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적신 땅에도 새싹이는 자란다
양수가 터진지 12일차 되는 날이다…
새싹이는 오늘로 21주.
생존 가능 주수인 24주까진 이제 단 3주밖에 남지 않았다.
숫자로는 짧은 시간 같지만, 하루하루가 나를 삼키는 긴 터널 같다
오늘은 피검사와 소변검사 심전도, 그리고 엑스레이 촬영까지 받았다.
고위험 산모에게 꼭 필요한 검사인지, 아니면 장기 입원 환자라서 병원이 정해둔 절차를 따르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필요한 검사예요.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 기본적으로 다 하셔야 해요.”
간호사의 말은 친절했지만, 그 말 끝에 묘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정말 새싹이를 위한 검사일까? 아니면 병원의 수익을 위한 일일까.
병상에 누워 시키는 대로 따라야만 하는 내가 서글펐다.
자식 하나 지키겠다고 온몸을 다 내어 주는데, 정작 내 몸 하나는 지킬 힘이 없다.
휠체어를 타고 검사실을 오갈 때마다, 몸을 일으키는 순간 양수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그럴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다.
새싹이가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중한 윤활유 같은 양수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휠체어 의자에 스며든다.
나는 속으로 매번 중얼거린다.
“새싹이를 위해 조금만이라도 남아있어줘… 제발…”
남아 있는 양수 속에서 꼬물거리며 움직이는 새싹이도 느낄까.
엄마가 이렇게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걸.
엑스레이를 촬영 소식을 가족 톡방에 알리자 남동생이 물었다.
“누나, 임산부가 엑스레이 찍어도 돼? 방사선 위험하지 않아?”
그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했다.
급히 검색창을 열어보니, ‘방사선 과다 노출 시 태아의 신경계 손상 위험’이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다.
‘나 살자고, 새싹이를 위험에 노출시켜도 되는 걸까?’
간호사는 “양이 아주 미미해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라고 말했지만, 그 말 하나로는 내 죄책감이 덜어지지 않는다.
약도 마찬가지다. 항생제, 자궁수축 억제제, 수많은 주사들…
다른 임산부들이 태아를 위해 약을 끊고 버티는 이야기를 볼 때마다 나는 자꾸만 작아진다.
하지만 나는 끊을 수 없다.
내 몸은 이미 약에 의지해야만 버틸 수 있는 몸이 되어버렸다.
이 약들이 세균으로부터 내 몸을 지키고, 새싹이가 자궁 안에 머물 수 있게 한다.
간호사는 “태아에 큰 해는 없을 거예요.”라고 말하지만,
만약 그 말이 틀린다면?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저 하루를 버티며 새싹이가 조금이라도 더 자라길 기다리는 일 뿐이다.
몇일 전 피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서 철분제 처방을 받았다.
변비 때문에 마지막까지 미루던 약이었지만, 이제는 그런 사치조차 부릴 수 없다.
내 몸의 영양분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낀다.
새싹이에게 그 결핍이 전해질까봐 두렵다.
가족에게 걱정을 털어놓자 동생이 말했다.
“누나, 코피 조금 흘린 거라고 생각해. 괜찮을 거야.”
그렇게 단순하게 마음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내 몸의 이상을 잘 안다.
세 끼 식사도, 간식까지 꼬박 챙겨 먹는데도 철분 수치가 낮다니.
도대체 내 몸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요즘은 새싹이보다 내가 먼저 쓰러질까 봐 두렵다.
‘만약 내가 죽으면, 새싹이는 누가 키워줄까…’
그 생각이 밤마다 목을 조른다.
가족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대학병원으로 옮겨야 해. 21주면 받아줄 가능성이 있어.”
하지만 나는 아직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다.
새로운 환경으로 옮기는 건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지금 익숙해진 이 병실의 공기, 다정한 간호사들, 믿음직한 주치의.
이 작은 세계가 나를 겨우 지탱하고 있는데, 그걸 떠난다는 건 너무 두렵다.
나는 안다. 이건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내 성격, 그 오래된 나약함 때문이다.
예전 회사에서도 그랬다. 떠나야 할 때를 알고도 끝까지 머물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변화가 두렵다. 새싹이가 견디지 못할까 봐, 나도 함께 무너질까 봐.
그래서 오늘도 익숙한 이 병실을 꼭 붙잡고 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또 다른 현실이 짙게 깔려 있다.
병원비.
28주까지만이라도 버텨야 하는데, 이 병원비는 도대체 어떻게 감당할까.
‘아기를 살려야 하는데 돈 걱정이라니…’
이렇게 자책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자꾸 계산기를 두드린다.
내가 괜히 양막을 터뜨려 신혼부부의 삶을 밑바닥으로 끌어내린 건 아닐까.
몸보다 더 무너지는 건, 그 생각이 주는 무력감이다.
주말이 지나면 피검사 결과가 나온다.
양수량, 아기 크기, 그 모든 수치가 나와 새싹이의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또 깊은 시름에 빠지겠지.
나는 오늘도 병상에 누워 생각한다.
‘내가 잘 버티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흘러가는 시간에 매달려 있는 걸까?’
21주.
한 생명이 이 세상에 오기까지 절반을 넘어선 시간,
그러나 내게는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로운 시간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희망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아침엔 살아 있음을 감사하다가도, 밤이 되면 불안이 밀려온다.
양수가 터진 지 12일째.
오늘도 새싹이는 내 안에서 조용히 움직였다.
그 미세한 움직임 하나에, 나는 다시 숨을 고른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하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나는 다시 하나님께 울며 매달린다.
“주님, 오늘도 숨 쉬게 하시고, 새싹이를 품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내일의 두려움이 커도, 그분이 내 안에 생명을 심으시고 자라게 하신다는 믿음 하나로 오늘을 겨우 버텼다.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그 말씀이 오늘따라 마음 깊이 스며든다.
내 안의 새싹이도, 믿음도, 모두 내가 아닌 그분의 손에서 자라고 있음을 안다.
오늘 나는,
하루의 끝자락에서,
21주 새싹이의 엄마로서,
믿음으로 하루를 겨우 견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