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운 기록들은?
인간이 마치 그런 유전자가 있는 것처럼 역사적으로 폭력은 일반화되어 있고 심지어 일상적이기까지 한데 그 극단적인 결과인 살인에 대해서도 그러하죠. 이는 표범이 산양을 잡아먹는 것이나 같은 것이나 되는 것처럼 자연의 섭리인 양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 번째 인간인 가인은 그의 동생을 때려 죽었죠. 그 후손인 라멕 역시 살인을 하였는데 그들인 경우 그런 행위를 하고 나서 감정적으로 크게 격앙된 상태임을 알 수 있죠. 그것이 정성적인 행위가 아니었음을 느끼기는 한 것이었죠. 이 폭력성은 영적인 존재에게도 있었음이 시사되는 기록이 성서에 있죠 있죠. 홍수 이전의 세상은 그들이 주도하였죠. 인간으로 화신 하여 인간 여자와 결혼하여 거인들을 낳았고 땅은 저주받은 상태라 힘든 노동이 필요하였는데 그들은 세상을 지배하여 폭력적인 영으로 통치하였죠. 지구 곳곳에서 발견되는 많은 홍수이전 문명에 대한 유적과 유골들에서 그런 흔적들이 역력히 나타나 있다고 하죠.
홍수 이후에도 노아의 후손들은 이러한 영향으로 급격히 폭력적이 되어 갔죠. 성서의 기록과 다른 문헌들에서 유추해 보면 함의 후손 중 유력한 한 사람인 니므롯이 군사조직을 만들어 셈의 후손들이 영역을 공격하는 전쟁을 일으켰다고 하죠.
역사에도 유력한 지도자들이 많은 정복전쟁을 일으켜 단기간에 많은 땅을 정복한 기록들이 있죠. 그 와중에 발생하는 수많은 살인은 당연한 것으로 비극으로 간주되지도 않습니다. 기록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고 대략적인 수치가 기록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 통치자의 개인 활동에 대한 자세한 기록에 비해 거의 비중이 없죠.
근래에도 마오쩌뚱은 국민당과의 전쟁에서 이겨 중국본토 전역에 대한 통치권을 장악했는데 그 와중에 죽은 사람들에 대한 것은 그의 사적인 기록에 비해 없는 것과 같죠. 김일성도 한반도에서 그렇게 하고 싶어서 전쟁을 일으켰는데 3년 정도의 기간 동안 서로 간에 수백만의 살인만 발생시키고 성공하지 못했죠.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의 민족이라고 하면서 그렇게 했죠. 월남전에서의 활약 때문에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명이 붙긴 했는데 아마도 그 잔학성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양민학살로 많은 사람들이 장기형으로 육군 교도소에 복역하기도 했죠.
이러한 폭력성은 종교인들이라고 예외가 되지 않죠. 1,2차 대전 때는 기독교 조직에서 징병에 큰 협조를 했다고 하죠. 교회로 젊은이들을 불러 모아 축복하는 기도를 해주고 살인을 독려했죠. 십자군 전쟁인 경우 전장에서 마음껏 죽이라고 하면서 많이 죽일수록 하늘에서의 상이 크다고 부추겼죠. 죽이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이죠.
이슬람교도들도 적들 가운데서 자폭을 하여 사람들을 살상을 하면 너는 죽는 순간에 천국 간다는 식으로 확신을 심어주어 심지어 어린 소녀도 기꺼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죠.
강자가 자신의 필요에 의해 약자를 죽이는 것은 진화론으로도 지지되고 종교도 합세를 하죠.
인간은 정신적으로 뿌리 박힌 폭력성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를 창조의 결함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는 단지 인간의 자유가 그만큼 절대적으로 허용되어서 멸망 때 번명의 여지가 없게 되는 근거가 될 뿐입니다.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인간들이 전적으로 자유롭게 통치를 해볼 수 있게 한 것이므로 노아의 홍수때와 같은 별망을 가져와도 감사와 찬양을 받게 될 뿐입니다. 의로운 사람들로부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