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광활하게만 느껴졌던, 내 꿈이었던 하늘이 지금 내 족쇄를 채우는 푸른 창살 같이 느껴진다면.. 그릴게 많았던 하얀 도화지가 어느새 그 어느 하나 칠할 공간 조차 남아있지 않게 되어 버린걸 알게 된다면.
나쁘게만 보였던 고길동에게서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나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렸다는 증거라고 했던가.. 그 시절에는, 무한한 꿈을 꾸어왔다. 되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내 포부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언제나 냉엄한 현실을 보여주어 꿈을 꾸려는 생각도 못 꺼내게 만들어 현실에 안주하라는, 무한 가스라이팅을 가했고. 그 가스라이팅에 나는 서서히 굴복해 가면서 성장을 거듭해 왔다.
사회성이라는 이름 아래에, 착하고 모범적인 소시민이라는 명찰을 붙인 채, 그렇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지금의 내 모습이 그 당시 내가 느끼기에 영광의 시절이라 할 수 있을까? 지금보다도 더 미래의 내가 느끼기에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이 영광의 시절이라 할 수 있을까? 언제나 그렇듯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거 같다.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찬란한, 영광의 시절이라는 걸..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 개인적인 시련을 겪고 있는 나처럼 말이다..
슬램덩크에서 나온 명대사였다. 나는 비록 보지 않았지만(보지 않아서 미리 미안합니다..ㅠ), 만화를 보지 않아도 슬램덩크라는 만화 자체에는 낭만이 있었고. 그 시절, 한창 꿈을 꾸던 내 모습이 있었다. 마냥 꿈을 꾸었던, 순수했던 마음으로 가득했던 너와 내 모습이 말이다. 그래서, 느껴보고 싶었다.
물론, 짱구의 배경지였던 가스카베도 있었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내용으로 인해 가마쿠라행을 결정했던 우리.
아사쿠사에서 나온 우리는 아사쿠사바시역이 아니라, 아사쿠사미나리몬?? 정확한 지명은 기억나지 않지만, 근처에 있는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그 역에서 가마쿠라역으로 갈 수 있는 노선을 구글 지도로 찾아서 갔었다는 사실만 기억난다. 그래서 아무튼 우린 열차를 타고, 가마쿠라까지 가게 되는데.. 아.. 이때만 해도, 몰랐으리라.. 가마쿠라가 꽤나 먼 거리였음을..
아사쿠사까지만 해도 꽤 장난 아닌 거리였고. 수천 걸음 정도를 걸었었다. 또, 당시 날씨가 아주.. 장난 아닌 영혼까지 용암에 적셔질 법한 정도였기에, 우리 체력은 내려갈 때로 내려가 있었다. 그래서 나도 그렇고, 진도 그렇고 지친 상태였는데, 특히 신디가.. 아.. 신디.. 신디~~~!!!!
하얀 피부의 신디였는데, 어느새 눈밑 다크서클이 밀물 차올라오듯 올라와 나를 노려보는 듯했다. 이런 이유로.. 열차 타면서 우린 꾸벅꾸벅 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래도 되는 거리였다.
왜냐? 아래 지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꽤나 멀다~ 상당히 먼 거리로.. 이 정도 거리면 서울에서 인천 사이쯤 되려나?? 이를 겪으면서, 새삼 일본 땅이 넓긴 넓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신디와 진이 잠에 들지라도 나는 절대 깨어있으리라!!!
왜냐? 나는 그들을 안전히 이번 여행을 이끌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난! 나.. 나, 니ㅡ리으링리ㅏ위ㅜ리우
타노스의 핑거스냅이라도 일어난 듯, 찰나의 증발 후에 일어난 블립처럼 깨어난 나와 신디, 진. 어느새 가마쿠라역에 도착해 있었다.
도착해서 찍은 주위 모습~~~
동네가 소박하면서도 정적인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우리의 관심은 풍경이 아니었다. 밥!!! 밥이었다!!! 아침에 호텔 조식으로 먹었던 샐러드 이후, 아사쿠사에서 약간의 군것질을 했던 우리였지만, 한없이 배고팠던 것이다. 진짜, 이상하리만큼 며칠을 굶은 것처럼 우린 굶주리고 있었다. 계속 배에서 허기가 져서 급기야 이런 생각마저 들었을 정도였다.
'신디, 일본 여행은 왜 늘 배고플까??'
우리의 위장이 문제인걸까? 에너지 소비 때문이었을까? 많이 걸어 다닌 탓일까? 아니면 양이 적어서일까? 이런 의문은 저 푸른 하늘로 날리고~ 이런 질문들 조차도 사치야. 우리에겐 지금 밥이 필요해~~~ 우린, 신디와 진이 자는 사이 내가 찾아놓은 규카츠 집으로 향했으니~~
오른쪽 사진에 있는 곳이다~
자리에 앉은 우리는 바로 규카츠를 각각 주문하였다. 가격이 꽤나 어메이징~~ 했지만, 여행이고~~ 일본에 왔는데 규카츠를 먹어봐야 하지 않겠어?? 신디가 재차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었다.
