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무게를 획득하는
♬ 참 좋은 가을날, 세종에 몇 달 살러 왔다가 자전거 타기에 빠지는 바람에 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자전거놀이는 스무살 때의 자전거 사건을 소환했고 다시 그것에 응답하며 시나브로 불려나온 것들은 이른바 외상이라 할만한 사건들이었다. 나에게 필요하여 내 생이 명령한 것들, 죽임으로써 살림. 인간으로 생존하기,를 가능하게 했던 동력이며 나를 만든 삶의 힘들이었으나 이젠 더 이상 필요없는. 이 글은 그 모든 것들을 용감하게! 불러들여 직면하는 동시에 그 낡은 힘들로부터 빠져 나오는 이야기다. 어쩔 수 없이 빠져야 했으며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시공간들에 감사하며 작별하고 떠나보내기. 그 힘들로부터 빠져나와 새로운 무게를 획득하는 이야기, 다른 부피로 자유하는 이야기. 나 자신과 화해하며 나와 내 삶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과 그 삶들을 더 수용하게 되는 이야기다. 생겨먹은대로 계속 굴러가기를 멈추고 내 발로 내 맘대로 걷는 즐거움을 획득한 자, 맘껏 누리는 자가 쓴 기쁨의 기록이다. 아무리 가볍게 전해도 독자 고유의 무게로 전달받을 수 밖에 없는 신비한 편지-선물. 한 사람의 독특한 이야기를 뛰어넘어 모든 사람에게 공유 가능한 자기분석보고서. 애도작업일기.
누가 이 선물을 받을까, 어떻게 이 편지를 읽을까.
1.읽으며 화를 내는 독자,가 많았으면 좋겠다. 화가 나면 푹 빠진 거다. 뭐 이런 걸 가지고 호들갑이냐는 말, 이미 자신의 뭔가에 깊이 빠져 살고 있다는 뜻이다. 화를 내고 읽다가 때려치운다면 자신이 얼마나 힘든 상태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런 생각과 의지를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삶에 압도당한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자기인식이 긴급하다. 평가절하하면서, 끊어가면서라도 계속 읽는다면, 중력을 거스르며 힘차게 사는 중. 당신 얘기 별 거 아냐, 나랑 잽도 안 돼. 굴하지 않는 젊은 생의 동력이거나 수동적 체념, 무기력일 뿐이거나.
2.심드렁하다: 어째 과장된 것 같고 별 감흥이 없으며 읽기 어렵기만 하다; ‘별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어렵다,는 말은 모른다거나 알고 싶지 않다,의 다른 표현인 경우가 매우 많은데 이는 겸양을 포함하므로 의미의 추적을 피하기 용이하다. 자신이 무척 힘든 상태임을 모른다는 말이며 그런 상태임을 알기가 참 어렵다는 뜻이다. 눈앞 자신의 것 이외에는 생각할 힘이 없는 사람, 자신에게 필요한 말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대표 언어 중 하나가 어렵다,다. 간단한 가구조립 같은 설명서도 아리송한 구절에 한 번 걸려야 잠시 쉬면서 꼼꼼히 할 수 있는 법이니 어려움에 걸릴 때마다 종종 기꺼이 자빠지기를.
3.편하게 천천히 잘 읽는다: 교양과 상식에 입각하여 삶의 다양함을 '안다'고 믿는 심신 건강한 사람; 머리에서 시작되는 가벼운 공감과 존중의 마음으로 좋아요,도 ‘눌러주는’ 편이다. 그러나 사전적 정의를 넘어서는 단어의 의미 확장이나 자신을 향한 반사가 어려우니 변화를 추동할 힘이 없다. 큰 우여곡절 없는 자기 삶에 감사하며 그저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욕망과 충동이 크거나 소란하지 않으니 소소하게 인정받고 나누는 재미로 노력하면서 세상의 토대가 되어준다.
