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하루 전, 노량진의 기억
노량진 오바이트
비상계엄 하루 전날 나는 국회의사당에서 의원 인터뷰를 하기로 되어있었고, 노량진에서 토를 했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대학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국혁신당 강경숙 의원과의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기사를 올리면 프로젝트가 끝난다. 그런데 긴장을 한 탓인지 새벽부터 급체를 했다. 속이 안 좋다 싶더니, 결국 오바이트를 해야 끝이 날 급체 기운이 올라왔다. 가만 보니 보통이 아니였다. 해가 뜰 때까지 속을 게워냈다. 아침에 근처 내과에서 링거를 맞고, 울렁거리는 정신을 간신히 붙든 채 지하철을 탔다.
프로젝트를 망치기 싫었다. 진로를 위해서 인터뷰를 직접 진행하고 싶었다. 온갖 걱정이 들었다. 우선 지하철에서 구토를 하면? 누군가 그 모습을 찍어서 숏츠를 만들지 모른다. 나도 ‘1호선 빌런’ 명단에 오르게 된다. 국회의원 면전에서 오바이트를 하면? 아, 그때는 여의도 한강물에 몸을 던져야지. 물론 안 그러겠지만. 꼭 일을 잘 마치고 싶었는데. 그 부담감 탓에 몇 달의 노력을 망치다니. 이정도로 새가슴이어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국회의사당에 가려면 노량진역에서 9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다음역은 노량진' 안내 방송이 나올 때쯤 구토감이 올라왔다. 내심 마지막 한발 쯤은 남았을지 모른다고 느끼고 있었다. 결국 노량진역 화장실에서 못볼 꼴을 보였다. 쳇기는 속을 다 게워내면 호전되는 법이다. 그제야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63빌딩 너머로 노을이 지고있었다. 추리닝을 입은 우울해보이는 사람들이 각자의 동선으로 거리를 매웠다.
노량도의 형성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러 노량진역을 찾은 적이 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소방 공무원을 준비하던 친구였다. 처음 가본 노량진은 미디어에서 접한 이미지와 달랐다. 역 근처에 번화한 술집과 식당이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큰길에서 골목으로 들어가 언덕을 오르면, '도시 속의 섬'이라는 별명처럼 적막한 고시촌이 나타난다. 노량진 일대는 언덕 지형이라 중심가에서 고도가 높아질수록 조용해진다. 노량진의 수험생들은 모두 시험 합격 후 이곳에서의 탈출을 꿈꾼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괜히 이곳이 노량도이겠는가.
원래 서울의 대입 학원가는 종로 일대에 집중되어 있었다. 60년대 종로에 최초의 재수학원인 종로학원과 대성학원이 동시에 설립된 이후, 정일학원, YMCA학원 등 여러 대입학원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여기에 성인 외국어 학원들이 더해지며 종로는 서울을 상징하는 학원가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70년대말 정부에서 서울 시내 재수학원 설립을 불허하고 기존의 학원들을 이전하도록 했다. 일설에 의하면 자칫 사회 불만 세력인 재수생들이 시위에 가세해 청와대를 위협할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후 재수학원은 강남 등지로 이전하면서 '고시촌' 노량진의 생명은 끝나는 것 같았으나, 공무원, 임용고시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재수학원 자리에 고시 학원들이 들어섰다. 재수생을 위해 존재하던 인프라는 성인 수험생에게도 이점이 되었다. 재수생이 빠진 자리에 성인 수험생들이 몰려들어 지금의 노량진을 이루게 되었다.
아무튼 인터뷰는
초선의 강경숙 의원은 열정이 넘치는 개혁주의자였다. 그는 '지나친 경쟁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을 한국 사회의 과제로 꼽았다. 인터뷰는 무사히 마쳤다. 의원님은 내 또래로 보이는 인턴 보좌관을 시켜 우리에게 국회 산책을 시켜주었다. 거절했어야 했지만, 아무튼 국회의원의 권위(?) 탓에 순순히 산책을 당했다. 인턴 분께 낯빛이 어두운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고 쳇기 속 산책을 조기에 마쳤다. 인턴 보좌관님은 원래 대학생인데, 이대로 졸업을 하기가 불안해서 휴학 후 일을 하고 계시다고 했다.
국회를 나서자 긴장이 풀리며 피로가 몰려왔다. 다시 노량진역 도착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잠깐 카페라도 가서 앉아있어야 할 것 같았다. 뭐가 이렇게 불안한 일이 많을까. 인터뷰를 앞두고 괜히 긴장을 한 탓에 온종일 고생이었다. 젊은데 앞날이 불투명하다는 불안은 모두에게 이토록 큰 고통일까. 내가 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있나, 매일 스스로를 의심한다. 이런 불안 끝에 또래 친구들은 대부분 고시에 몰린다. 일종의 도피에 가까운 경우도 많다. 소방공무원을 준비하던 친구는 2년 동안 시간만 낭비하고 지금은 전문대에 다닌다.
불안에 잡아먹히는 이유
돌아보면 나도 컴퓨터활용능력 시험, 토익 시험, 스피킹 시험. 각종 대외활동과 공모전, 자격증 시험까지. 불안감 탓에 바친 돈과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겠다. 특히 대외활동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된 프로그램들은, 학생들의 불안감을 활용해 무급으로 기업의 잔무를 맡기는 활동이었다.
사교육 산업은 불안을 인질 삼아 존재한다. '노량도'의 진짜 문제는,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자유라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불안들이 이곳에서 시간을 빼앗겼을까. 공동체도, 종교도 내 인생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이곳을 나가면 어디에 자리를 잡고 살 수 있을까, 라는 불안이 고시원에 청춘을 묶어둔다. 나이키의 슬로건 'JUST DO IT'은, 꿈을 이루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을 꾸짖는 것만 같다. 불안을 내쫒으려 도피하듯 공부를 시작하고, 투자해온 시간이 아까워서 제 발로 나가지도 못한다.
