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내기: 강아지를, 동네를, 시절을

10. 이모의 이태원 클래스

by 고생끝에골병난다
KakaoTalk_20250716_184725942_04.jpg


이모의 이태원 클래스


생각해보면 이모는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안성 보개면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홀로 서울에 올라왔다.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가이드 일을 하며 돈을 모았고, 이태원 언덕에 작은 빌라를 매입하기에 이르렀다. 이모 집에 놀러가면 항상 까만 푸들 한 마리가 반겨줬다. 이름은 '까뮈'. 프랑스 작가 알베르 까뮈의 이름에서 따왔다고는 하는데, 그냥 까매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할머니와 엄마는 그 개의 이름을 '까미'라고 인식했다. 남편과는 이혼했다고 들었다. 홀로 서울에 자리잡은 이모는, 까뮈와 함께 멋진 용산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 나는 친척 집에 가기 싫어했지만, 이모 집에 가는 건 예외였다. 이태원 언덕을 구불구불 오르다 보면 근사한 집들이 많았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이모 집 옥상에는 언덕을 따라 이어진 빌라들의 초록색 지붕이 펼쳐져있었다. 좁은 옥상에서 조그마한 까뮈와 달리기를 하며 놀았던 순간은 바람 냄새까지 떠오르는 몇 안 되는 유년기의 기억이다. 이모의 집은 부드러운 카펫과 엔틱한 소품으로 꾸며져있었다. 넓지는 않았지만, 공들여 장식한 티가 나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엄마도 가까운 도시에서 취업을 했지만, 다단계 회사였음을 깨닫고 시골 집에 돌아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젊은 엄마와 이모는 얼마나 막막한 시절을 보냈을까 싶다. 어릴 때는 당연했다. 엄마는 원래 나의 엄마이자 공무원인 사람. 이모는 서울에 사는 멋진 여성. 세상에 자리잡는 것이 얼마나 불안하고, 때로는 무기력에 빠져야만 하는 일인지 알게 된 요즘에는 그런 게 쉬워 보이지 않는다.


KakaoTalk_20250716_184725942_11.jpg


할머니가 아프면서, 이모는 이태원의 빌라를 내놓고 안성으로 돌아가야 했다. 엄마는 아직 서울에서 일하며 가족을 키우고 있었고, 남동생은 서울에 자리잡은 누나들을 시기해 사이가 소원해져 있었다. 독신인 이모가 할머니의 간호를 떠안았다.


그 사이 나는 어른이 되었다. 군 복무 중에 할머니와 이모가 지내는 시골집을 찾았다. 까뮈는 나이가 들어서 시력을 잃었다고 했다. 멀리서도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방정 맞게 폴짝이던 까뮈였는데, 이제는 내가 곁에 앉을 때까지 꼬리도 치지 않았다. 쓰다듬으니 그제야 냄새를 맡더니 천천히 꼬리를 흔들었다. 일 년 뒤 까뮈는 죽었다.


이모에게 서울은 어떤 공간이었을까. 막 스무살이 되면 누구든 서울에 가고 싶어진다. 그렇게 서울에 도착하면, 왜 이곳에 와야만 했는지 알 것 같다. 동시에 왜 반드시 와야만 했을까 싶다. 언덕 위 빌라는 그런 외지인이 머무를 공간이 되어주었다. 지금 서울은 그런 청춘들에게 방 한 칸 남겨주지 않는 차가운 도시이다. 이모의 젊은 시절 서울은 그래도 젊은 손님에게 머무를 공간을 내어주는 도시였다. 상경한 이모는 노동의 대가로 작은 공간을 마렸했다. 알차게 터전을 가꾸고 까뮈와 함께 지내는 자기만의 방을 만들었다.



이모가 21세기 청년이었다면

KakaoTalk_20250716_184725942_10.jpg
KakaoTalk_20250716_184725942_07.jpg


오랜만에 용산을 다시 찾았다. 용산역에서 내리면 광장을 따라 근사한 빌딩들이 늘어서 있다. 옛 교수님의 회고에 따르면 과거 용산역 앞에는 휴가 복귀하는 군인들을 상대로 한 집성촌이 있었다고 한다. 판자집들이 보기 좋은 광장과 빌딩으로 재정렬된 경관은 서울이 어떤 도시가 되었는지 보여준다. 자본을 들여 질서 있는 공간을 조성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도시로 재탄생한 것이다.


용산역에서 남영역까지 걸어간 뒤, 해방촌을 향해 올라갔다. 이모가 살던 용산구 이태원로 이남 지역은 한남 뉴타운으로 지정되어 군데군데 철거가 한창이었다. 용산구 언덕 일대는 항상 노른자 땅이었다. 청군, 일제, 미군까지, 서울을 점령한 권력이 항상 군을 주둔시킨 요지가 용산이었다. 이상한 대통령 부부가 눈독을 들인 적도 있다. 21세기의 용산은 부동산 개발의 타깃이 되어있다. 서울 한가운데 위치한 한강뷰 입지와,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부동산 개발이 성공을 거두어온 현대사, 한남-이촌 부촌과의 연계까지. 철거민들이 용역 및 경찰과의 대립 끝에 목숨을 잃은 이른바 '용산참사' 역시 용산을 향한 재개발 압력 속의 비극이었다.


