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욕>

홀리는 시간

by 박경이

1

아파트 주변 잘 자란 나무들 그 잎새의 어울림이 곱다. 계획도시의 깔끔한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내 시골집에서는 수평으로 느끼던 가을, 치켜보던 단풍을 여기서는 발아래로 볼 수 있다. 아파트 건물 사이의 녹지가 넓으니 실내에서 내려다보는 단풍이 더욱 실감난다. 갖은 색의 그물로 한 층 공간을 만들어내며 멀리까지 풍경을 이어주는 나무 가지들과 잎새들과 빛, 팔랑팔랑 떨어지는 노래들 이야기들... 우리 앞산 밤나무도 힘겨운 열매 떨군 다음 붉게 상기된 갈색으로 쉴 채비하겠구나. 연못가의 화살나무는 새빨간 깃달고 날아올랐겠다. 단감도 익었을 테고... 세종에서 한 달이 훌쩍 지났다.


도심 곳곳에 공원을 많이 두어 잘 지은 도시다. 뉴욕여행에서 너무나 부러웠던 부분 하나가 실현된 도시. 기름하고 크지도 않은 맨해튼의 절반은 될법한 한가운데를 아낌없는 직사각형으로 푹 떠내어 만든 센트럴파크. 그것의 인상이 하도 강렬해서 단순비교는 불가능하지만 맨해튼을 생각하며 계획한 도시라니 자꾸 관심과 기억을 부른다. 12년 그 때와 같은 계절이어서 더욱 그런가 보다.

그런데 며칠 전, 고층건물 도심 한복판에 황무지 같은 공원을 발견했다. 큰 소나무 몇 그루와 벤치가 놓였을 뿐 일부러 비워놓은 듯한 땅바닥에 드문드문 풀들, 그 대단한 발상에 충격을 받았다. 센트럴파크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공원이자 순수 산책로라고 열광했다. 사막같은 자연의 황량함을 맛보며 흙을 밟다보니 막힌 것이 뚫리고 비워지는 느낌이었다. 도심의 공백이자 도시의 여백으로서 이거야말로 건축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고, 게다가 움푹 파였다 할 만큼 지대가 퍽 낮아서 인간의 시작과 건축의 근본을 생각하게 한다고 기뻐했다.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처음봤어요, 찬희가 말했다.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게 아니에요. 백화점이 들어설지도 몰라요. 하하하 쯧, 내가 너무 나갔나? 아깝다. 공백을 유지한 채 부디 신선하게 잘 살리기를. 도시 만들기! 그런 엄청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상상력의 크기나 다름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들의 재미난 놀이이자 엄중한 작업에 대해 생각 해본다. 아는 바가 없으니 금방 막히고 말지라도.


한글 이름과 지명이 많아서 되려 낯설기도 하지만 부를수록 다정하다. 일본어에 치이다가 영어에 잡아먹히는 우리말. 순수,란 환상일 뿐이지만 안타까울 때가 많았는데 이제 불가피한 오염이자 풍부해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세종시 도심 대부분의 도로에서 차들은 천천히 달리고 길가에는 주차하지 않는다. 보행신호를 안지키는 사람도 못보았고 비상등 켜놓고 정차 중인 차를 보기도 어렵다. 운전자들은 언제나 보행자를 살피고 멈출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으니 한국형 태도로는 내게 낯설지만 참 반가웠다. 그리고 맨해튼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나게 한다.


2

차보다 항상 사람 우선. 보행신호가 아니어도 인도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 건너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도로에 발을 내려놓을 때면 차들이 시나브로 정지하는 걸 보고 놀랐더랬다. 달려오는 차들의 흐름을 끊을만하다 싶을 때면 언제든지 우르르 밀고 간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이어지는 통행자들로 길은 막히고 차들은 조용히 기다리는 게 보통이던 것이다. 한 달 가까이 지나 나도 퍽 익숙해진 어느 날, 차도 한복판에 들어서는 찰나 달려온 차가 내 코앞에서 급정거를 했다. 젊은이가 창으로 열 받은 얼굴을 내밀더니 짜려보며 소리를 지른다.

“당신 말이야~~!”

