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데 혹시...
기록하지 않으면 내가 사라질까봐, 나의 연속성을 잃어버릴까봐 매일 나를 기록한다. 하루의 매듭이자 일상의 축이며 생존기술이니 토 달지 말자 하면서 쓴다. 기록하지 않으면 뻥이여, 안네가 스승이다, 하면서 그저 몇 줄이라도 써놓는다. 써야만 마음 놓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 만큼 사람이 오종종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못쓸 때는 다음날 대략 쓴다. 보이지 않는 점들을 잇고 체인을 만드는 일, 좀더 내가 가능하리라 믿고 내 삶을 만드는 방식이다. 그런데 갈수록 덜 쓰고 안 써도 괜찮다. 곧 안쓰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정도의 일기만으로도 행복한 사람들이 이미 많으니 말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일기를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슬슬 들기도 하니까.
그러니까 명실상부 일기는 내 인생장부, 인간문서다. 내 목소리로 기록한 너덜너덜하고 두툼한 장부.
그러므로 그 장부의 자기진술란이 무척 넓다는 건 아주 중요하다. 내가 쓸 수밖에 없는 존재자로서의 조각과 찌꺼기들을 늘어놓는 동안 나와 연결되는 타자들을 이해하는 재미가 있다. 문득 나타났다 사라져버리는 실재(the Real)의 비늘과 꼬리를 아슬아슬 연결하며 나라는 존재를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 나를 찾다 남을 만나고 나를 쓰다 남의 장부도 읽게 되는 셈이다. 마침내 그것의 뒷뚜껑이 날렵하게 덮이는 날 인증도장도 힘차게 찍히지 않겠는가. 쿵!
딱!!
딱!!
한낮에 흐르는 베토벤의 연주 사이 그 짧은 쉼표를 정확히 가르는 틈입자,
아랫집 아저씨가 골프공 때리는 소리,는 더욱 힘차다.
딱!!
어마어마한 강도로 응결된 열정을 뿜는 자기진술이다.
어쩌나, 우리 소리와 뽕띠 스트레스 쌓이지 않을까.
그래서 특히 요 며칠 소리가 마르는 게 아닐까.
강아지집 바로 아래 축대에서 골프공을 쳐대니까 말이다.
나는 음표 없는 피아노를 마구 두들겨 볼까도 했다.
그러나 금세 베토벤의 <열정>이 그것을 능가해버리니 웃고 만다.
웃을 일이 아니다, 심각하고 비장하다. 골프공이 우리 마당으로 튀어오를 때도 있다. 고양이가 나타나지 않는 한 주변에 무관심한 우리 소리조차 깜짝 놀라던데 나는 어쩌나. 이사 오기 전에 이웃의 마당 구석구석을 살폈어야 하는 줄 누가 알았으랴. 죄송한데 혹시 골프 연습장 만들어 놓지 않았나 살펴봐도 될까요, 호호호? 웃을 일이 아니라니까. 이 소리를 하루 걸러 들으며 어떻게 살지? 가문의 명예를 걸고 결투를 신청해야 하는지도 몰라. 그럼 한 방에 내가 쓰러지는 거야? 갑자기 ‘총 맞은 것처럼’ 통증이 꿰뚫는다. 끔찍하던 노래 제목이 느닷없이 감상 완료되었다.
딱!!!
참말로 사람을 부러뜨리는 뻔뻔하고 흉물스런 소음이다.
그러나 이건 나의 진술이다, 그의 것이 아니다.
머리가 띠용~ 가슴이 덜컥... 어쩌나
그 역시 자신을 진술하고 있는 것이로구나, 딱!!!
통쾌하다고, 가슴이 탁 트인다고, 살 것 같다고...
그것만이 아니라고, 당신이 뭘 아냐고. 딱!!!
자신의 장부를 열며 장마다 열렬히 인증도장을 찍는다. 딱!!!
아하,
나를 깨는 소리
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