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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 Nov 07. 2024

이상한 나라의 노아

그때 그녀는 부드럽고 가루 같으며 무척 차가운 것을 느꼈어요. '이거 정말 이상하네, ' 루시는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중얼거렸어요. '눈 속에 서 있는 것 같아.'... 잠시 후 그녀는 자신이 실제로 밤중의 숲 한가운데 서 있으며 발밑에 눈이 깔려 있고 눈송이가 공중에서 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나니아 연대기 중에서



아키하바라에 가기 위해 가마쿠라역에서 우린 노선을 어떻게 정해서 가야 할지 구글 지도로 살펴보았고. 아래 노선으로 가기로 정했다. 비교적 환승이 복잡하지 않아서 나로서는 요코스카선으로 신바시역으로. 신바시역에서 환승해서 야마노테선으로 갈아타서 아키하바라까지 가는 노선이 최적이라고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플랫폼에 어찌어찌 도착해서 열차를 타려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일본 여행 2일 차? 쯤 되면,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지하철이든 열차든 간다고 할 때, 플랫폼 정도까지는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다. 당연히 구글 지도가 있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구글 지도가 아니어도, 눈치껏 노선 색깔과 열차 색이 같은 경향이 있다는 걸 알아차려서 노선에 맞는 열차를 타는 일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코스카선 탈 때는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우선, 열차 색이 없다 보니, 어떤 노선의 열차인지. 요코스카선 열차가 맞는지에 대해 바로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이는 일본어를 모르는 외국인 입장이다 보니, 그럴 수 있으리라. 그래서, 일본인들이나 직원 분들한테 물어봐가면서 탑승을 해야 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앞전에서 말했던 이상한 일과 연관 있는 내용인데..


바로, 여행 첫째 날에서 탑승했던 스카이라이너나 KTX처럼 전용 좌석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아마, 그린샤?인 거 같았는데, 당시 우린 그런 개념을 전혀 알지 못했고. 흔히 우리들이 아는 일반 지하철처럼, 좌석을 벽 쪽에 배치해서 양 벽 쪽에 배치된 좌석이 서로를 마주 보도록 하는 롱시트가 아니라 고속버스처럼 앞뒤로 승객이 착석할 수 있도록 하는 크로스시트로 되어있는 구간이 있었던 듯 보이는데, 우리가 열차에 그 구간에 탑승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로서는 낯섦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마치 꼬리칸에 있던 사람이 황금칸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KTX나 스카이라이너 타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괜히 이상한 곳으로 가는 거 아니야? 란 불안감도 엄습했었고.. 우리가 앉은 칸에 단 한 사람도 앉아있던 사람들이 없었다는 상황은 더욱 우리의 불안함을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제발, 한 사람이라도 등장해서 앉아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제발.. 앉아주세요~ 정말이지,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딱 그런 심리 상태였다. 조마조마한 마음 한가득이었다.  그래서,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신디에게 속삭였다.


"신디.. 우리, 맞게 가는 거 맞... 지?? 아무도 없어.."


"그러게??? 여기 맞는 거야???"


그런데, 전광판에 뜨는 거 보면 맞게 가고 있는 건 맞으니까.. 그냥 있을까? 어차피, 이왕 이렇게 된 거 편히 앉아서 가자~란 마음으로 애써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무서움을 달래고 있었다. 그리고 문제가 있으면 직원이 나타나서 어떻게든 조치를 취해주겠지.. 란 생각이 있었어서, 약간은 태연하게 이 이상한 상황을 대처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직원 분이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나셔서 여긴 vip 좌석이라는 설명을 하셨다. 동시에 이 좌석에 앉고 싶으면 돈을 내야 한다는 뉘앙스를 얘기하시자,


우린 바로 웃으며 죄송하다고 하고 그 칸을 빠져나오기 위해 문을 열었고. 그러자, 우리가 아는 지하철 좌석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세상에...


그래서 당시 우리로서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었다.


이야.. 일본은 지하철이든 열차든 vip 석이 있는 거야???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린샤였구나.. 를 알게 되면서 사전 지식 없이 여행에 임하면 어떠한 일들이 생길 수 있는지를 뼈저리게 배울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조금 전에 우리가 앉았던 좌석을 떠올리며 이런 생각도 들었다.


돈으로 안 되는 건 없구나..


