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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우 May 21. 2018

2_입덧

남편 여러분, 부디 모른다는 것만이라도 아셔야 합니다.



15. 

입덧을 시작하면서 아내의 감각은 초인적으로 예민해집니다. 

그중에서도 후각이 단연 도드라집니다. 

아랫집에서 생선만 구워도 아내는 베란다로 올라오는 비린내에 몸을 뒤척입니다. 

베란다의 창문을 걸어 잠가도 비린내가 난다고 합니다. 


내 후각으로는 어떤 냄새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라탄 이웃집 남자의 스킨 냄새도 아내를 괴롭힙니다. 

나는 로션도 바르지 않고 향수도 뿌리지 않습니다. 


아내는 헛구역질을 하며 음식을 넘기지 못합니다.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는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속상합니다. 






16.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아내가 종종 한밤중에 뭔가 먹고 싶다고 합니다. 

나는 제법 이것저것 요리를 하는 편이지만 마땅한 식재료가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야심한 시각이어서 야식을 주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2인분 이상 주문해야만 배달이 됩니다. 

대부분 기름진 음식들이고, 양념이 자극적입니다. 

게다가 고칼로리입니다. 

평소 같았다면 먹는 일이 좀체 없는 메뉴들입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아내는 조급해합니다. 

차임벨이 울리면 나는 지갑을 챙겨 들고 현관문으로 갑니다. 

배달음식을 건네받아 상을 차립니다. 

아내가 돌연 코를 틀어쥐고는 뒤로 물러섭니다. 


“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습니다.


아내는 얼굴을 찡그리며 방으로 달아납니다.


“그래도 한 숟갈이라도 먹어.”

나는 아내를 억지로 끌고 와 식탁 앞에 앉힙니다. 


아내는 새처럼 조금 먹고는 손사래를 칩니다. 

음식이 넘어가질 않는다고 합니다. 

더 이상 조를 수가 없습니다. 







17. 

남은 음식은 몽땅 내 차지입니다. 


어머니는 음식을 남기면 천벌을 받는다고 나를 가르쳤습니다. 

쌀은 농부의 피땀이라며, 밥알 한 톨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허리띠를 풀어헤치고 배달음식을 꾸역꾸역 먹어치웁니다. 

먹다 보니, 그런대로 맛도 있습니다. 

맛이 있긴 한데, 혼자 먹자니 마음이 불편합니다. 

먹긴 먹는데, 속이 거북합니다. 

속이 거북하지만, 마지막 한 숟갈까지 싹싹 긁어먹습니다. 


트림을 거하게 내뱉으며, 

아내의 옆자리에 누워 더부룩한 아랫배를 쓰다듬고 있노라면, 

아내가 임산부인지, 내가 임산부인지 헷갈립니다. 


식사시간도 아닌데, 

위장에 음식을 가득 넣어주었더니, 

뱃속에서 난리가 납니다. 

어찌나 요동을 치는지 태동胎動으로 착각할 지경입니다. 

나는 아내의 손을 가져다 대고 태동을 느껴보라고 장난스럽게 말합니다. 


아내가 힘없는 얼굴로 소리 없이 웃습니다. 


아내는 그나마 먹은 것도 토하며 점점 해쓱해져 가는데, 날이 갈수록 나는 투실투실 살이 오릅니다. 

야식이란 게 마성魔性이 있어서 위장 시계가 음식을 넣어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통에, 

본심을 숨기고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하고 은근슬쩍 묻기까지 합니다. 

아내가 고개를 젓습니다. 


어쩐지 파렴치한이 된 것만 같습니다.      







18. 

아내를 돌보기 위해 방문한 장모님을 볼 낯이 없습니다. 

나는 양심에 찔려 묻지도 않은 하소연을 늘어놓습니다. 

남은 음식을 먹어치우는 게 이만저만한 고생이 아니라고 이러쿵저러쿵 떠듭니다. 

마지막 한 숟갈까지 싹싹 긁어먹었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장모님은 다 알고 있는 눈칩니다. 


자네라도 잘 먹으면 좋지.” 

