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시작입니다

우리의 춤은

by 박경이


오오, 따뜻한 날씨야 계속되어라. 시골집 겨울은 정말 아파트와 달랐으니 올 겨울 엄동설한 북풍한설도 잠깐이면 좋겠다. 이사 후로는 '나 겨울 좋아한다'는 말을 기껍게 하지 못하게 된 것 같다.

마늘과 된장, 들기름 양념에 잘 무쳐둔 열무시래기에 쌀뜨물 붓고 멸치 듬뿍 넣어 끓이니 너무너무 맛있다. 고루 부드럽게 간이 잘 밴 건더기를 계속 건져 숨도 안 쉬고 먹는다. 아, 그런데 내 남편은 조심조심 된장 콩조각 하나를 젓가락으로 건져내서 버린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가만히 살살 떠서 먹는 그를 보고 혼자 미소 짓는다. 전에는 완전 꼴비기만 하더니 이젠 재밌다. 다름을 와락 인정해버렸거든. 왜 국 먹을 때 지뢰 피하듯 파마늘고추 양념 조각 비켜가며 국물만 조심스레 떠먹는지. 요즘은 내가 배당하는 건더기를 조금 먹어주는 정도에 이르렀다.

계속하자, 그는 왜 이런저런 병뚜껑을 안 닫거나 살짝만 돌려두는 걸까. 소소하게 사용한 도구를 제자리에 두는 법도 없다, 원위치! 하사관 출신인데 말이다. 그리고 밥은 왜 꼭 숟가락으로만, 수평으로 깎아서 먹는지. 아주 작은 부분까지 너무 다르다. 관찰하듯 지켜보다가 나도 닮아가는 것 같다. 그 자리에 내가 앉아 보다가 같이 앉는 거지, 그가 되어 보는 거다. 이해라고 입에 달고 사는 말은 주로 일방적 체념이거나 의도적 모른척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의문과 불평의 말로 시작하여 투덕투덕 잘 통과할수록 진짜 이해에 가까워진다.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설명하고 이해할 수도 없으려니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은 어느것 하나 까닭없는 언행 역시 없음에 대해 알아가는 중이다.


같은 줄 알았다가 세월갈수록 구석구석 다름이 발견되는 사람 둘이 같이 산다는 게 참 신기하고 아주 재미있다. 그를 앎으로써 나를 알게 되는 것은 유사성과 차이점을 인식하되 통합적 인간 이해로 다가가는 일, 이른바 삶의 확장과 성숙일 터이다. 아주 작아서 소중한 것들을 통해 삶을 되돌아 보는 것이야말로 이전의 삶을 듬쑥 받아들이는 동시에 미래를 사는 일이다. 다름을 뒤집어 같음에 이르며 어긋남 속에서도 맞물려 돌아가는 두 세계를 드나드는 재미, 사랑의 이름으로 주고받은 고통과 상처는 어떻게 승화되거나 아물었는지. 문제 있어 보이는 그의 어떤 면이 나를 도왔으며 나는 또 어떤 면에서 어떤 식으로 그를 도왔는지. 삶이라는 덩어리 속에 묻혀있는 그를 섬세하게 꺼내 다시 만나고 나도 만난다. 우리 둘의 춤은 과연 어떠했던가. 둘이 춘 춤이 맞는지. 앞으로는 어떤 춤을 출 것인가. 춤을 추긴 춘 것인지. 갈수록 수식어가 불필요한 그냥 사람이 보이고 나 또한 좀 더 사람이 되어간다.


점심 먹을 참인데 정화조 청소차가 왔다. 대문에서 두리번거리는 아저씨.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작년엔 마당 이~쪽까지 들어왔었는데요.”

“올해도 들어오셔도 돼요.”

“그런데.......”

“왜요? 아~, 잔디 다칠까 그러시는구나.”

“잔디도 그렇지만 돌도. 차가 너무 무거워서요.”

“아이고 감사해요. 괜찮아요, 쑥~ 안쪽까지 들어오세요. 깨질 수도 있는 게 돌이죠. 잔디는 탱크가 지나가도 괜찮대요. 우리집 지어준 이가 그랬어요.”

아저씨는 잔디와 바닥돌 위로 당당히 입성했다. 그래서 거실 베란다 바로 앞에 똥차가 섰다. 아저씨 뒤를 따라 뒷마당 아래까지 힘차게 전개된 호스는 꽤 먼 거리를 주저하지 않고 우리가 싼 똥을 길어 올린다. 어머나! 고맙기도 하지. 잘 먹고 잘 싸며 잘 살았다고 인증도장 찍어주시네. 앞으로도 푸르르 둥둥 뜨는 노란 똥, 수준 높은 똥을 만들도록 해야지. 퐁퐁 픽픽 집주변을 잠시 장식하던 냄새는 똥의 힘찬 승화다. 사람들이 자신의 사랑스런 아랫배에 저마다 4Kg 이상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 자존심의 합창이다.


그가 호스를 감아 들이는 동안 음료수값 드리고 싶어서 만원짜리 한 장 챙겨 나갔더니 그새 차는 꽁무니에 달린 호스를 끌며 아랫집으로 사라지는 중이었다. 남의 집까지 가서 돈 내미는 것은 좀 거시기하여 가서 인사만 하고 왔다. 에이, 일 년에 한 번인데, 고마운 마음을 못 전하다니 바보!

바보라니, 건강한 똑똑이가 되었는걸. 똥차 옆에서 똥호스를 지켜보며 아저씨랑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냄새에 과민한 나를 탓함 없이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던 내가 자랑스러웠는데. 한편, 그는 어떤가. 잔디까지 생각하면서 또한 거침없이 일을 하는 그야말로 진짜 멋진 인간 아닌가. 작년에 없었던 잔디와 돌이 깔린 것을 발견하고 또 걱정하는 그야말로 섬세한 사람 아닌가. 망설이지 않고 물어본 다음 최적의 상태에서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다운 사람 하나를 이 가을에 나는 만난 것이다.


들어와 식탁에 앉자마자 열무김치에 된장 넣고 밥 비벼 먹었다. 얌냠냠.

밥이 똥이긴 하지만 똥은 똥이요 밥은 밥이니 통합하고 분리할 수 있어야 하거든.

나 사람 됐다. 작은 감각에 매달려 고통을 자초하는 바보를 벗어던졌다.

나, 명실상부 진짜 사람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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