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디는 나를 보았다, 실망감 가득한 눈으로.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쩌긴~ 개선문 가야지~~~"
좌절과 실망감은 사치다. 빗줄기에 씻겨져 땅으로 스며든 과거는 붙잡아봐야 끝없는 좌절감과 후회 속에 갇힐 뿐. 우리에게는 무한한 지금 이 순간과 유한한 미래만이 있을 뿐이니! 유한한 미래, 무한의 지금을 위해 조금이라도 낭비할 수 없다!!
그리고 근처 지하철을 타고 개선문으로 가기로 한 우리. 신디는 열심히 구글 맵으로 검색하기 시작했고. 나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녀를 따라 파리 지하철에 입성하게 되었다. 입성하자마자 내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든 광경..
생각보다.. 너무 구식 같아 보여서 놀랐달까?? 우리나라 지하철이 화사한 거였구나?? 를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내 주관적인 생각일 수 있으니..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나로선 꽤나 낯설게 느낄 수밖에. 보통 우리나라 지하철이라 하면, 하얀 조명 아래에 깨끗해 보이는 외관에 그렇지 못한 쓰레기 더미들과 북적북적한 사람들이 있다는 게 특징이라면, 여긴 진짜 공백이랄까? 마치 빌런들의 은거지를 마주한 듯했고. 어디선가 미키 마우스가 까꿍~하고 마주할 듯한 자연스러움 마저 들었다. 게다가 티켓도 종이여서 20세기로 넘어간 듯하기도 했다.
아, 지하철 내부는 또 와... 대박... 내 생애 처음이었을 것이다. 어두운 조명 아래에 끝없는 지하 세계를 돌아다니는 듯한 느낌. 꾀죄죄함 그 자체라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지하철이 정말 우수하구나.. 소중히 여기고 자랑스러워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달까..
우리나라 지하철 최고~~~ 언제나 감사합니다~~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갔을까? 찰나였지만, 체감상 한참이었던 시간이 지나고. 개선문이 있는 지하철역에 하차한 우리는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개선문을 맞이할 수 있었다.
도로 한복판에 우뚝 서있는 개선문.. 순간, 내 귓가에서는 "민중의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À la volonté du peuple
인민의 의지와 Et à la santé du progrès,
진보의 기치를 위하여
Remplis ton cœur d'un vin rebelle
우리의 심장에 혁명의 잔을 채우세 Et à demain, ami fidèle.
충실한 동지여, 내일이 되면
Nous voulons faire la lumière
우리는 빛을 갖고 오고 싶다네 Malgré le masque de la nuit
비록 밤처럼 어두울지라도
Pour illuminer notre terre
세상을 밝히고 Et changer la vie.
우리의 삶을 바꾸기 위해
(민중의 노래 관련해 검색하다가 이 노래를 프랑스에서 역수입한 곡으로 À la Volonté Du Peuple 곡인데, 아무래도 프랑스 파리를 다룬 글이다 보니 프랑스어의 노래를 기술하는 편이 좋을듯하여 선정해 보았다~)
개선문에 도착한 우리는 "대체 사진을 어디서 찍지?"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렸었는데, 두리번거릴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이미 사람들이 알아서 사진을 찍고 있었고. 우린 그곳만 가면 되었으니까~ 참, 이런 거 보면 사진 잘 나오는 장소를 귀신같이 잘 알아내는 사람들.. 동서 막론하고 생각들은 다 똑같은 모양이다 싶었다. 다만, 한 가지 조금 그러했던 점은 사진 찍는 장소가...
너무 위험했달까?
도로 한복판이었고.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을 만큼, 아주 아슬아슬했던 현장이었다. 그런 현장을 낭만으로 포장할 수는 없을 거 같지만, 찍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이기에.. ㅠㅠ 다만,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건 사고를 감수해야 할 만큼 아슬아슬한 줄타기와도 같기에..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이곳을 지나가기를~
마치 우리처럼 말이다 ㅋㅋ 우린, 진짜 스쳐 지나갔다. 왜냐하면, 우린 소중하니까~ 그리고 나는 신디 맛있는 거 매주 사주어야 하고, 주얼리 명.. 까지는 아니어도!!! 아무튼 다 사주어야 하니까!!(그런데 가끔은 좀 김밥천국도 가주고 하는 건 어떠한지 조심스레.. ㅎㅎ)
사진 찍는 사람들을 뒤로 한채, 조용히 지나간 우리는 개선문 안에 들어가기 위해 개선문으로 향하려 했으나.. 여기서 두 번째 시련이 발생하고 말았다..
개선문에 어떻게 들어가니??
개선문 위치가 진짜 말 그대로 도로 한복판에 있고. 개선문을 중심으로 도로가 원을 그리며 형성되어 있는데. 저곳으로 어떻게 들어갈 수 있나? 길을 찾을 수 없었던 신디와 나는 진짜 개선문 주변 동서남북을 돌아야 했다.
노아, 길이 없는 거 같아~~ 구글 맵과 발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거 아니었어?
응, 챗지피티도 이런 건 모를 거야 신디~~
저곳으로 사람들은 어떻게 들어간 거니? 공중부양이라도 한 거니???
