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영국에 있는 파트너에게 사업상 필요한 일이 있어 연락을 했다. 오늘 아침 연락을 받았다. 그런데 받은 내용이 의외였다. “I have now retired” 란다. 은퇴를 했다고 했다. 그는 아직 젊은데 왜 벌써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코로나 전에 그의 작업지 웨일스를 방문하여 상담을 벌린 일이 있어서 나보다 훨씬 젊은 상태로 알기 때문이다. 하던 일은 그와 함께 하던 후임자가 맡아서 한다고 연락처를 친절히 알려주기도 했다. 간단한 답신을 주었다. 당신과 함께 했던 비즈니스 추억이 즐거웠다고 하며 즐거운 인생을 보내라고 했다.
은퇴
이 용어가 풍기는 뒷맛은 편안감을 줄 수도 있고 한편 섭섭할 수도 있다. 은퇴라는 말을 들으면 제일 먼저 떠 오르는 생각은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직접 느낀다. 은퇴할 때가 되었으니 은퇴를 하는 것이 일반적 흐름이다. 다른 경우도 있지만. 이전에 신문에서 본 은퇴 이야기가 생각난다. 미국의 주요 장관을 지낸 인사이다. 아직 활동기간이 시기적으로 많이 남은 것 같은데 돌연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내고 은퇴를 한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가족들과 함께 있는 삶을 찾기로 했다는 것이다. 일국의 장관보다 한 가정의 행복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사회적으로 정상에 올라가는 데는 다른 중요한 요소는 뒤편으로 물리쳐야 했다. 그래야 간신히 한 나라, 한 분야의 정상에 오를 수가 있는 것이다. 뒤 켠으로 물리친 것이 덜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찌 보면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이 많다. 첫째로 가족을 제대로 돌볼 시간이 부족하고 그러다 보면 가족 구성원과는 소원한 관계까지 몰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의외로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그래서 아예 늦기 전에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려고 한다. 지금 언급한 장관 한 사람뿐만이 아니고 가끔 이런 결정을 한 사람을 봐 왔다. 주로 서구인들에게 많이 보인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인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우연히 책을 통해서 접할 때가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면의 이야기도 드러난다. 비록 그 분야의 독보적 존재감을 드러낸 그였지만 그의 가정과 인생은 잃는 부분도 많았음을 느낀다. 에너지보존의 법칙이랄까. 한 사람이 이것저것 모두를 다 균형 있게 성장시키는 것은 어쩜 무리인지도 모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불가능한 것 같다. 가끔 가정관리를 잘해서 가족이 모두 행복하게 느끼고 구성원 모두를 잘 화합케 하는 능력은 국가를 다스린다거나 위대한 발견 발명을 한 세기적 업적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편향된 한 점만에 너무 집착해 있다. 오직 그가 보여주는 한 점 만을 열심히 보고 환호한다. 다른 것은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달리 역으로 말하면 흔히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영웅도 다른 면에서는 한참 부족한 평범한 인간임을 알아야 한다. 산이 높으면 분명 골이 깊은 원리와 완전히 같은 이치이다.
원래 사람은 특정 왜골수에 모든 것을 걸면 그쪽은 성공할 수 있으나 다른 쪽은 당연히 신경이 덜 가게 된다. 잘난 사람도 없고 못난 인생도 없다는 것이다. 자기 인생은 스스로가 선택한 총화의 결과로 지금 위치에 서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스스로가 생각해서 특히 외부에 내 세울 게 없지만 고만고만하게 주위 환경을 만들어 왔다면 그 또한 위대한 노력 결과물이다.
그리한 당신은 국토의 균형발전처럼 자기 소속의 전 분야에 균형을 잘 이뤄 성장시킨 위인이다. 전혀 어느 누구를 부러워해야 할 것이 아니다. 한없이 깊이 파서 자기 분야를 이룩한 그나 평범한 당신이나 천칭에 올라서면 거의 평행을 이룬다. 이집트 상형문자 그림을 보면 사후에 그가 한 행위를 평가할 때 그의 심장을 저울에 다는 그림이 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계량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은퇴를 보며 느낀 기본적 관점이고 다시 내가 느끼는 본론적 생각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나는 보는 면이 내가 필요한 쪽만 본다는 괴팍성이 있다. 가끔 넘어지는 바이든도 보이고 악수할 때 손 힘이 두려울 정도로 힘이 센 모디 이야기도 보인다. 창업자에게 은퇴란 없다라고 주장한 조중훈 이야기도 들어 안다. 그 나이에 활약하는 인디아나 존스의 해리슨 포드도 멋져 보인다. 구로공구 상가에 여전히 가게를 운영하는 나이 드신 점주도 미소 짓게 만든다. 은퇴는 필요하면 행하는 것이고 불필요하다면 안 하면 되는 선택 옵션이다. 은퇴를 안 한한다는 것이 반드시 일이나 사업 등의 유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비 수익적 활동과 봉사활동도 은퇴 없이 잘할 수 있다고 본다. 본인의 생각과 건강 유지가 은퇴 않고 지속이냐 중단이냐를 가름하게 된다.
과거시절 내가 어릴 적 어른들은 약 60만 되어도 모든 활동을 접고 방 안에서 에헴하고 보내는 것을 보았다. 그때의 섭생 환경과 현대 여건은 많이 변했다. 어느 뉴스를 보니 시골에는 청년 구락부 모임 회장을 70대가 맡아서 한다는 것도 들린다. 다음 주에 몇몇 분들과 몽골 여행을 가는데 전부 시니어 그룹이다. 과거 같으면 웬 할아버지들이 저러시나 할 수 있지만 대부분 그분들은 여전히 사업도 하고 있고 스포츠 클럽에 젊은 친구들과 어울려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 들이다. 아마도 은퇴를 남의 일인 양 느끼는 분들이라고 여긴다.
나는 움직일 힘이 빠지면 그때는 다른 대안이 없으니 은퇴를 하겠지. 지금은 비록 작지만 하는 일이 나를 이끌어 준다.
나에게 유리한 자연법칙을 모두 인용한다. 관성의 법칙도 좋아하는 물성법칙이다. 내가 즐겨하는 자전거 라이딩도 바로 관성의 법칙을 가장 잘 이용하는 운동이다.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는 운동 속성을 이용하여 스스로 최면을 건다. 또 운동의 법칙에서 힘은 움직임의 속도에 비례한다. 그러니 계속 움직임을 유지해야 한다. 그것이 나를 유지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