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다고 대답한 504그램의 새싹이…
양수가 터지고 입원한지 아홉째 날.
아침 루틴은 변함없다. 성경책을 읽고, 기도하고, 임신과 육아 백과를 펼쳐 든다. 그러나 밥을 먹고 간식을 먹고 물을 마시면 속은 금세 더부룩해지고, 글자들이 눈에서 미끄러진다. 대신, 밤마다 찾아오는 작은 진통이 불길한 그림자처럼 마음을 죄어 온다.
간호사에게 말해도 “임신 중기에는 흔히 있는 증상”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다. 하지만 밤이 되면 배를 조이는 통증은 커져서 나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내게 이 불편은 단순한 증상이 아니다. 혹여 내 이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병원에서 쫓겨나지는 않을까 두렵다. 임신 20주 6일의 새싹이와 나를 받아줄 병원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그래서 참았다. 아파도, 불편해도 꾹 참았다.
(그때는 몰랐다. 불편하면 말하는 것이 우리 모두를 지키는 길이었다는 걸..)
어제는 새싹이의 심장 소리를 듣지 못해 하루 종일 무너져 있었지만, 오늘 아침 7시 간호사 회진에서 또렷하게 들려온 “와우, 와우” 심박음에 안도의 눈물이 솟았다. 살아있구나. 힘차게, 기적처럼 뛰고 있구나.
그러나 오후 4시는 두려움의 시간… 정밀 초음파 검사...
손가락, 발가락까지 일일이 확인하는 2차 기형아 검사다. 사실 지금 상황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양수가 터져버린 현실 속에서, 결과가 어떻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새싹이와 하루 더, 한 시간 더 함께 살아내는 것뿐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래도 새싹이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영상을 찍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 마음을 알기에, 나도 결국 기다린다. 두려움 속에서도 설렘은 있었다.
결국 시간은 흐르고, 나는 양수가 조금이라도 덜 새도록 휠체어를 조심조심 타고 초음파실로 향했다. 문제는 오늘 초음파를 맡은 의사였다. 19주 5일, 양막이 터졌을 때 내게 “가망이 없다, 포기하라”고 권했던 사람이었다. “하루 이틀 더 버텨봤자 산모만 힘들 뿐”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내 가슴에 비수를 꽂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일까. 오늘 새싹이의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도 그 따뜻하지 못한 시선이 자꾸 나를 아프게 했다.
그러나 초음파 화면에 나타난 새싹이는 달랐다.
504그램! 드디어 500그램을 넘어섰다. 몸무게는 평균 22~23주 아기만큼 자라 있었다. 작은 심장은 보란 듯이, 힘차게 뛰고 있었다. 뇌, 소뇌, 척수, 간, 담낭, 심방과 심실, 혈관 연결까지… 주요 기관들은 놀랍도록 건강했다. 척추도, 횡격막도, 콩팥도 모두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의사는 담담하게 “괜찮고, 괜찮고, 괜찮습니다”를 반복했지만,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와 남편에게는 살아있는 희망의 문장이었다. “양수 수치 3은 의미는 없습니다”라는 무심한 한마디에도, 나와 남편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기뻐했다. 어제가지 2였던 수치가 오늘은 3. 우리에겐 그 작은 변화가 새싹이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하자 모두가 함께 울며 기뻐했다. 의사에겐 아무 의미 없는 숫자일지 몰라도, 우리 가족에겐 오늘을 버틸 수 있는 희망이었다.
물론 양수가 부족해 얼굴은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손가락, 발가락, 성별도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새싹이가 작은 몸으로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는 걸. 그리고 네 심장이 오늘도 세차게 뛰고 있었다는 걸.
병실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했다.
왜 이토록 소중한 생명을 단순한 수치와 가능성으로만 재단할까... 나는 다짐했다. 언젠가 반드시 이 병원에 돌아와 그 의사에게 새싹이를 보여주며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줄 거라고… 그때 가서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포기하라던 아기가 이렇게 씩씩하게 살아 있다고..
새싹아, 오늘도 정말 고맙다.
몸무게를 늘려줘서 고맙고, 장기들이 모두 건강해서 고맙고, 비록 얼굴은 안 보여줬지만 그 기다림마저 선물처럼 느끼게 해줘서 고맙다. 양수가 부족하니 스스로 오줌을 흘려서라도 공간을 만들어 주는 너는, 참으로 강인하다. 엄마는 그런 네가 자랑스럽고 기특하다.
오늘도 너는 내게 기적이다. 세상은 의학적 수치와 가능성으로 너의 생존을 무의미하다 말할지라도, 나에게는 네 하루하루가 눈부신 기적이다.
새싹아, 너는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이미 세상을 밝히는 작은 빛이란다...
그리고 나는 배운다. 네가 오늘도 살아 있음을 확인할 때마다, 나는 절망을 마시고 감사로 토해내는 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