"노아, 가격이 너무 비싼 거 아니야?"
내 흔들리는 동공과 미세하게 떨리는 내 손을 영혼 끌어모아 진정시킨 나는 애써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에이~~~~ 일본까지 왔는데, 먹어봐야지~~~ 그래야 후회를 안 해~~~"
여행에 온 만큼, 그 나라의 음식은 먹어봐야 하는 게 내 철칙이고,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만 남을 텐데, 그런 후회는 남기지 않겠다는 게 내 철칙이니까! 가격 걱정 없이, 진과 신디에게 규카츠를 먹이고 싶었다. 그래서 규카츠를 주문했다(아, 나 좀 멋있었다~~ 신디와 진은 좋겠어~~~ 이런 내가 옆에 있어서~).
그리고 한참 후에 도착한 규카츠~~~
된장국과 밥이 들어있는 그릇 뚜껑을 여는데, 밥 양을 보고 난 내 두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이게, 사람이 먹는 양이야?'
내 기준으로 밥 3숟가락 뜨면 없어질 양이었다. 실소가 저절로 나오는 양이었다. 신디도 이런 밥 양에 놀라며 말했다.
"노아, 밥 양이 너무 적은 거 아니야??"
아무리 뭐해도, 일단 밥 양이 적은 건 참을 수 없었던 나였기에, 나는 손을 들며 직원을 불렀고. 짧은 영어로 말했다.
"코노, 라이스! 모어~~~~"
일본어와 영어를 섞은, 내 일글리쉬를 알아듣기라도 한 듯, 직원 분이 밥을 추가로 주셨고. 진에게도 추가로 밥을 가져다주었다. 신디는 따로 요청 안 해서, 신디는 패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 양이 조금 성에 안 차긴 했다.. 이쯤 되니, 일본인은 원래 밥을 많이 안 먹나?? 싶었고... 문득, 역사 시간에 조선 사람들이 일본인들 식사량에 놀랐다는 내용을 실감했던 순간인 듯했다)
밥도 왔으니, 이제 규카츠를 먹어볼까??
구워서 한 입 먹는 순간~~~
나는 내 미각을 의심했으니~~~ 내가 삼성역에서 회사 동기와 함께 즐겨 먹었던 규카츠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입에서 살살 녹았고. 부드러웠다. 전혀 질긴 감도 없었고. 담백했다. 소스를 따로 찍어먹지 않아도 충분히 간이 맞았고. 비싼 만큼의 맛을 보증하는 듯해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밥 양이 적었다는 거 빼고는, 그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 한국에 와서 규카츠를 먹었었지만 아직까지는 이 집에서 먹었던 규카츠 맛을 능가하는 규카츠를 만날 수는 없었다...
뭐든지, 오리지널을 이기는 법은 없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이 음식을 매일 먹으면, 좋을 거 같아서..
어쨌든, 점심을 먹음으로써 조금은 배불렀던 우리는 가마쿠라역 내를 돌아다니다가 다시 거기서 열차를 타야 했으니. 가마쿠라역에서 카마쿠라코코마에 역까지 가야 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장소가 바로 카마쿠라코코마에 역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노선이 에노시마 전철선으로 보이는데, 이 노선의 열차 특징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우선, 열차 색이 유니크하면서 입체적으로 보였다는 점이었고. 조금 규모가 작아서 소박한 느낌도 있었다. 특히, 철도 기관사?를 직접 내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점??
물론, 뭐니 뭐니 해도 인상적이었던 포인트는 푸른 하늘과 바다를 창 너머로 볼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이곳으로 가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꼭 슬램덩크 배경지 때문이 아니더라도, 가마쿠라 자체가 아름다웠다는 점이다. 뭔가, 청춘 로맨스가 펼쳐질 것만 같고. 수수한 남녀가 같이 첫사랑을 속삭이는 듯한 그림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푸른 바다가 자아내는 분위기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그 분위기에 취할 수밖에 없었던 지라, 나로서는 상당히 낭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창 밖 너머 풍경을 보고 미소를 지어보며, 신디도 이런 기분일까 싶어 신디를 보며 말했다.
"신디~~~ 봐~~~ 너무 예쁘지 안.."
그리고 내 눈앞에 보인 건, 눈은 반쯤 감긴 채, 입을 벌리고 초점이 흐릿한 상태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한 사람뿐이었다..
신디??
"시.. 신디??"
"더워.... 더워.... 힘들어.... 피곤해.... 지쳐... 쪄 죽어..."
그 모습을 보고 애써 외면한채, 태연히 웃으며 진을 바라본 나. 신디 미안.. 다.. 다음에는 차 몰면서 여행하는 걸로.. 내.. 내가 운전할게~
"진~~~ 좋지 않냐~~~"
"응!"
쳇, 낭만이라곤 1도 없는 무뚝뚝한 녀석~~~~
푸른 하늘과 바다~~~ 뜨거움과 깨끗함~~~ 그리고 소박한 마을 풍경들~~~ 어느 날의 여름 바람을 불어와 흩날리는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내 곁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