나도 마주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그렇지만 너는 더 천천히 운전했어야 해.”

“I'm sorry!”

얼랄라? 뜻밖이었다. 나는 손을 흔들어 주고 건너갔다. 요란한 심장박동. 남의 나라에서 죽는 줄 알았다, 정말 껌뻑 놀랐다. 길 건너면 바로 있는 단골 카페는 막 문을 닫는 중, 나를 알아본 직원이 말한다.

“미안해요. 오늘은 토요일이잖아요.”

“그렇군요. 좋은 시간 보내요.”

가벼운 슬픔. 나는 어디로 갔던가. 놀란 가슴 위에 흐뭇한 사람냄새를 지닌 채 다른 카페를 찾았을 것이다. 사는 것에 대해 생각했을 게다. 한편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그때 죽었으면 어떻게 처리되는 거지? 종종 떠올랐다.


여기 세종은 보행신호조차 더 긴 것 같다. 뉴욕은, 짧았다. 그들은 다리가 길어서 그런가 했다. 한번은 횡단보도 못 미쳐서 초록불로 바뀌는데 앞에 가던 한 여성이 서두르길래 나도 그 뒤를 쫒아 성큼성큼 걸었다. 결국 그 걸음을 따라 잡지 못한 나는 저편 인도로 올라서는 긴 다리를 보면서 이쪽에서 웃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바쁜 도시라고 해도 신호는 너무 짧다 싶었고 사람들의 보행속도는 너무 빨랐다. 지금은 어떨까. 특히나 출근길에 마실 것을 들거나 먹으면서 앞만 보고 바삐 걷는 사람들은 인상적이었다. 추울 때도 벤치에 앉아서 먹는 사람들이 많았고 공원에 빈 벤치는 흔하지 않았는데 문득 나는 그들이 외로워서 나오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를 두고 앉더라도 벽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외로운 것조차 느낄 수 없어서 나오지 못하면 어쩌나, 너무 외롭고 아파서 밖에 나올 힘조차 없는 거라면 어쩌나 걱정도 했었다.


3

그런데 여기, 경찰도 순찰차도 안 보이는 까닭은? 곳곳에 CCTV가 엄청나게 많지 않을까 싶다. 그것을 활용하여 정보를 얻고 즉각 출동하는 걸까, 경찰도시? 흠. 뉴욕은 돌아다니는 경찰과 순찰차들이 무척 많았다. 총 쏘는 미국 경찰, 흑인 용의자에 대한 무차별 발포, 그들은 무섭다고 각인되어 있었으므로 마주치는 게 싫었다. 몬탁 가던 날, 팬 역에서 경찰들이 짝지어 다니면서 흑인과 유색인종의 표만 검색하는 것을 보았다. 커피를 마시며 기차를 기다리던 내게도 표를 요구했는데,(저녁에 TV를 보니 용의자가 여성이었음) 왜 내가 당신한테 표를 보여줘야 하느냐고 한 번 버티다가 얼른 표를 꺼냈다. 무섭다고 넘치도록 인식된 ‘총 쏘는’ 미국 경찰, 게다가 그는 백인이었거든. 내가 하는 차별이 아니라 당하는 차별, 더욱이나 말 그대로 인종차별이 무엇인가 뜨끔하게 맛보았다. 한국에서 경험할 필요가 없었던 것을 당했던 실제 인생공부였다. 그런데 내가 경찰에게 도움!을 받은 일이 발생했다.


2010년 11월 11일, 맨해튼의 이스트강을 따라 산책하던 날. 16번가부터 강변길을 걸어 유엔건물에 도착했다. 여덟 살부터 교과서에서 사진으로 익숙한 만국기 펄렁이는 유엔건물을 돌아보고 나와서 다시 산책길을 찾는데 강변으로 이어지는 길이 발견되지 않는 거다. 그러던 중 연결되는 길이 하나 보여 반갑게 걸어 들어갔다. 문득 옆으로 지나는 차들의 속도가 만만찮아 놀라던 참인데 차 한 대가 속도를 줄이더니 걸으면 안 된다고 소리를 내지른다. 조금 더 걷자마자 도로가 양방향으로 만나 8차선으로 쫙 펼쳐진다. 차도 한가운데 나타난 나 때문에 놀란 차들이 비상등을 켜고 빵빵대며 비켜간다. 오도가도 못하고 아찔~, 왱왱~~~~ 순식간에 경찰차가 오더니 정차한다.

