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에 남은 여름은 몇 번일까.

문화유산으로서의 구로 / 강남과 신도림 / 커피의 도시 문래.

by 고생끝에골병난다

GPT 덕분에 각종 문서 작업에 들어가는 시간이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아주 한가해졌나? 어림도 없다. 도대체 아껴둔 시간은 다 어디에 갔을까. 세탁기가 생겼어도 가사노동 시간이 줄지 않은 건, 사람들이 더 많은 옷을 사고 자주 세탁을 하게 된 탓이라고 한다. 그럼 우리도 인공지능 이거 생겨봤자, 더 많은 일을 하게 되어서 계속 이대로 바쁘지 않을까?


구일역이라는 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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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없이 바쁜 한 주였다. 창문을 여니 축축한 밤공기가 들어온다. 벌써 계절이 이렇게 됐다. 초여름 같아진 날씨 때문에 그렇게 몽롱했는지도 모르겠다. 여름이라니. 치가 떨린다. 하지만 삶에 남은 여름이 몇 번일까 생각해보면 여름의 괜찮은 면도 몇 가지 떠오른다. 몽롱한 휴일에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맛있다거나, 밤에 마시는 맥주가 맛있다거나. 평일 내내 고생을 한 탓에 주말은 끝내주게 보내고 싶었다. 한여름이 되면 자전거 타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샤워를 하고 열심히 자전거를 몰았다.


역곡천에서 목감천을 지나 안양천에 이르면, UFO 같은 고척돔이 서울의 시작을 알린다. 내향인인 나는 사람을 만나봐야 공연히 기력만 소진한다. 평일의 고생을 보상 받고자 하루종일 집에서 숏츠를 내려도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다. 너무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은 자전거를 묵묵히 타고 나면 에너지가 차오르는 게 느껴진다. 행복은 산책을 하고, 음악을 듣고, 책을 펼쳐야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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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척 스카이돔과 연결되는 구일역은 전철역이 강 위에 생긴 특이한 역이다. 덕분에 전철이 구일역에 멈출 때면 안양천의 탁 트인 경관을 바라볼 수 있다. 원래 공장 폐수로 오염되어 있던 안양천은 환경 운동 단체의 노력으로 지금의 쾌적한 모습을 갖추었다. 평일에 나는 왕복 4시간씩 1호선을 타고 다니는 고행을 한다. 구일역에 이르러 안양천과 고척돔이 보이면 비로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생긴다. 구일역의 특이한 경관이, 얼추 집에 도착했다는 희망을 준다.


문화유산으로서의 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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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역 일대는 서울의 대표적 근대 경관이 남아있는 지역이다. 1984년, 청계천 상가 상인들이 서울 도심의 비싼 지대를 피해 중앙유통단지를 설립했다. 여전히 이 곳은 국내 최대의 유통 단지로서 하루 유동 인구는 3만여 명에 이른다. 규모가 큰 만큼 품목이 매우 다양해 가구, 전자 제품, 컴퓨터, 핸드폰 등과 관련한 판매 상가와 사무실이 입주해 있고, 식당, 문구점, 매점, 약국 등의 각종 편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상가 1층의 모습을 지나칠 때는 마치 홍콩 여행을 온 것 같았다. 상가를 지나면 곧바로 CJ제일제당 영등포공장이 보인다. 이 공장 건물 역시 서울 근대 유산의 상징 같은 곳이다. CJ제일제당 영등포 공장은 꾸준히 박물관, 공공시설, 상업시설 등으로의 개발이 논의되었으나 공장 시설이 여전히 성업 중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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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역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구로기계공구상가는 5만여 종의 산업용품을 블록별·동별·품목별로 나누어 배치한 국내 최초의 집단 산업용품 유통 상가 단지이다. 기계 공구, 부품, 고무 제품, 냉난방 기구, 볼트, 수도 배관 자재, 용접기, 운반 기기, 포장 자재, 페인트, 화공 약품, PVC 등 기계업, 건축, 설비업 업자들에게 필요한 제품은 물론 일반 가정에서 이용하는 제품까지 취급한다. 좋은 입지 탓에 강한 부동산 개발 압력이 작용하지만, 역시 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되어 지금도 운영 중인 탓에 쉽사리 개발이 진행되기는 힘든 환경이다.


