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살 나의 강태공

꽃물이 되어 흐르는 비

by 박경이


비오네, 비 오시네.......

비 오면 종종 면천중학교 그 녀석 생각난다.

곤아, 보고 싶다 짜샤, 어디서 뭐하니. 고향에 터 잡고 살지도 모르겠구나. 송영선생님이 그러셨거든.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고. 네 얘기 했을 때, ‘싸가지 있는 놈’이라면서 그리 말씀하셨지. 그때 비로소 나는 어른들에게서 듣던 그 속담의 의미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단다. 그건 말이야, 사람이 제 몸으로 살아 봐야 제대로 뜻을 아는 날이 오게 되는 그런 말이거든. ‘싸가지’라는 말도 그렇지 않니. 싹아지, 싹수, 인간됨의 싹. 뜻이 새겨지지?


그날, 나는 교단을 왔다갔다 열불나게 설명하며 애들 대답에 칭찬하면서도 네가 수업에 집중하다 말다 하는 걸 눈치챘지. 아니, 두 가지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좋겠구나. 나를 잘 보고 설명을 듣는 한편 규칙적으로 창밖에 눈길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그저 내리는 비를 보는 줄 알았지. 나 역시 흘끗흘끗 비를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너는 고개에 허리까지 가끔 창쪽으로 은근 늘이더군, 엉덩이도 살짝 들썩. 교단에 서면 다 보인단 말이야. 난들 학생 때 알았겠니, 선생님을 잘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며 흐뭇했지. 소설책 끼워 읽거나 이소룡이나 엘비스 프레슬리 사진 본 것까지는 뭐, 도시락도 까먹었거든.


궁금했어. 뭘 보나, 저 녀석. 어어, 왼팔이 창밖으로 나가 있네.

뭐가 있나, 뭘 하는 걸까. 애들이 공책에 정리하는 것을 돌아보며

난 천천히 창 쪽 너희 분단으로 갔지.

그 때 너는 왼팔을 얼른 책상위에 가져다 놓고 싶었을 거야.


“곤이 뭐 하니.”

“고기 잡아요.”

너는 빙그레 웃으며 나랑 눈을 마주친 다음 고개를 돌렸더랬어.

“어디 봐.”

손에 들린 짤막한 막대기 끝에 묶인 가늘게 쪼갠 비닐 포장끈은 낚싯줄.

그렇게 드리운 낚싯줄 끝에는 지우개 낚시밥.

“많이 잡아라.”


짜아아아식 보고 싶네, 발그스름 볼따구 순한 얼굴

열다섯 살 나의 강태공, 정말 보고 싶구나

어떻게 너만의 아름다움으로 굽고 휘었는지

어떤 그늘을 드리우며 새들을 품었는지 궁금하구나

세월을 어찌 낚았으며 여전히 잘 낚고 있는지.


성적이 좋은 녀석은 아니었어,가 아니라, 성적이 나쁜 편이었지?

나대거나 요란하지 않지만 반짝이는 장난으로 생기 담긴 눈빛

입가 미소가 늘 든든하던 녀석이었다.

제 할 일을 하되 선생님들 눈에 들려

애쓰지 않는 품이 심지 있어 뵈던 놈.

이름 뒷글자가 ‘곤’인 것만 기억한다.


가을비 오신다, 곤아.

우리집 단풍 숨넘어간다.

연못가 화살나무는 벌써 새빨간 깃털로 날아올랐구나.

햇빛 알갱이들 속으로 흩어질 듯 춤추던 색색을 주저앉힌 비.

꽃물이 되어 흐르는 비.

너희 동네 진달래 면천은 어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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