지정석에 앉아 천천히 창 밖 풍경을 보면서 개인 시간을 가지며 여유 부리다가, 일반 좌석에서 앉아있으니 복잡 미묘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옛날에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구준표가 금잔디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건 아무것도 없어!라고 말했던 말이 떠올랐는데, 당시에 그런 금잔디에게 윤지후가 공기라고 말했었지만. 과연, 그 공기마저도 살 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사소한 일일 수 있으나, 많은 생각들을 찰나에 했던 것 같았다. 아무튼, 이렇게 사소하지만 엄청난?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열차를 타고 아키하바라로 향한 우리~~


그리고 아키하바라 역에 도착하여 내린 순간, 낯설지만 익숙하고도 새로운 세계가 다채롭게 칠해진 도화지 한가득 머금은 채, 우리 앞에 펼쳐져 있었다.


용산 전자상가 느낌이 나긴 했으나, 그것보다는 훨씬 더 규모가 있었고 전체적으로 미래지향적 최첨단과도 같은 느낌이 있었다. 도시가 깔끔한, 현대식 건물들로 대부분 구성되어 있었으며, 애니메이션처럼 깨끗하고도 선명한 듯했고, 애니메이션 속 2D 세계가 3D로 구현된 느낌이 물씬 풍겨지는 도시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 도시 아래에 가지각색의 복장에 여러 나라 사람들이 혼재되어 다채로움을 주면서도, 결국 하나의 목적을 향해 하나의 단일망을 이뤄나가는 모습에서 단일성과 통일성을 자아내는 듯하기도 했다.


일찍이 한국에서 살아왔던 내게 이곳이 주는 인상이란 이런 느낌이었다. 일찍이 겪어 보지 못했고, 마주하지도 않았던, 낯선 세계.. 미디어로밖에 간접적으로 봤던 곳을 실제로 가게 되니 감격스러우면서도 설렌 마음 한가득이었다. 이곳 하나하나 관심을 기울인 채,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진이 해드폰으로 아키하바라 하나하나를 씬으로 남기면서 이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진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가 이런 인상을 받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린, 그 시절에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자라왔다. 포켓몬스터, 디지몬, 울트라맨과 후레시맨.. 등 그 하나하나의 만화 영화들은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아니었다. 그 당시 우리들의 꿈을 키우게 만들었던 원천이자 산실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과 함께 미디어에서는 이들을 편협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나름의 잣대로 해석해 규정짓기 시작했다. 그러한 움직임은 그 당시 주류였던 그들을 비주류로 격하시켰고. 그들과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사이를 갈라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러 찰나의 물결들이 흐르고 나서, 이룩한 단절.


그 단절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우연히 강의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온 그들의 흔적을 발견했을 때, 순식간에 그 시절 우리들의 모습이 아지랑이 피어나듯이 스물스물 올라와 우리가 잊고 있었던 모습을 상기시키곤 했었다.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우리나라와 달리, 주류가 되어 당당히 하나의 컬처로서 그 위용을 내뿜고 있는 일본. 그러한 그들의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싶었다. 가지각색의 사람들과 여러 나라들로부터 온 사람들이 동일한 캐릭터와 세계관을 찾아온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천시할 만한 문화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의 이유인 문화 하나로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것.


또한, 누적된 시대와 뭉쳐진 노하우들이 하나하나의 퇴적층이 되어 지층을 이루고. 그 토지 위에 이룩한 거대 문명. 그 문명 속에 와있는 느낌이었어서, 그 위용에 압도를 당한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모든 것들이 새로웠고, 모든 공간들을 가보고 싶었던 마음이 앞섰던 거 같았다. 우선, 아키하바라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간 곳은 "라디오회관"이었다.



진이 말하기를 굉장히 유명한 곳이라고 했는데, 한 8층 정도 되려나?? 규모가 상당했고, 그만큼 많은 피겨들과 다양한 상품들이 있는 곳이라고 알고 있어서 우선 라디오회관부터 보기로 했다.


라디오회관에 들어선 우리는 많은 피겨들과 프라모델들을 보면서 감탄에 감탄을 하였다.



많은 피겨들과 프라모델들을 보니, 옛날에 어머니한테 장난감 사달라고 했었던 때가 떠올라서, 어머니한테 문득 죄송하다는 생각이 드는 등 여러 생각들이 들었던 순간순간이었다.


설마? 이게 있을까? 싶은 것들이 떡하니 판매되고 있었고. 이런 걸 왜 팔고 있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도 팔고 있었다. 정말 다양했다.


압도!!


압도당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진과 나는 압도를 당했고. 신디는.. 아... 신디...