장모님은 내 등을 토닥이며 말하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샤워를 하다 말고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면 턱과 목의 경계가 허물어진 낯선 사내가 나를 빤히 보고 있습니다. 


“누구냐, 넌?”

나는 어느 영화 속 명대사를 흉내 내며 거울 속의 남자에게 묻습니다. 


아내의 입덧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19. 

먼저 아버지가 된 선배들은 아내가 입덧을 한다고 하자 앞다투어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들이 들려준 경험담 중에 저 유명한 ‘딸기 사건’이 있습니다. 


선배의 아내가 갑자기 한겨울에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합니다. 

"그깟 딸기, 내가 구해오지!"

엄동설한에 어디서 딸기를 구하지? 

속마음을 숨기고 떵떵 큰 소리를 친 후, 호기롭게 집을 나섭니다. 


선배는 한밤중에 동네 슈퍼마켓을 순회합니다. 

동네를 돌고 돌지만 선배는 결국 딸기를 사지 못합니다. 

그래도 차마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선배는 묘안을 생각해냅니다. 


“맞아, 그게 있었네.” 


선배는 딸기 대신 딸기우유를 사들고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래도 뭔가 하려고 하긴 했네.' 

이 정도 말은 들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선배의 아내는 우유팩을 내던지며 일주일은 굶은 맹수처럼 포효합니다. 

“내가 먹고 싶은 건, 딸기지. 딸기 우유가 아니야!”


정말이지,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지 않습니까. 

딸기가 먹고 싶은데, 대관절 누가 딸기우유를 대신 먹겠습니까. 






20.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입덧을 하는 아내들은 무섭습니다

이건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이 순간에 현명하게 처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장의 양들처럼 평생 따라다닐 낙인이 찍힙니다. 


나는 선배들의 조언을 허투루 듣지 않고 아내에게 나름대로 한다고 했습니다. 

납작 엎드려 아내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것만으로는 무엇도 채워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1. 

당신이 뭘 알겠어.” 

아내가 힘없이 말합니다. 


차라리 화끈하게 화라도 내면 좋으련만. 

비난보다는 낙담에 가까운 음성입니다. 

어딘지 모르게 아내의 음성에 짙은 서운함이 묻어납니다. 


나는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 말은 옳습니다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모르는 일이 점점 많아집니다. 

아니, 많아지는 게 아니라 아는 게 아예 거의 없습니다. 

무용한 남편은 투실투실 살이 찐 채 폭염에 지친 북극곰처럼 뒹굴고 있습니다. 

당신이 뭘 알겠어, 라는 비난을 들어도 쌉니다. 


남편 여러분, 부디 모른다는 것만이라도 아셔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22. 

아내가 산후조리원에 머물고 있을 때였습니다. 

나는 빈집에서 홀로 지내다 아내와 아기를 보러 가곤 합니다. 

산모는 몸이 냉冷해지면 안 돼서 조리원의 방바닥은 절절 끓습니다. 


나는 몸에 열이 많아 산후조리원의 후끈한 공기가 답답합니다. 

숨이 턱턱 막혀옵니다. 


게다가,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산후조리원엔 온통 여자들뿐입니다. 

아무래도 여자들 틈에 끼어 있자니, 이래저래 불편합니다. 


아내는 옆방의 남편도 자고 갔다면서 은근히 내게 머물러줄 것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것저것 핑계를 둘러대고는 얼마 있지도 않아 자리를 뜹니다. 


“몸은 돌아오지 않아서 심란한데, 

남편이라고 와서는 덥다고 투덜대기나 하지, 

창문을 열어줘도 아기 사진만 찍고는 가겠다고 해서,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알아.” 

아내가 한참 후에 그때 일을 말합니다. 


나는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버벅거립니다. 

그제야 나도 선배들과 똑같은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모든 남편들의 숙명입니다. 


아비는 어미의 육체적, 심리적 고통을 체감할 수 없습니다. 

느낄 수 없기 때문에, 그 고난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멍청하고 어리석게 행동합니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게, 수컷들의 한계입니다. 

아내 여러분, 부디 하해와 같은 아량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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