점점 조급해지고 불안해지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성과를 증명하려고 서두르다 보면, 무쓸모, 무기력, 무능력에 낙담하게 된다.김영하 작가는 ‘사람들은 1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과대평가하는 반면, 10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10년이 지나 돌아보면, 그대로인 사람은 없다. 아주 사소한 계기로 다르게 행동하는 일이 장기간 쌓이면 회로가 바뀐다.
분명 10년 전의 나는 장담할 수 없었다. 10년 뒤엔 그 악명 높은 수험생활도 군대도 나름 즐거운 기억으로 마치고, 하고 싶던 일도 해보는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고. 어른이 된 관점으로 지금의 나를 보면 여전히 엉망이다. 게으르고 또래에 비해 이룬 것도 없다. 그럼에도 특정한 계기로 오늘부터 어떤 행동을 한다면, 앞으로도 지난 10년의 시간만큼 달라질 것이다.
인정욕은 사람을 불안에 잠식시킨다. 보상 받고 싶은 마음은 노동 운동가를 극우 정치인으로 변절시키도 한다. 사람들은 원래 남이 뭘 하든 별로 알아주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내 인생에 내가 부여하는 의미이다. 누가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매일 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특정한 모습으로 거듭나고 싶다면, 차곡차곡 이루는 수밖에 없다.
세상엔 통제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나와 다른 욕망으로 움직인다. 그걸 통제할 수 있다고 믿을수록 더 불안해진다.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건 약속된 미래가 아닌, 같이 존재하는 일이다. 주변 사람에게 다정한 마음을 건네주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 아니다. 이런 마음을 '비효율적인 것'이라며 덮고 지내다가, 우리는 이렇게 불안에 잠식되고 황폐해진 것인지 모른다.
청년들의 불안감을 볼모 잡아 생을 이어온 고시촌의 기능은 얼마나 더 이어질 수 있을까. 지금 노량진은 고시촌으로서의 기능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인구 감소와 고시의 인기 저하 탓이다. 30년째 운영하던 독서실마저 운영을 중단하거나 고시원을 허물고 오피스나 빌라를 짓는 경우도 있다. 그 사이에 노량진은 외국인 거주지로 변모하는 중이다. 대부분의 고시원들이 위치한 만양로 일대를 걸어보면 다양한 언어들이 들려온다. 서울에서 값싼 월세로 유명한 곳이였고, 상권도 충분히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국적의 이주민들이 한국인 고시생들이 빠진 자리를 채우고 있다.
노량진 고시원들은 숙박업을 겸용하면서 해외 여행자 수요도 흡수하고 있다. 노량진역 근처 길거리에는 캐리어를 끄는 외국인들도 많다. 고시를 준비하려 상경한 고시생들부터, 유학생과 이주노동자까지, 노량진은 새로운 디아스포라의 터전이 되었다. 하지만 1호선과 9호선이 만나는 노량진의 좋은 입지 탓에 이 일대에는 뉴타운 사업이 예정되어 있기도 하다. 새로운 욕망의 압력 속에서, 이주민이 '거쳐가는‘ 노량진의 모습은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 다음날
인터뷰 다음날, 국회에 군인이 투입되었다. 카페에 앉아 기사를 쓰다가 계엄 소식을 접했다. 대한민국에서 6시간 동안 민주주의가 사라졌다. 계엄군을 막아서며 민주주의를 지킨 이들은 누구였는가. 불확실한 내일을 불안해하고, 때로는 죽고 싶을 때도 있지만, 국회 앞에 모여 탱크를 막아서기도 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지탱한다. 대단한 것을 성취하거나 이루지 않았어도 좋다. 자기 자리를 지키던 하급 군인과 시민들이 독재를 막았다. 우리가 송고한 기사는 이렇게 끝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청춘이라는" (청춘/심보선)
"인터뷰를 기획하던 팀원들은 학창 시절 공통의 기억을 발견했다. 입시를 치르며 장난처럼 "콱 자살하고 싶다"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는 사실이었다. 대한민국은 OECD 가입국 중 가장 자살률이 높은 나라이다. 한국의 아이들이 버릇처럼 자살을 입에 올리는 현상은 징후적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이가 한 명이면 자살이지만, 두 명부터는 사회적 타살이고, 세 명부터는 학살"이라고 말했다. 우리 교실은 여전히 학생들에게 '능력이 있어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왜곡된 가치관을 주입한다. 한병철의 <피로사회>가 포착한 것처럼, 공장의 노예감독관은 채찍을 드는 대신 청년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갔다. '남들이 열심히 사는 동안 넌 뭐하는 거야.' OECD 자살률 1위인 대한민국에서는 매일 40명씩 자살한다. 이제 학생들은 세상 탓도 못하고 무능한 자신을 죽인다.
인터뷰는 나아가 한국 교육의 지나친 경쟁이 괴물을 탄생시키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수도권 집중과 저출생, 저성장 속에 공멸의 위기를 맞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교육, 성숙한 민주시민을 육성하는 존중과 협력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에 총칼을 들이미는 무도한 권력을 막아서는 시민 정신은 다음 세대에서도 계속될 수 있을까. 과열된 입시 경쟁 속에서 민주시민을 기르기 위한 더 나은 교육을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입시에 떠밀려 생활을 잃고 괴물이 되거나 스스로 삶을 비관한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그들은 사실 "너무너무 살고 싶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