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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 jingyoo

기다리래.

뒤집힌 배가 가라앉는 동안, 선장과 선원들이 빠져나가는 동안, 해경이 구조하러 온 잠수사들을 막고 있지만, 텔레비전은 열심히 구조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으니까, 오지 않는 구조대를 기다리다 선내로 밀려든 바닷물이 울음과 비명을 익사시켜도, 벗겨지는 손톱과 부러지는 손가락들이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잡아당겨도, 바닷물이 카톡을 삼키고, 기다리래를 삼키고, 기다리래를 친 손가락을 삼켜도 가만히 있으래.

<김기택, 기다리래 중>


학생들은 기다리라 가만히 있으라던 안내방송에 따라 선실에서 기다리다 바다로 가라앉았다.


얼마 지나 나는 아들과 딸에게 누구든 심지어 선생님이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해도 그것이 지시나 명령일지라도 그대로 따르지 말고 생각하라고 말했다.




지난해 입대한 아들에게 군대라는 조직은 오직 파괴와 살인만이 목적인 무서운 조직이다. 그러다 보니 항명은 죽음을 각오할 정도로 큰 각오를 해야만 할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상관이 부당한 명령을 하는 것은 아닌지 항상 생각한 후 임무를 수행하라 당부했다. 물살이 세 장갑차도 철수한 급류에 구명조끼도 없이 가슴장화와 빨강 티셔츠만 입고 들어가라는 명령이 있다면 생각을 하라 일렀다.


사단장이 붉은 해병대 티만 입혀 실종자 수색에 내몰았던 해병대원은 급류에 휩쓸려 죽고 말았다. 구명조끼만 입혔어도 그는 지금 제대하여 잘 살고 있었을 것이다.


2 기갑여단장은 12.3 쿠데타 당시 휴가를 내고 몰래 정보사령부에 대기하고 있었다 한다. 상황에 따라 탱크로 시민들을 밀어버릴 계획도 있었나 보다. 지금 그 여단장은 내란 동조 혐의로 직무는 정지되고 검찰에 의해 입건되었다.


지난여름 2 기갑여단에 운전병 배속된 나의 아들은 12.3 쿠데타 당시 출동대기 중이었다 한다.




인파가 과하게 모이는 축제나 행사장에 경찰력을 동원해 군중의 이동과 교통을 통제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을 혼잡경비라 한다. 매년 10월 말 이태원은 할로윈축제가 있어왔다.


2022. 10. 29. 수많은 인파가 몰린 이태원 길바닥에서 159명이 죽고 195명이 부상당했다. 매년 있어왔던 혼잡경비는 없었다. 대신 마약사범 검거를 위한 사복경찰만이 깔렸다. 경광봉으로 인파를 통제하는 경찰도 군중의 규모를 파악하고 이태원역을 무정차로 통과시키는 판단도 없어 이미 꽉 찬 이태원 골목에 사람들은 계속 몰려들었다.


몰랐을까? 매년 이어지던 할로윈축제 혼잡경비를?


마약사범 관련 지시는 내려왔다. 그로 인해 혼잡경비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람들이 죽었다.


참사 당일 나는 맨 먼저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부터 체크했다. 그날 아이들은 이태원에 가지 않았고 사고는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당부했다.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각자도생의 삶에 내몰리던 최근 우리는 생각을 많이 하고 살아야만 했다.


광주처럼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국회로 갔던 시민들

막으라는 위법한 명령에 머뭇거림으로 결국 국회의 권능을 유지시킨 경찰들

의원을 끌어내라는 명령에 소극적으로 작전에 임한 군인들


생각하는 시민들과 생각하는 제복 속의 시민들이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지금 제대로 하지 않으면 80년 광주가 다시 올지 모른다는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들이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죽은자가.jpg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출처] 한강,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국회로 시민들을 움직이게 만들고 군인과 경찰의 마음속에 이건 아닌데라는 의심을 품게 만들어 준 선조들의 희생이 결국 대한민국을 구해냈다.


작용이 있으면 반드시 반작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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