진짜 울기 직전처럼 찾아 헤매면서 가뜩이나 마이너스를 향해 하한가 치고 있던 나와 신디의 체력은 심해 속으로 치솟기 시작하고.. 그러던 중, 다시 지하철로 내려가서 이 출구겠거니 싶은 출구로 나오자 비로소 개선문이 있는 곳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아...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ㅠㅠ 서로 얼싸안은 신디와 나. 그 순간은 우리에게 민중의 노래. 혁명의 순간이었다.
Do you hear Cindy sing
신디의 노래가 들리나? singing a song of angry couple?
분노한 커플의 노래가?
It is the music of a couple
다시는 바보가 되지 않으려는 who will not be idiot again!
커플의 음악이네
When the beating of your heart
심장 박동 소리가 echoes the beating of the drums
북소리와 공명할 때
There is a life about to start
개선문이 오면 시작될 when L'arc de triomphe de l'Étoile comes!
새로운 삶이 있네!
개선문에 다다른 순간, 웅장한 그 위용이 우릴 덮쳤고. 그 모습에 신디와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개선문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 끝없는 뫼비우스와도 같은 계단을 올라야 한다는 사실에 또다시 말을 잇지 못했고..
신디는 나를 보았다.
나 보지 마.. 신디.. 그러지 마.. 나도 지금 절규하고 있어..
신디는 엘리베이터를 보았다.
신디, 안돼.. 그 엘리베이터를 타기에 자긴 너무 어려..
정말이지 그 어떠한 말도 안 나올 정도로 너무나 황당하고도 기가 막혔던 상황이었달까.. 근데 어쩌겠어..
올라야지~
진짜 한국에서 그렇게~~~ 등산하자~~~ 계단 오르자~~~ 노래 불러도 끄떡없던 태양을 저물게 만든 개선문...
그 태양이 만들어내는 아지랑이에 지난 추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나기 시작하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그 모두 사건의 지평선으로~
그리고 이때 신디가 나에게 했던 말들도 전부 사건의 지평선으로~~~~ (어유 정말~~~ 나를 여러 번 놀라게 하는 사람~~~ 나는 그런 엉뚱함과 기상천외함을 사랑한다~~)
내 의식 모두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피로와 시간 전부 무한한 이 계단의 끝으로 전송되는 듯했다.
하아...
제발...
신이시여..
내 마지막 남은 의식마저 저 흐릿한 저편으로 전송되려는 순간, 다다른 정상!!!
신디!!! 도착했어~~~~ 나 눈물 날 거 같아...
실내를 구경하고 나서, 밖을 나온 우리. 그리고 그런 우리들 앞에 거대한 파노라마가 펼쳐져 있었다.
그 어떠한 수식어구도 의미 없었다.
흐릿한 하늘이어도 상관없어...
말 그대로 압. 도였다.
한눈에 보이는 파리 전경을 나는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등산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땀만 나고, 몸만 힘든 여정을 왜 좋아할까? 아버지를 따라 등산했던 내 어린 시절 기억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땀을 흘리고, 육신이 비 오듯 무너지는 고통의 여정의 끝에 다다른 정상이란.. 한눈에 펼쳐진 전경을 내려다보는 느낌이란.. 그 여정을 다다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순간순간은 모를 수 있다. 내가 맞게 가고 있는지. 그저 이탈하고만 싶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만 싶고. 외면하고 싶은 마음만 드는 순간의 연속. 그러나, 그 순간의 끝에는 정상이 우릴 기다리고 있음을. 그 정상에 이르러서야 전부인 줄 알았던 세계가 실은 거대한 세계의 일부분에 불과했음을.
나를 이루는 세상의 큰 틀을 비로소 마주하면서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나를 깨닫고 회한에 젖으며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면서 성장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더 높은 곳을 향해 오르면서 그렇게 내가 보는 세계관을 넓히고 넓히는 과정. 이게 바로 인생이 아닐까.
그때는 내가 다니는 학교, 만나는 사람들만이 전부인 줄 알았다. 내가 겪는 시련과 그 시련에 상처받아 눈물 흘렸던 나날이 전부 인 줄만 알았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 모두 별거 아니었음을. 곧 다가올 행복과 영광을 누리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전체 세계의 극히 일부분이었음을 깨닫고 또 깨달았던 거 같다.
그렇게 성장하고 또 성장을 하려 하는 이런 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런 내 곁에서 열심히 자신만의 방식대로 자신을 사랑하고 성장을 거듭해 가는 신디를 사랑한다.
개선문의 정상에서 파리 모습을 보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다음에 올 때는 날씨가 좋기를 바라며~ 기쁜 마음으로 하강하였다.
내 초상권은 소중하니까 어김없이 내 얼굴은 모자이크~
지금 내가 느꼈던 감상,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 찰칵~~
오늘을 나는 잊지 못할 것 같다. 웅장함과 그 위용에 압도되었던 순간과 그때의 내 감정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원래 날씨가 흐리면 기분이 안 좋았던 나였지만, 뭔가 승리감이 샘솟으면서 원인 모를 자신감에 엔도르핀이 돌기 시작했다. 비좁았던 내 세계관과 한없이 넓었던 진짜 세계. 세계의 본모습을 비로소 마주했을 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그 고민마저도 행복하고 보람 있는 여정임을 배우고 느끼며!!! 아주 행복 가득한 마음으로 다음 일정을 궁금해했던 나. 그런 나에게 신디가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