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여름이불

이불 장만하기

by 진화정


그제 여름이불을 샀다. 덥고 습한 여름엔 땀이 많이 나니까 자주 세탁해야 하는데, 번갈아 깔아놓을 것이 마땅치 않았다. 요즘엔 최첨단 소재로 만들어진 냉감이불이 잘 팔리는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70만 원짜리 매트를 10만 원에 판다는 광고가 자꾸 떴었다. 나도 몇 번 인터넷으로 이불을 구매했었는데, 절반은 괜찮았고 나머지 절반은 별로였다. 특히 여름이불은 두세 번 세탁하다 보면 하얗게 보풀이 일어나거나 얇다 보니 쉽게 닳기도 했다. 이불이 한 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되도록 오래 쓰니까 직접 가게에 찾아가서 물어보고 만져보고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름 바쁜 틈을 내어 이불가게에 갔는데, 다행히 세일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 화장실 갔던 직원이 가게로 돌아와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여름이불 사러 왔는데요, 좀 보여주시겠어요?"

"이쪽에 있는 것들이 여름이불이에요, 사실 덮는 이불보다 여름매트를 추천드려요."


과연 추천해 주신 매트는 생각보다 도톰하면서 보드랍고 질감이 시원했다. 게다가 결 따라 박음질이 꼼꼼하게 되어있어서 이불을 여러 번 세탁해도 변형될 염려가 덜 하겠다 싶었다. 은은한 회색과 시원한 하늘색, 두 가지 종류의 매트가 있었다.


"회색이지만 짙은 회색이 아니고 흰색에 가까워요."


아, 정말 깔끔하고 우아해 보이면서 때도 덜 타서 관리하기 무난할 것 같은 색상이었다. 하늘색 매트도 예뻤지만, 나는 왠지 회색 매트가 더 마음에 들었다.


"그럼, 회색으로 퀸사이즈 하나랑 싱글사이즈 하나 주세요. 그리고 덮을 것도 봐야겠어요."


직원은 그 색상으로 내가 말한 사이즈의 재고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한참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직원은 다행히 하나씩 남아있다고 하면서, 화려한 꽃무늬가 프린트된 덮는 이불을 추천해 주었다. 한 면이 전부 꽃무늬로 되어있어 제법 화려하긴 했지만, 색상이 단일한 회색빛이라 차분해 보였다. 만져보니 두께도 적당하고 시원한 소재인 데다 질감도 고슬고슬해서 마음에 들었는데, 아쉽게도 싱글 사이즈는 재고가 없었다. 직원은 재빠르게 다른 이불을 추천해 주며 말했다.


"이 이불은 제가 집에서 덮고 자는 이불인데, 정말 좋아요. 가볍고 시원하고. 게다가 색상도 너무 예쁘죠. 아까 신혼부부가 와서 이 이불 괜찮다고 살펴보고 갔다니까요."


겉은 옅은 하늘색, 그리고 속은 하얀색인데 재질이 서로 달랐다. 겉은 면처럼 보드라웠고 속은 고슬고슬했으며 하얀 쪽의 가장자리가 레이스처럼 살짝 나와있어서 예쁜 장식이 되었다. 두께가 아주 얇지는 않았지만, 나는 오히려 그게 좋았다. 한여름엔 이불을 발로 걷어차고 뒹굴거리며 잘 것이므로, 초여름부터 늦여름까지 시원하게 덮으면서도 새벽녘 다소 쌀쌀한 기운까지 아늑하게 만들어줄 이불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정도면 덮었을 때, 무게감 때문에 답답하거나 더울 것 같지는 않았다. 얇은 이불의 두 면 사이로 공기를 머금을 수 있는 공간의 여유가 느껴졌다. 보송보송하고 폭신폭신한 느낌마저 갖게 해 줄 이불같이 보였다.


