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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 Nov 13. 2024

아키하바라의 불시착

"그래? 그럴까?"


갑작스럽지만, 나름 용기 내서 말한 진을 보며 신디는 찰나의 고민 없이 바로 수락했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 경험해 볼 만한 곳이니까. 이상한 곳도 아니고, 진으로서도 한번 궁금해서 가보고 싶다는 건데 말릴 이유가 없었으니. 솔직히 나로서도 궁금하긴 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독자들로선 내가 충분히? 메이드 카페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 텐데(아... 아닌가요?? ㅋㅋ), 그럼에도 메이드 카페란 곳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알음알음 알고는 있었다. 메이드에 대해 정확한 의미나 기원 같은 건 모르지만, 어떤 느낌인지는 대충은 애니메이션들을 통해 충분히 이해는 할 수 있으니까. 미디어에서는 보통 메이드라는 존재에 대해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 바라보고 희화하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는데, 엄연히 따지면 메이드라는 건 우리나라가 아니라 일본에서 건너온 문화로 이상하다는 시선으로 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 개인적으로는 여러 애니메이션들을 봐오면서 과연! 실제로도 메이드들이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것처럼 행동하는지 그게 궁금했다. 


외국 사람들이 K 드라마에 열광한 나머지, 한국으로 여행 와서 라면을 먹던가 치킨을 먹으면서 한국 드라마에서 나왔던 문화들을 체험해 보는 것처럼, 나도 진도 신디도 그러했다. 물론, 메이드 문화가 익숙지 않은 우리로서는 적응이 안 되고 오글거림의 연속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마치, "드래곤볼" 속 프리저가 "사랑이 넘치는 하렘물" 세계관으로 불시착하는 느낌이랄까? 매 순간이 오글거림이요, 찰나의 부끄러움과 그 이후 올라오는 현타랄까? 


그러나, 이 카페를 한 번쯤은 경험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신디와 진에게 말했다.


"그럼 가자~"


그래서 문 앞에 들어선 우리. 그때, 교복을 입은 여자 한 명이 우릴 보고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서 오세요 주인님~

                    

네? 뭐라구요? 순간 귀를 의심했던 나, 순간 "아이셔"로 뭉쳐진 주먹이 내 뇌를 강타하는 듯했고. 짧은 시간에, 그 주먹에서 새어 나오는 과즙이 내 뇌를 적신 듯했다. 그 과즙에 나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그 주먹은 화살이 되어 매 순간 내 세계관을 붕괴시켰으니..


사정상 메이드 복장이 준비가 안되어서 교복으로 준비했는데 괜찮으신가요?


네? 교복이요? 


그게 더 이상... 


아, 그래. 뇌를 비우자. 속에서 여러 생각들이 뒤엉켜서 말을 잃었지만, 이건 이들의 문화이자 일상일 수 있으니. 이러한 이들의 문화를 비하해선 안되고, 존중해야 하니.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열린 마음으로. 스포이트로부터 떨어지는 물에 도화지가 적셔지듯이, 이 순간만큼은 흡수하기로~ 다만, 그와 별개로 개인적으로는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매 순간이 도전이었다. 


그냥, 좋다는 말을 그녀에게 하자, 그녀가 웃으면서 우리를 안으로 안내하는데 이때 옆에 있던 종을 울리면서 외쳤다.


주인님, 공주님이 돌아오셨어요~


아아아아악~~~~ 그만하세요~~~~ 


아 이 뭐지? 갑자기 금잔디가 된 기분~ 오늘부터 금잔디는 이 구준표의 여자임을 공표합니다~~~ 이런 거야?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음이.. 마음이 치즈에 버무려진 거 같아..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있던, 교복을 입고 있던 여성 모두 외쳤으니.


잘 돌아오셨어요~ 주인님~ 공주님~


어유.. 찰나의 시간에 인생에 다시는 없을 환영을 받은 우리.. 사이좋게 금잔디가 되어, 자리를 안내받았고. 자리에 앉은 우리 앞에 안경을 쓰고 미소 지은 채 서있는 여성이 메뉴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었던 게!!! 


영어가 안된다는 거..


이분들이 전혀 영어를 모르신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앞전까지는 눈치껏 대충~ 사마~ 하고 잘 돌아왔다 정도는 일본어를 아니까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그 이후 메뉴를 고른다거나 할 때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멘털이 붕괴되었던 거 같다. 간단한 영어조차도 소통이 안되니, 신디도 진도 답답해했고. 직원 분도 어려움을 느끼는 듯했다. 이에, 나는 우리의 친구~ 구글 번역기를 꺼내어 가까스로 소통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어찌어찌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우선 무슨 말을 하면서 카드 같은 걸 주는데, 각자 영어 이름을 만들면 그 이름을 카드에 적는 거였다. 그래서, 신디는 신디! 진은 진! 나는 노아로 해서 적어서 카드를 만들었고. 메뉴는 죄다 일본어여서 그냥 사진 보고 빨간색과 파란색의 음료를 주문했다. 또, 설명을 대충 들어보니 메이드 한 명과 기념 촬영을 할 수 있다고 해서 호기심에 나와 진이 신청하였고. 신디는 하지 않았다.