강남과 신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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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의 분위기가 약해지고 아파트 숲이 시작되면 신도림이다. 지금은 빌딩 숲으로 변한 신도림동은 원래 준공업 지구로 공장이 밀집되어 있었다. 1960년대부터 안양천과 도림천이 합류하는 저지대의 공장 지대가 형성되기 시작하여 1993년에는 등록된 공장이 333개에 이르렀다. 당시 도림교 건너 경인로 오른쪽에 자리 잡은 한국타이어주식회사, 그 옆의 삼영화학공업주식회사, 한국타이어주식회사 남쪽에 대성연탄(주), 신도림동 남동쪽 경인로 변에 주식회사 종근당 공장이 대표적이었다.


화면 캡처 2025-05-26 010608.png 개발 이전의 신도림동 (사진: gongury.egloos.com)


2000년대 들어서면서 공장 자리에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고 디큐브시티를 비롯한 상업시설이 자리 잡으며 신도림은 서울 서남부의 대표적 부촌이 되었다. 경인로를 따라 호텔과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고, 동 전체가 평지라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에도 좋았다. 동의 서쪽과 북쪽을 둘러싸고 있는 안양천과 도림천 또한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앞뒤로 따릉이를 탄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인근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치르는 것 같았다.


주말의 신도림은 평일보다 훨씬 쾌적한 동네였다. 출퇴근 시간 이 일대는 경인로·서부간선도로·지하철 신도림역·도림천역을 중심으로 엄청난 교통인구가 몰린다. 1호선 라인에 살면 신도림역 환승은 인생의 필수 미션이다. 처음 서울 환승을 경험한 곳도 신도림역이었다. 동선이 분리되지 않는 환승 게이트에 퇴근 인파까지 몰리며 진이 다 빠졌던 기억이다. 지금도 퇴근 시간 1호선에서 영등포역까지는 어찌어찌 쾌적하게 가더라도, 신도림역에서는 어김없이 인파에 뭉개지곤 한다. 입지의 탁월함 덕분에 성공적인 도시개발이 이루어진 신도림은 도시 기능의 관성을 이겨내고, 부동산의 개발 욕망을 실현한 몇 안 되는 지역이다. 서울 주요 업무지구로의 접근이 용이하기에 분당 못지 않은 지대를 자랑한다.


그러나 강남 중심 시각으로 보면 신도림도 외곽으로 분류되는 듯하다. 청담동에서 태어났다던 군대 후임은 가세가 기울어 신도림으로 이사왔다고 했다. 같은 구로 사람이라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대화를 나눠보니 그 친구는 신도림으로의 이사를 귀양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같은 서울 외곽이어도 송파구의 가치와 구로구의 가치가 차이 나는 것은 강남 중심의 부동산 구조 탓이다. '상급지'로의 이사를 지향하는 수요가 모이는 곳이 강남이기에, 다른 모든 지역들은 등급으로 분류된 상품 중 하나가 된다. 구로처럼 다양한 경관을 보전한 매력적인 지역도 '몇 등급 지역'으로 싸잡아 분류된다. 이런 분위기가 서울 살이를 지금처럼 팍팍하게 만든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3. 카페와 공장의 도시, 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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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힙플레이스' 문래동이었다. 과거 이 일대는 하천에 실려온 모래가 많은 마을이라고 하여 '모랫말'이라 불렀다. 나이 많은 노인들 중에는 문래동 일대를 ‘오백채’라는 말로 회고하는 이들도 있다. 1940년대 일본인들이 방직공장 종사원을 위한 주택을 오백 채가량 건설한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후 문래동은 철공소를 비롯한 작은 공장들이 밀집한 제조업 지대가 되었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등장인물 강철두가 문래동에서 철공소를 운영하던 엔지니어였으며, 손재주가 좋다는 이유로 작중 별명이 ‘문래동 카이스트’였던 것이 상징적이다.