KakaoTalk_20250716_161002007_01.jpg


해방촌은 광복 직후 북한에서 월남한 실향민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이룬 촌락이었다.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던 해방촌이 '힙플레이스'로 재탄생한 건 이태원동과 경리단길의 높아진 임대료에 지친 상인들이 모이면서부터다.


해방촌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축제 ‘해방촌 아티스트 오픈 스튜디오’나 2022년부터 시작된 블록 파티 뮤직 앤 아트 페스티벌 등이 열리면서 ‘예술마을’이란 별칭도 얻었다. 젊은 층 사이에서 루프탑 가게들이 유행하면서 해방촌 오거리 일대로까지 상권이 확대된다. 언덕 지형이라는 해방촌의 특성은 서울 시내 조망이 뛰어나다는 장점으로 변모했다. 야외에서 식사와 음료 등을 즐기며 도심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 덕분에, 주말이면 해방촌은 연인과 관광객으로 발디딜 틈이 없어진다.


해방촌은 기존 이태원과 경리단길의 대체 장소로 주목받았지만, 시세가 폭등하며 또다시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고 있다. 용산기지가 철수하고 용산공원 조성이 진행된 것도 시세 폭등에 영향을 미쳤다. 상권도 별로 없는 주택가 언덕지형임에도 2020년 기준 어지간한 소형 단독주택이 20억을 호가한다. 아마 이모가 21세기의 청년이었다면, 용산에 자리잡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도시에는 젊고 가난한 사람이 살 곳이 필요하다

KakaoTalk_20250716_161002007_02.jpg
KakaoTalk_20250716_161002007.jpg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댄스 댄스 댄스>에는 '돌고래 호텔'의 이야기가 나온다. 낡고 인간적인 돌고래 호텔은 주인공의 내면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대도시 속 외로움에 신음하던 주인공 “나”는 연결의 기억이 남아있는 돌고래 호텔을 찾아 삿포로로 떠난다. 하지만 호텔은 재개발을 거쳐 거대한 유리 건물이 되어있었다. 세련된 디자인에 과거의 흔적은 완전히 표백되었다. 새로워진 호텔의 화려함과 편의는, 주인공의 이야기와 인간적인 체취를 철거한 자리에 세워진 것이었다.


재개발된 호텔의 외관은 발전처럼 보이지만, 온기와 개별성이 사라진 무미건조한 공간이 되었을 뿐이다. 주인공은 누구와도 깊이 연결되지 못한 채 공허함을 느끼며, “나는 아무것에도 닿지 못했다”고 토로한다.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는 이러한 공간을 ‘비장소(non-place)’라고 부른다. 문화적 맥락과 관계망이 제거된 채, 오로지 기능과 소비를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도시를 존재감 없는 손님으로 스쳐 지나가고, 도시는 정체성을 잃은 채 획일화된다.


도시에는 여전히 젊고 가난한 사람들이 살 공간이 필요하다. 그들의 터전을 치운다고 가난을 치울 수 있지 않다. 도시는 평범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관계 맺고, 이야기를 쌓아가는 공간이어야 한다. 지금의 서울은 30대 이상의 부부들을 밀어내는 대신, 젊은 이주민들을 빨아들이며 가치를 이어가고 있는 도시이다. 서울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강북을 중심으로 서울의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진행되는 중이다. 청년들이 방 한 칸 내어주지 않는 서울에 유입되어야 할 이유가 줄어든 탓을 무시할 수 없다.


서울을 찾는 사람들에게, 서울은 더 친절해야 한다. 자본과 개발의 논리 아래 작은 집들도, 개인의 흔적도 철거되었다. 까뮈와 뛰어놀던 옥상의 풍경을 다시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이모의 젊은 꿈이 담긴 언덕 위 빌라는 브랜드 아파트 단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괴된 공간에서, 우리는 인간다운 관계와 기억을 이어가며 살아갈 수 있을까. <댄스 댄스 댄스>의 주인공은 "음악이 멈추지 않는 한 계속 춤을 출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매일매일 몸을 움직이고 즐거움을 찾고 주변 사람들을 아끼며 살아낸다면, 삭막한 공간 속에서도 내면의 리듬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을 찾는 가난한 사람들을 반기고,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보듬는다면, 우리는 아직 내일을 이야기할 수 있다.


KakaoTalk_20250716_184725942_03.jpg
KakaoTalk_20250716_184725942_01.jpg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9화우리는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