아침에 아사쿠사와 가마쿠라까지 갔었다가 아키하바라까지 가는 강행군을 거듭했던 우리였기에, 라디오회관에 입성했을 시점에서 신디의 체력은 방전을 넘어 마이너스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 마이너스가 어느 순간 폭발하게 될 시에 마주하게 될 일이 어떠한지는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기 때문에 신디 눈치를 보기 시작했던 나였다. 그리고,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힘들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던 신디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었고. 물론, 진은 직진 모드로 정신없이 라디오회관을 둘러보고 있었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진도 신디가 힘들어한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미안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대로 주저하기에는 아키하바라.. 그중에서도 라디오회관은 너무나도 볼게 많았다...ㅠㅠ


그래서 이 시점에서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조금 더 감상할 것인가? 아니면, 네 여자친구 신디의 체력을 생각할 것인가!!


여행 vs 신디


과연, 노아의 선택은???


신디였다~~~

당연한 거 아니야?

노아가 신디를 생각한다는 건, 인간이 숨을 쉬는 거와 같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니~


마침, 저녁때이기도 해서 근처 라면집으로 신디와 진을 데려갔던 나~



진짜 우연히 찾은 집이었는데, 일본 라면 맛이 궁금하기도 했고 비주얼도 궁금해서 라면 집 찾다가 이곳을 찾았던 것이다.



신디는 왼쪽 사진에 해당하는 라면을 주문하였고. 나는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라면을 주문했었는데, 와....


한 젓가락 먹고 나서 내가 생각했던 건..


짜!!!!


진짜, 혈당이 치솟아 당뇨가 올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달까? 사진으로도 알 수 있겠지만, 정상 범주를 넘어서는 짠맛이었다. 지구상 바다 짠맛이 모두 어디로 갔나? 이 라면에 다 갔지~~


맛은 없지는 않았지만, 짰다. 정말로.. 국물이 깊은 거 같긴 한데, 우리나라 라면에서 느낄 수 없었던 일본 나름대로의 맛이 있었다. 특징들도 있었고. 다만,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 라면은 속을 스냅으로 한방 때리고 나서, 서서히 갈증을 느끼게 해서 어느 순간 짝사랑 상대 떠올리듯이 물을 찾게 만든다면, 일본은 촉수에 내 수분 모두 빨려 들어가서 어느 순간 입속 깊숙한 곳까지 말라버리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일본인들이 짜게 먹는다고??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비단, 라면뿐만이 아니라 모든 음식들이 그러했는데 이건 정말이지 의문이었다, 나로선. 왜냐하면, 일본은 장수 국가인데, 짠 걸 많이 먹으면 장수할.. 수 있나?? 여기에 의문이 개인적으로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뭐 맛은 있었으니~~~ 그리고 그래도 뭘 먹었다고, 신디 기운이 샘솟는 듯해서 나로서는 그것만으로도 대만족이었다. 진도 좋아하는 거 같았다.


라면을 먹은 우린 다시 아키하바라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GiGo? 란 곳에 가서 다양한 뽑기들에 100엔.. 200엔... 1000엔이 넘는 돈이 순식간에 사라져 있는 기적을 볼 수 있었고.



저물어져 가는 하늘과 함께 저물어져 가는 나와 진, 신디의 주머니 사정에 더 이상 우리가 가는 이 길에 우리의 이목을 끌 만한 것들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었지만...



돈키호테에 입성한 순간, 그러한 작은 우리의 바람은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고...


상상할 수 없고, 감히 가늠할 수 없는 물건들에 진은 물론, 신디가 특히 눈에 빛을 내뿜으며 전광석화와도 같은 속도로 쇼핑을 하고 있었다.


"신... 디?? 분명 피곤하다고 하지 않았니??"


이에 신디가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응~ 노아~~~ 나는 쇼핑할 때는 엔도르핀이 샘솟아져서 괜찮아~~"


그녀의 미소와 시작되는 열혈 쇼핑..

동시에 끝을 모른 채 이어지는, 진의 직진..


그리고 이들의 뒤를 열심히 뒤쫓는 나...


나...

지저스..


살려주세요..


소리 없는 내 아우성은 드넓은 이 돈키호테에 울려 퍼지고~~~


잠시 후, 그들의 여정이 끝을 향해 달릴 때쯤, 진과 신디 그리고 나는 돈키호테 아카하바라점 8층? 마지막 층에 있는 어떤 카페를 마주하게 되었으니..


메이드 카페였다..


찰나의 적막과 이어지는 눈치..


그때 진이 우리에게 말했다.


신디 누나~ 저 카페에 가보는 거 어떠세요?


응? 뭐.. 뭐라고?


호기심 어린 눈빛의 진과 그런 진을 보고 혹하는 신디. 그리고 어리둥절해하는 나. 닐 암스트롱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처음으로 달에 발을 디딘 것처럼, 우린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으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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