문래동의 공업지대 부지에는 자영업자와 예술인들이 정착해 문래예술공단을 만들어 활동 중이다. 홍대의 지대 상승을 피해 문래동으로 터전을 옮긴 청년들이 주를 이루었다. 구로역 중앙유통단지에 자리 잡은 상인들이 서울 시내의 지대 상승 탓에 청계천을 떠나온 것과 비슷한 이유다. 지금 서울은 커피의 도시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부족한 평지 공원과 벤치, 열악한 주거환경 같은 도시 문제는 사적공간과 개인공간 사이의 쾌적한 공간, 즉 '써드 플레이스'에 대한 수요를 자극했고, 카페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특히 성수동이나 문래동 같은 공장 지대는 저렴한 지대와 공장의 넓은 공간, 높은 천장고 덕분에 젊은 예술인과 자영업자가 자리잡으며 특색 있는 상권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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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에 들어서자 매캐한 쇠 냄새가 났다. 성수동에 비해 문래동에는 아직 공장 지대의 모습이 남아있었다. 문래와 성수의 차이점은 서울숲의 존재이다. 성수동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데에는 관광객을 불러 모은 서울숲의 역할이 주요했다. 서울숲을 따라 고급 주상복합이 들어서며 생긴 이미지가 성수동을 고급 상권으로 변모시켰다. 가로수길이 한강 공원과 연계하여 발전했고, 서순라길은 종로의 풍부한 역사문화 인프라 속에서 성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직 문래동은 하루종일 머물 수 있는 상권으로 보기 어렵다. GTX-B 신도림역과 신안산선 영등포역이 개통되며 접근성이 개선될 예정이고, 영등포역 인근 집성촌과 쪽방촌 개발도 개발을 앞두고 있지만 랜드마크의 부재는 자본의 관점에서 문래동의 상품성을 반감시키는 요소이다.


하지만 덕분에 문래동은 지금의 분위기를 더 오래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성수동의 경우, 자본이 들어오며 기존 예술가와 상인들을 몰아냈다. 한 명의 부동산 사업자가 비슷비슷한 카페를 여러군데 개업하고, 지대 차익을 얻은 뒤 철수하며 지역을 죽이는 사례가 벌어지기도 했다. 을지OB베어가 있던 자리가 평범한 체인점 술집으로 바뀐 사례를 떠올려보자. 원조의 아우라를 젠트리페케이션이 몰아낸 자리에는 진짜 '힙'이 사라지고 천박한 무언가만 남는다. 지금 을지로와 성수동은 스스로가 '힙'하다고 주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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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문래의 매력은 여전히 운영 중인 철공소의 풍경과 힙한 카페의 조합이다. 예쁜 소품샵과 카페 넘어로 땀흘려 일하는 철공소의 모습이 대조되며 문래동은 고유의 개성을 지닌다.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의 저자 로버트 파우저는 도시의 역사적 경관 보존이 단순한 과거의 유산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관광객을 유치하고, 현재와 미래의 도시 정체성과 시민의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 역사와 경관은 '일'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철공소의 노동자와 카페의 알바생들 덕분에 성수동과 문래동의 가치가 탄생한다. 자본은 그 가치 위에 올라타 끝내 그들의 일을 몰아내지만, 다양한 일의 경관들이 오늘 서울의 가치를 만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철공소의 기계음 사이를 거닐자니, 가수 이랑의 노래 '늑대가 나타났다'의 노랫말이 떠올랐다. "우린 쓸모없는 사람들이 아니오. 너희가 먹는 빵을 만드는 사람일 뿐".


서울시는 문래창작촌과 구로 세무서 일대에 대한 개발 계획을 지정했다. 이 일대의 철공소들은 경기도 그린벨트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문래의 고유하고 매력적인 역사를 스스로 철거하는 결정이다. 문래에는 몇 번의 여름이 더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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