“타!”


황급히 내린 경찰이 뒷문을 척 열면서 한 말, 큰일 났다. 너무 무섭지만 길바닥도 무서우니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 탈 수밖에.

“고맙다. 너무 무서웠고 도움이 필요했다. 당신이 나를 구했다.”

앞과 뒷자리 사이가 철망과 함께 투명판으로 막혀있는 좁은 경찰차, 영화에서 많이 본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아까 그 도로만큼이나 그들이 무서웠기 때문에 거스르지 않으려는 표현이 쏟아졌다. 비겁해져야 했다.

“당신 왜 거기를 걷고 있는 거요?”

조수석에 앉은 경찰이 내 쪽을 돌아보며 짱짱한 목소리로 묻는다.

“동쪽 강변 따라 걷는 중인데 길이 끊겨서 찾다가 이렇게 되었다. 표지판을 잘못 읽고 들어온 것 같다. 너무 놀랐다. 당신 경찰들, 아주 고맙다. 이제 살았다.” 경찰서 데려 갈까봐 진짜 겁났다.

“어디서 왔죠?”

다행히도 부드러운 목소리. 나는 눈을 마주보며 말하려 애썼다. 순수 여행자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경찰서 가지 않으려고.

“대한민국, 남한. 지금 뉴욕 여행 중이요.”

“왜 강 따라 걷는 거요?”

“맨하탄의 모든 거리를 산책하고 싶어서 왔거든요. 오늘은 이스트 강변길을 따라 걸어오르던 중이었는데 유엔 지나면서 강변길을 찾지 못한 거죠.”

“그럼 계속 걸을 건가요?”

“네, 아까 매우 얼어붙어 있었는데 당신들 덕분에 살았어요. 너무 놀랐거든요.”

“어디서 내려주면 좋겠어요?”

“강변길과 연결되는 곳 아무데나 내려줘요, 정말 고마워요.”

“여기서 바로 오른쪽으로 이스트 강변길에 연결됩니다. 좋은 시간 보내세요.”

“정말 고마워요, 미안하기도 해요.” 손도 서너 번 흔들었다.


좋은 시간이라...퀸즈보로 다리로 연결되는 곳에 내렸다. 새하얀 뇌로 주변을 둘러보다 오른쪽으로 꺾으니 어쩌면! 싸늘한 바람 속에 장미 한 그루가 세 송이 노란 꽃을 완벽하게 피우고 나를 위로한다. 맨하탄에 경찰이 왜 많은지 알게 되었다 하자. 이런저런 방식에 따라 만들어진 근거를 바탕으로 개인에게 내장된 공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무섭도록 잘 알게 되었다.


4

뉴욕,하면 나는 또 게이,가 떠오른다. 어퍼이스트를 걷던 어느 날 남자 두 사람이 어떤 집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살짝 서로 바라보더니 곧장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간다. 다정하네! 어떤 따스함과 믿음.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아! 그냥 저렇게 짝꿍으로 사는 거구나. 그 자체로 쑥 받아들여져 버렸다. 아무런 설명이 필요 없었다. 정치적 올바름의 자세로 불편감을 부정하고 생각을 수정하던 나였는데. 놀라워라. 수천년 진리에 엄청난 틈을 만든 인류적 사건 하나가 송두리째 이해가 되어버렸다. 아하!의 순간을 그렇게 경험했다. 가슴이 뭉클 따뜻하고 편안해지던 그 느낌은 지금도 퍽 강하게 기억된다. 그뒤 워싱턴 광장에서 어깨동무하듯 껴안은 여성 짝꿍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내 생각은 자라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도 아름다운 만화 <뉴욕뉴욕>을 생각했더랬다. 나와 의논도 없이 출판사측이『만화 학교에 오다』에서 빼버린 작품. 출간 후 나중에야 발견하고 너무 아까웠으며 참 속상했던.