"괜찮아~ 나는 굳이?? 안 할래~~~"


이 시점에서 사족을 덧붙이자면, 가격대가 만만치 않았다. 아.. 이 오글거림의 원천이 바로 이 가격에 있나? 싶을 정도로 가격대가 셌다. 이게 이 가격이라고??라고 눈을 의심할 만큼 비쌌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 그들의 미소와 친절에도 값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나서부터 뭔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달까? 처음 느꼈던 오글거림이나 부끄러움이 조금 상쇄되면서, 그들의 행위 자체를 마냥 환상의 시선으로 바라보진 않았던 거 같았다. 진심에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친절과 마음 자체에도 값이 부여되는 계산된 친절.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 차이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값이 부여된 친절, 그 이후에 느껴지는 씁쓸함과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어서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유독 일본 여행에서 이러한 감정들을 많이 느꼈던 거 같았다. 기분 좋은 설렘으로 시작되는 맛. 그리고 그 뒷맛에서 고독함이 밀려오면서 많은 감정들을 마주하게 했던 나날이었다. 이 메이드 카페에서도 동일한 감정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봄과 동시에 마음 한편에서는 허무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렇게 주문을 완료하고 조금 기다렸을까? 직원 분이 셰이커와 컵들을 가지고 오시더니, 이건 함께 주문을 외워서 주스를 만들어가자고 하시는 게 아닌가?


직원 분이 말씀하셨다.


"제가 셰이커를 흔들어서 주스를 만드는데, 제가 후리후리라고 말하면, 주인님이 후리후리라고 말해주시고, 제가 이어 샤카샤카라고 말하면, 샤카샤카라고 말씀해 주세요~ 그렇게 말을 걸어주면서 같이 주스를 만들어가요~"


네? 후리후리요? 샤카샤카요?? 순간, 신디의 눈빛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노아!! 나 못 참겠어.. 너무 오글거려~ 시공간이 오그라드는 거 같아~'


이에 나는 눈빛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오그라드는 시공간을 즐기는 고야~ 신디~ 나를 봐~ 즐기고 있지 않니?'


곧이어 직원의 선창과 함께 우리의 주문은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율동을 춰가면서 메이드 카페에 동화되어가고 있었다. 


후리후리~

(후리후리~)

샤카샤카~

(샤카샤카~)

모에모에~

(모에모에~)

뀽뀽~

(뀽뀽~)

도키도키~

(도키도키~)

와쿠와쿠~

(와쿠와쿠~)

오이시쿠 나레~~~~


아주 상큼하고도 과즙미 넘쳤던 율동과 함께 시작되었던 우리의 주문. 그 주문으로 완성된 주스~ 내 눈앞에 보이는 새빨간 주스, 바로 들이킨 순간~


와우~ 


신디는 무언의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왜~~!! 날 그런 눈으로 보지맛~~ 자기가 오자고 한 거야~~ 좋은 경험이었잖아~ 그렇지, 진??? ㅋㅋㅋㅋ


이후 우린 메이드를 선택해서 사진을 찍었고. 현장에서 바로 사진으로 인화해서 가질 수 있었다. 이를 본 신디는 나에게 말했다.


나중에 결혼해서 우리 딸한테 이거 보여주면 재밌겠다~~ 그치?? ㅋㅋㅋ


무슨!!! 그런 가슴 철렁할 소리를!!!! 해맑게 미소를 지어 보인 메이드와 그 옆에서 활짝 웃은 채 하트를 보이고 있는 나의 모습.. 이 모습을 본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그래도, 나름 잘 즐겼었구나...??


진도 무뚝뚝한 반응이었으나, 꽤나 인상적이었던지 사진을 소중히 간직했었다. 


처음 마주한 메이드 카페. 내가 이 카페에서 직원들의 행동을 보면서 오글거림을 느꼈던 건 내가 이미 동심을 잃은 어른이 되어버린 탓인 걸까? 아니면, 나도 편협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 걸까? 끊임없이 되묻고 되물었었다. 주위를 돌아보았었다. 그때 내 눈에 보인 건,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40대로 보이는, 양복 입은 남자도 있었고. 연인들도 보였다. 동성 친구들끼리 있는 모습들도 볼 수 있었다. 또한, 옆에 자리를 정리하는 메이드와 얘기를 잠깐 나눴는데, 이분이 인상적인 얘기를 했었다.


"저, 다음 달에 한국으로 여행 가요~ 너무 설레는 거 있죠?"


설렌 얼굴로 우리에게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느껴졌다. 그냥, 20대 소녀의 모습이었다. K Pop을 사랑하는 소녀. 이때 깨달았던 거 같았다.


메이드 카페도 결국 사람이다..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지친 하루를 마치고 쉬다 가는 그런 곳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나름의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음을..


처음이라 낯설게 느껴질 뿐, 서로의 문화가 달라서 행태가 달리 보일 뿐이지 그 안에 숨은 본질은 똑같았다. 


일상...


각자에게 주어진 일상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우린 그런 일상을 겪었을 뿐이었다. 아키하바라의 메이드 카페를 간 게 아니라, 그저 일상을 보냈을 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메이드 카페를 특별하게 생각하겠지만, 전혀 특별할 게 없었다. 처음에는 오글거리고 부끄럽기만 했었는데, 어느새 그들보다도 더 동심 어린 시선으로 즐기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는 이런 경험들이 하나의 씬이 되어 추억의 한 파편으로 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겠지. 


사진을 찍고 나서, 메이드 카페를 나온 우리는 아키하바라 밤거리를 함께 거닐면서 아직 적셔진 채 남아있던 여운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도쿄 여행 두 번째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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