그런데, 가격이 만만치 않았기에 속으로 살짝 멈칫하기는 했었다. 이윽고 적어도 십 년을 쓸 이불이라는 생각과 우리 삶의 절반을 누워서 보낸다는 생각을 하면서 결코 헛된 투자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왕 사는 김에 베개 커버도 세트로 부탁했다. 직원이 모두 계산을 해보니 40퍼센트 할인을 했는데도 70만 원이나 되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인터넷으로 70만 원짜리 매트를 10만 원에 판다는 광고가 떠올랐지만,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직원은 지금 행사 중이라 부엌매트나 베개커버 없는 속베개 둘 중에서 하나 증정한다고 했다. 나는 별 고민 없이 속베개를 선택했다. 직원은 그 속베개가 경추베개인데, 실제로 5만 원에 파는 제품이라고 설명해 주면서 이불세탁망 세 개도 덤으로 챙겨주었다.


그 사이, 가게 밖 차 안에서 아기와 함께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신랑으로부터 전화가 몇 번 왔다. 주차가 안 되는 도로였기에, 계속 가게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던 모양이다. 핸드폰 너머 신랑은 언제 끝나냐는 말 이외엔 별말이 없었지만, 나는 신랑이 엄청 짜증이 나있을 거란 걸 모를 리 없었다. 미안했지만, 주부인 나에게 있어 오늘은 이불을 반드시 사야만 하는 날이었다. 너무나 빠듯한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며 직원에게 결제할 카드를 건네주었다.


"지금 어디야? 이제 이불 다 사고 나가려는데."


직원이 이불을 가지런히 정리해서 이불가방에 넣어주자, 서둘러 이불가게를 나왔다. 혼자 양손에 들기엔 꽤 무겁다는 것을 아는 직원이 이불가방 하나를 들어주었다. 차 트렁크에 두 개의 이불가방을 싣고, 나도 아기가 앉아있는 뒷자리에 몸을 던지며 말했다.


"아, 정말 미안해. 뭐라 할 말이 없네."

"계속 뱅뱅 돌고 있었다니까, 시간도 별로 없는데."

"진짜 미안해. 그런데 직원분이 설명을 참 자세하게 해 주셨고 재고 알아보느라 시간도 좀 걸렸고."

"애는 자꾸 보채고, 정말."


이럴 땐, 그냥 처음부터 미안하다고 이해해 달라고 이야기하는 게 맞다 싶다. 어쨌든 신랑은 이래저래 애간장이 탔을 것이다. 그래도 이만하면 신랑은 양반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해서 나는 아기를 안고 차에서 내렸고 신랑이 엘리베이터 안에 커다란 이불가방 두 개를 밀어 넣어주었다. 신랑은 아직 화가 덜 풀렸는지 표정이 굳은 채, 다음 약속장소로 향했다. 그럴 만도 했다고 스스로 돌아보며 현관에 들어서서 아기신발과 양말을 벗겨주고 이불가방 두 개를 내려놓았다. 아기에게 마실 것을 주고 소파에 깊숙이 앉아있으려니 신랑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이 양반이 왜 이러지 싶기도 했지만, 오히려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한 나는 당신이 오늘 그럴 만도 했다고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이틀 전에 구입한 이불과 베개커버를 드디어 오늘 세탁기에 돌리고 건조대에 널었다. 어제는 날도 흐리멍덩해서 그냥 두었었는데, 오늘은 왜 이리도 상큼 발랄한 건지. 햇빛도 좋고, 바람도 좋고, 내 마음도 덩달아 좋고. 이런 날은 하늘이 기필코 빨래를 하라고 내어준 바로 그날이다 싶어서 이불가게 직원이 챙겨준 이중세탁망에 이불을 예쁘게 넣어 지퍼를 닫고 세탁기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이불은 축축하게 널려있지만, 나는 자꾸만 기대를 하게 된다. 산뜻한 새 이불 위에 누웠을 때의 기분을 상상해 본다. 얼마나 보송보송하고 부들부들할까. 시원하면서도 따뜻한 이불속에서 우리 가족은 어떤 좋은 꿈들을 꾸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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