꽃 사는 남자들이 많아서 놀랐고 브로드웨이 공연에 놀랐던 뉴욕. 아래가 댕강 잘린 채 팔리기를 기다리는 크리스마스트리용 나무들에 경악하는 한편 개똥이 많아서도 놀랐던 뉴욕. 문득 어느 성당에 들어갔다가 사람들만큼 많은 개들을 보고 기절초풍하기도 했으니 그 날은 동물을 축복하는 성인의 기념일이었던 걸까? 그러나 쓰레기를 빼고 맨해튼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중앙지역 일부를 제외하고는 드럼통만한 쓰레기통들이 언제나 넘치고 있었으니. 곳곳 벤치와 지형지물에도 쓰레기, 길바닥으로 줄줄 흐르는 커피물... 엄청난 관광지니 어쩌랴만 카페의 일회용기 사용량을 보면서 만정이 떨어졌었다. 분리수거도 재활용 개념도 없는 무지막지한 곳, 분리수거 잘하는 일본이나 우리나라가 멍청한가 싶고 분하기까지 했으니, 허헛. 세종시의 쓰레기통은 우체통처럼 생겨 보기엔 깔끔한데 투입구를 열고 넣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음식물은 어느 정도 재활용되는 걸까. 땅위만이 아니라 땅속까지, 이른바 토목이나 설계,라는 말이 아주 대단하게 여겨지는 때를 보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동시에 보이지 않아서, 없기 때문에 보이는 것들을 생각한다.


또 하나 공산품에 가까운 소비재 화분! 그때 맨해튼에서 엄청 놀랐던 것 가운데 하나다. 다니다 보면 어느새 바뀌어져 있는 무수한 화단의 갖가지 꽃들. 심고 가꾸는 손을 본 적이 없는데 이상하다, 어느새 자라 꽃이 핀 거야? 눈여겨보던 어느 날 으스름 무렵 허드슨 강가 화단에서 움직이는 사람을 보았다. 꽃을 심고 있었다. 작은 화분에서 빼낸 생산품들을 옮겨 배열한다는 표현이 알맞다. 주로 인적이 뜸할 때 이뤄지는 ‘작업’이어서 볼 수 없었던 거였다. 꽃나무들 사이에서 나와 눈이 마주친 그들에게 나는 어색하게 인사하며 웃었는데, 우는 것 같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세종은, 모든 화단이 작은 국화로 대체되었다. 얼마전까지 그리 예쁘던 덩굴 페츄니아는 어떻게 되었을까. 한국의 지구의 수많은 도시에서 뿌리뽑힌 그 무수한 생명들은 어떻게 되는가.


5

같은 계절에 닮은꼴의 삶은 기억을 부르며 맨하탄으로 날아간다. 뉴욕의 가을을 불러낸다. 실망과 아쉬움 묻은 놀라움들은 이제 그러려니 하고 감정까지 대체되었다. 이제는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도 비슷하게, 나쁘거나 좋거나 평준화 획일화된 부분이 너무 많지만 기억은 단어하나로 시작되어 또 다른 기억들을 부른다. 삶은 그저 그런 것이며 그것조차 재미임을 알아 가는 중. 서운함을 안은 채로 인간의 다른 면들을 발견하며 남의 삶을 지켜보는 일이 즐겁다. 빠르게 변화하는 삶의 양상을 관찰하며 재미를 찾아본다. 그렇게 모든 것들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가능성과 변화에 놀라고 끝없이 뭔가를 생각하고 만들어 내는 인간의 힘에 놀라면서 죽이고 더럽히는 짓거리에도 놀란다. 그건 다시 바뀌리라는 기대와 믿음, 무한신뢰를 동반하고 있다. 갈수록 가볍고 살만해진다. 나와 달라지는 나를 살아야 하는 부분이 많아질 터이지만 두렵지 않다. 남의 덕에 산다는 것을 알면서 내가 살고 스스로 산다.

진붉은 갈색의 대왕참나무 잎새들이 떨고 있는 가을.

제 몸을 빠져나오는 색과 빛을 느끼는 자리.

변하는 것들에 홀리는 시간.

사치스러운 한 때.


사진101111_038E49stYellowRose.jpg ◀ 10년 11월 퀸즈보로 다리 아래의 노란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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