4.여기까지 읽고 슬그머니 미소 짓거나 웃음이 난다면 특급인생일 터. 편히 읽기에 더하여 내 이야기를 끄덕끄덕, 생각도 좀 하고 질문도 한다. 자기상처와 과거를 자양분으로 쓰며 남의 삶에 그윽히 공감하고 인간을 이해하며 살고 있을 거다. 젊은이라면 그런 의지를 일으키며 그리 살고자 성장하는 중. 남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면서 다른 삶을 향한 관심을 확장시킨다. 자신의 욕망을 알고 두려움 없이 나아간다. 변화를 만들고 관여하며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5.여기까지, 그럴듯한 막무가내 진단,에 또 화를 내는 사람은 정말 자기 삶과 맞장 뜰만하다.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있다. 너무 공감되고 이해가 된다는 사람의 경우, 자신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인지하고 나아가 그것을 자신이 동력으로 활용하고 있음조차 알아챘다면 자기보상을 위해 나아가는 힘이 있다. 날뛰는 야생마를 적토마로 길들일 용기를 만들어 가질 수 있을 터, 뭘 더 바랄까.
6.상처 없는 사람이 있냐, 뭐 특별하다고 그러냐, 징징거릴 필요가 있느냐, 사는 게 다 그렇지,로 끝나는 사람은 이른바 ‘감정불능’이거나 ‘기호해독능력 없음’일 수 있다. 상징계가 명령하고 추천하는 것들을 좇아 제 삶을 인정받으며 만족한다,고 생각하며 산다,고 생각하지만 이면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대개 자아의 거짓말인 경우가 많은데 빨리 알아챌수록 묵직한 병명을 달게 되는 일 없이 살아볼 기회를 가진다. 마음이 말하지 않으면 몸이 말하기 때문이다.
7.‘빠지다’의 중층적 의미를 생각하다가 고통, 트라우마, 자기인식 등에서, 일시에 셔터를 내려버리는 사람: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자신의 그림자 밟기 놀이를 하면 좋을 듯. 글쓰기와 읽기의 공간을 기웃거린다는 것은 이미 자신의 말을 찾고 있음을 뜻하므로 묶인 힘을 맘껏 풀어쓰며 살아볼 기회가 많다, 그리고 인생은 길다. 짧아도 충분히 길다.
맞다, 너무 길게 썼다. 잠시 아는 체하며 단순화시키는 놀이의 재미에 빠졌다. 인간은 타로카드가 아니다. 이것들은 대부분 시차적으로 또는 동시에 겹치고 뒤집히며 꼬이면서 다시 겹친다. 소통도구로써의 단순화는 필요하지만 무시해도 될 미약한 참고사항에 지나지 않는경우가 많다. 그러나 참고사항 없이 나를 발견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단순화를 통해서만 미묘한 차이에 이를 수 있으며 남이라는 거울을 통하지 않고는 나를 알지 못한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말들 앞에 딱 멈춰 서서, 불편감을 유발하는 말들, 목에 걸린 말들을 더듬어 꺼낼 때만 유의미한 참조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복잡하다. 못나고 위대하며 비리비리하되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존재다. 항상 이면이나 양면, 중층이자 다층, 공백이나 틈과 함께 생각하는 것이 정신분석적 사유다.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해 생각하고 표현할 때는, 말하기도 쉽지 않으려니와 쓰기는 더 어려운 말들이 참 많다. '껍데기는 가고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았을 때 할 수 있을 말들이 많다. 무엇보다 자신과 둘이서만. 우리는 말해야 한다. 말해지지 않은 것은 돌아온다. 어떤 모습으로 반복될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은 영원히 회귀한다. 그러므로 말해야 한다, 몸이 말하기 전에. 자신에 대해 아프게 말해야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곧 자신의 삶에 대해 애도하기를 멈추지 않음이다. 그것은 곧 빠져나오기이며 통과하는 것이다. 통과하지 않고 빠져나오는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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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집을 선뜻 내줘서 정말 고마워요 은희님.
그 마음을 입어 즐겁게 놀고 있답니다. 아프고 기쁘게 쓰고 있어요. ^_____^
2022년 10월 30일 Wan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