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너무 참으면 안되는지

아는 길은 멀어도 편하고

by 박경이

1

시월의 마지막 밤이라며 술 먹고 온 남편을 아침에 내 차로 등교시켰다. 폐에 담기는 아침공기의 상쾌함에 새삼스레 놀란다. 간지럽게 스며들어 마음을 일깨운다. 출근하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맑다. 새하늘이 열린 듯한 얼굴들을 하고 있다. 나도 그러했던가, 어느 때는 그랬을 터이다. 하아~~ 청량감으로 눈도 반짝,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이 고물고물 부푼다. 좋은 남편인걸, 아내를 위해 일부러 차를 두고 집에 왔던 거야.


힘찬 아침을 더 느껴보느라고 시장쪽으로 박물관 길로 멀리 돌아 집에 왔다. 커피를 내려야지, 볶은 지 닷새 된 코스타리카 봉지를 열며 벌써 취한다. 십여 년 세월에 무뎌진 핸드밀, 힘을 줘도 갈기 힘들지만 새 것으로 덥석 옮겨가지 못하고 있다. 흠흠 향기... 그러나 곧 새 핸드밀을 쓰게 될 것이다. 부드러운 새 칼날의 편안함을 즐겨 느끼게 될 터이다. 땅콩쿠키 하나에 생초콜렛도 한 개 꺼내 담는다. 곡선 테두리에 장미로 장식된 쟁반도 예쁘다.

"계세요? 표고버섯 좀 가지고 왔어요~."

"어서 오세요~ 들어오세요. 커피 내리는 참인데 잘 오셨어요."

반겨 맞으며 그녀를 위해 다시 한 잔, 연하게 천천히 내린다. 쿠키와 초콜렛도 하나씩 더.


2

시간 뺏을까 봐 미안해서, 시간 뺏어서 어떡해요,를 번갈아 후렴구로 넣어가며 그녀가 답답하기 한량없는 이야기를 눈물 섞어 풀 때, 나는 조그맣게 한숨도 쉬고 주억거리며 그저 듣는다. 가끔 엿보이던 생기나 말랑함도 없이 오늘은 금속 같다. 신체적으로는 이상을 발견할 수 없으며 따라서 원인을 모른다는 병에 큰 수술을 거듭하는 중이어서 그런가 싶다. 그러나 가족·친지 많은 사람의 걱정과 관심에 그녀가 기뻐하니 나도 함께 감사하며 회복을 기원했다. 자신의 꿈을 접고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평생의 그 애씀과 희생에 감탄할 수밖에 없으니, D 앞에 놓인 날렵한 찻잔에 만발한 장미꽃이 시들고 초콜렛도 쿠키도 회색이 되어도 나는 오직 그의 말을 경청할 뿐. 힘겨움과 고통을 거듭 인정하다 보면 처음 들을 때보다 더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느닷없이 D가 일갈한다.


“모든 걸 참고 살았는데 왜 그래야 돼요?”

그러게 말예요. 저도 그게 궁금해서 공부하는 거예요.”

“그래요? 너무 참아서 그래요!”

“맞아요. 그런데 너무 참았는지, 무엇을 어떤 식으로 참았는지가 저는 궁금해요. 그리고 너무 참으면 안 되는지를 저는 지금 알아가는 중이예요.”

D 스스로 문답했으나 지금 찾은 답이 아니다. 저번에 스스로 내놓았던 답을 다시 말했을 뿐. 잊을 수도 없고 모를 수도 없는 단답형 정답. 이제 질문도 아니며 따라서 답이라 할 것도 없지만 그것으로 그녀는 또 충분한 것 같았다. 진짜 질문을 피하기 위한 질문의 형식이고 답을 숨기기 위한 답이다. 외워서 알지만 도무지 속내용을 알 수 없는 답. 자신이 진정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믿는 답이다. 그러나 반복을 피할 수는 없는 질문을 일단 통과하기 위해 답을 준비할 수밖에 없는. 내내 반복하던 후렴구로 자리를 마무리한 다음 D는 돌아갔다.


3

흠. 두 시간 뺏겼네, 부디 그녀의 것이 되기를. 그녀는 내 시간을 뺏고 싶었고 나는 기꺼이 뺏기고 싶었다. 그러므로 우리 두 사람 모두를 위한 시간이었다. D는 돌아가서 더 많이 참고 더 착한 아내가 될 것이다. 튼튼한 그녀의 갑옷은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 잃을 빛도 없으려니와 그대로 얼마든지 괜찮을지도 모른다. 무겁고 낡았으나 수십 년 하나였던 몸은 새옷을 모를 터이니 이렇게 가끔 털어 입는 걸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진정 자신이 원하여 그렇다면 D에게 좋을 터이다. 아는 길은 멀어도 편하고 새길은 가까워도 두려우니 어쩌랴. 다니던 고통의 길, 들리지 않는 자신의 비명에 젖어버렸다면, 고통을 '즐긴다면' 참말 서러워서 어쩌나. 남은 힘도 없다면 더 더 어쩌랴. 목을 열고 자신의 말을 꺼내야 하는데. 목을 열도록 만들어 줄 말이 필요한데. 그 말을 건드리게 도울 사람이 필요한데. 칼 든 손이 아니라 말이 나오도록 등을 두드려줄 손이 필요한데. 수술칼과 화학약물이 어떻게 사람 마음을 알랴, 무슨 인간의 마음을 읽으랴.


우리는 두 달 뒤에 다시 이렇게 만날 것이다. 그 정도의 열림이 D의 건강함이거나 쉼인지도 모른다,고 믿으며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이것이 삶 뒤란에서 그가 발견한 시원히 그늘진 소로라면 밟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바늘구멍 하나만큼씩이라도 넓힌 문을 가끔 열고 숨고르기만 하는 것도 다행이라,고 이제 나는 진정 나를 다독인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왜 그러느냐고 나를 나무란다. 네 걱정이나 하라고. 흠. 자기가 만들고 엮여 살았던 고통의 형상과 대면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저 몸짓만이 필요할 때도 있고 시늉만으로 충분한 사람도 더러 있으니 말이다. 사전적 의미 이상의 뜻이 당최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그러나 그 작은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자신으로 거듭 살아보기를. D의 ‘찬란한 날개옷’에 대해 이야기하며 미친 듯 웃을 날이 오기를. 그러나 한편 또 그런 게 있기는 할까, 꼭 해야 할까, 하면 좋을까. 만들면 있지, 있게 하면 좋지. 그녀의 몫이지만 내것만 같다. 어쩌면 그는 이미 다른 옷으로 바꾸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얼마든지 시간을 뺏어보시오

나는 시간을 만들 터이니

당신이 누구에게 주어버린 것만큼은 아닐지라도, 준비할게요

참고 참으며 자신을 줄이고 졸인 작은 여인이여

마침내 자신의 모든 말을 잃어버린 여인이여

열리는 새하늘, 폭발하려는 신세계는 당신의 목에 걸려있습니다

어느 남자보다 용감하고 크고 아름다운 자기만의 세상을 가졌던 여인이여

비슷한 듯 다른 가을이 색깔로 빛으로 소리로 어울려 찰랑대는군요

살금살금 비에 젖어 제 이름에 부피를 더하며 깊어지는 색이 보이시나요

아름답다 곱다 느끼는 순간 슬픔의 표상으로 둔해지던 가을

그윽히 깊은 데서 울려나오는 가락처럼 고양되는 영혼을 느껴봅니다

담대한 평화, 가벼운 졸음

잘 마른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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