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부활 혹은 승천

얼굴 없이 신음하는 사람 하나

by 박경이


은미가 놀러 왔다. 손바닥 딱딱 부딪치며 팔짝 뛴 다음에 조갯살 넣은 호박고추 부침개 부쳐 먹었다. 드디어 내손으로 부쳐서 그를 먹였다. 사 준 게 아니다. 맛있어요~~ 이런 것도 할 줄 아세요? 내가 못하는 게 있는 줄 알아, 못하는 것 빼놓고? 아이고, 그거 노땅 개그예요. 그려, 근데 고급하잖아? 말을 쥐어짜거나 비틀지도 않고. 그런가요, 그런 것 같네요.ㅎㅎ

내가 책 한 권 사주면 꼭 저도 한 권을 사주던 은미. 그냥 받기만 하면 안되냐고 물었을 때 자신도 주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데 왜 그러시냐고 해서 맛있게 한 방 먹였던 친구다. 이후로는 책을 선물할 때마다 내가 받을 책이 은근 궁금하고 기다려지기도 했는데 그가 준 책들은 나에 대해, 사람과 삶에 대해 알아가는 내내 제대로 도움이 되었다.


그 은미가 부침개 맛있게 먹고 내가 맛있게 내려준 커피를 마시면서 어째 갑자기 눈이 촉촉해지나 했다. 커피잔 감싼 양쪽 손가락들을 고물거리면서 망설이더니 입을 연다. 고등학교 때 영어선생님한테 ‘과하게’ 야단맞고 상처받은 이야기를 전할 때 참 가슴 아팠다. 오래 교사였던 나를 향한 비난인 듯 많이 미안했다. 상기된 얼굴로 당시의 상황과 분노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치유되었음을 알고 안도했다. 집중하여 그에게 공감할수록 생의 신비에 감사하는 맘이 생겨났으며 청소년기의 강한 생명력에 새삼 주목하고 놀랐다. 보란 듯이 좋은 교사가 될 거라는 말로 자신의 현재를 확인시키는 듯 말할 때, 상처와 고통만이 우리를 키운다는 말뜻을 새삼 아프게 새겼다. 나는 그가 사람의 마음을 잘 읽는 선생님이 될 거라고 믿었다. 잘 읽고도 때로 모른 척하면서 그 마음 자람을 도와주는 선생님이라 하면 알맞을까. 더욱이나 늦깎이로 정신분석과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편안해질수록 이젠 은미가 그 영어선생님을 용서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가능할 거란 확신도 따라왔다.


그런데 당시 교사에게 항변했던 말을 들으면서부터는 오직 은미만 있던 자리에 얼굴 없이 신음하는 사람 하나가 더 보이는 거였다. 그에게로 완전히 기울었던 저울이 평평해지면서 고통은 두 개가 되었다. ‘과한’ 항의를 받은 교사의 고통이 내앞에 불쑥 드러났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의 어조에서 감정이 많이 빠져나가고 우리의 이야기를 ‘착하게’ 마무리하면 될 어느 순간 나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그런데, 은미야, 음...


“그 선생님은 어땠을까?”

“ ....... ”


가보려 하지 않았던 자리에 은미가 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발짝 더 가고 싶었다. 어쩌면 교사의 상처가 더 깊을 수도 있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두 눈을 번쩍 뜨며 정면으로 나를 보는 은미. 어른이며 교사이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고, 항의할 대상이 없다고 가정되는 사람이어서 더욱 감당하기 어려웠을 그의 자괴감과 모멸감은... 이후 아이들 앞에 당당히 서기 어려웠을 거라고, 천천히 낮게 말했다. 상처는 측정가능한 깊이나 크기가 아니며 아픔은 각자의 심리적 진실이므로 비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외면했던 남의 자리에 털석 앉아 보기 위해서 우리는 종종 비교라는 다리를 놓는다. 건너간 다음 망설임없이 걷어차야 하는 가설다리, 그것은 상상력이자 용기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직선으로만 치닫던 시간을 끊고 큰 숨 다시 시작하기를.

부디 그 교사도 자기감옥으로부터 뚜벅뚜벅 나왔기를.

상처를 훈장으로 바꾸되 달고 다니지는 말아야 한다.

불가피한 고통과 좌절에 대한 핑계거리가 아니라 거울이자 동력으로 사용해야 한다.

상처에 붙들린 자기연민은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킬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

지금 여기, 깊은 흔들림 속에 용서가 시작되는 탄탄한 자리이기를.

용서는 다음으로 건너가기 위해 보이지 않았던 문을 여는 일이다, 용서는 곧 자기용서다.

무수한 자아로 가득한 순간을 중지하고 타자를 발견하며 자신을 열어젖히는 일이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작은 부활 혹은 승천의 순간, 그 힘은 창조를 부른다.

어쩌면,

서로 바꾼 자리에서 이미 두 사람은 손을 잡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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