 과분한 친절, 자비, 평화, 사랑이 마치 개개의 사람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죠. 빌립보서의 구절은 과분한 친절이 영과 함께 있기를 바란다는 심오한(?) 의미가 담긴 표현이 있죠.
인간들은 신체적, 감정적, 사회적 삶의 쾌적함을 위해 물질적 기기나 애완동물 등을 가까이 두고 소중하게 관리하죠. 구체적으로 느끼면서 애착을 갖죠.
성서에서는 진리나 사랑, 평화, 지혜 등등의 영적 사물들을 마치 구체적인 인격체인 것처럼 묘사합니다. 그것은 인간 본연의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하니 항상 주변에 그러한 것들이 건재한지 확인하고 필요할 때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되라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음향기기가 있다면 원할 때 양질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고 냉장고가 있다면 더울 때 시원한 음료를 마실 수 있죠. 반려동물이 건강한 상태로 가까이 있다면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겠죠. 그렇듯이 진리가 항상 옆에 있나요? 어떤 영적 의미에서의 진정한 평화가 있나요? 사랑은 어떠한가요? 의는요.? 믿음은요?
사실 그것이 뭔지도 모르고, 있는 건지도 확인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옆에 두게 될 수는 없죠. 물론 돈을 주고 살 수도 없는 것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체나 동식물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확연히 느끼죠. 필요한 것은 구해 가까이 두죠. 그러나 인간의 삶의 위해 본질적으로 더 그리고 우선적으로 필요한 영적인 것은요? 사람들은 그런 것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육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영적인 사물을 나타내는 용어를 사용하긴 해도 잘못 사용하고 있죠. 신권적으로 정의된 개념상 사랑이나 의, 믿음, 소망, 평화 같은 것들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죠.
자신의 영적 영역가운데 -물론 그런 이해의 눈이 있어야 하지만요- 창조주가 곡 필요하다고 하여 사람들에게 값없이 제공하는 그런 영젹 사물들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기 위해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