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노아, 어디가 좋을까?”
신디가 갑자기 느닷없이! 나에게 질문을 건넸다. 늘 나에게 갑작스러운 질문과 이벤트로 나를 놀라게 하는 신디였지만, 이번은 진짜.. 어려운 질문이었으니..
신디의 외국인 지인과 함께 갈 장소를 정하는 일이었다.
아.. 과연 우리나라에 어디를 외국인에게 보여줘야 괜찮다고 느낄까??
사연은 이러했다.
그분은 신디와 같이, 주얼리 관련해 같이 공부했던 사이였는데. 그분이 마침, 한국에 출장 와서 업무를 하던 와중에 잠깐 일정이 남아서 여행을 하고 싶어 했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그분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신디로서는 안면을 틀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여. 이런저런 이유로 겸사겸사해서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신디가 나에게 제의를 내리셨으니..
"자기도 같이 가면 안돼?"
"어? 왜? 나까지? 굳이?"
신디가 날 보며 말을 이어갔다.
"아니, 우리 단둘이선 친하지 않아서 어색할 거 같구.. 쥬얼리 관련해 도움 많이 받을수 있을거 같아서.. 이분한테 잘 보이고 싶은데 나 혼자론 용기가 안나.. 자기가 같이 가주면 내가 용기 낼 수 있을 거 같아.. 같이 가주라~"
나참~ 나 비싼데? 훗~ 어쩔 수 없지! 이 몸이 나서서 외조를 하는 수밖에~ 그런데 이 시점부터 우리에게 한 가지 과제가 생기게 되었으니~
어디를 가냐는 것이었다..
이 당시는 2024년.. 아직 케데헌 등이 나오지 않았을 때였으니.. 외국인이 좋아할 만한 관광지가 어디가 있을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분이 이탈리아 출신이었는데, 피자 집에 데려가서 고구마 피자나 파인애플 피자 같은 거라도 선보여야 하려나..
'This is korean style pizza~~ yeeeee~~'
기겁을 하며 놀라는 그녀의 표정. 그걸 지켜보는 신디.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미소 짓는 나~ ㅋㅋ
일단 우린 리스트를 추려 보았다.
1. 명동
2. 남산타워
3. 이태원
4. 성수
신디와 나는 리스트 항목 하나하나씩 보며 가감을 해나갔다.
우선 명동은 이제 너무 진부한 감이 있으니, 탈락. 남산타워는 신디가 올라가기 힘들어 탈락.
이태원은 뭔가 한국적인 정서를 보여주기엔 맞지 않은 듯싶어 탈락.
성수는 위치가 너무 멀어서 탈락.
그 어느 곳 하나 최적의 장소가 없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장소가 있었으니 낙산공원이었다. 나에게 낙산공원이란 나만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는데, 문득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만의 그러한 장소를 공유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침 그때가 지금인 듯하여 제안하게 되었다.
이런 내 제안에 신디도 좋아했으니~
낙산공원을 목적지로 정한 우린 성북구 어느 카페에서 그녀를 만나 같이 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약속 당일. 내가 약속 장소에 이르자 먼저 와있던 그분과 신디. 그 둘이 영어로 프리토킹을 하는데, 나는 허허~ 토익 시험인 줄~ 실로 10년 만에 듣기 평가 대하듯 집중해야 했으니.. 아니, 외국 시트콤은 그렇게 많이 봤으면서 왜 아직도 내 두 귀는 영어에 트이지 않았던 것인가..
그러나, 여기서 포기하면 노아가 아니니! 오늘 어떻게든 외조를 잘해 신디 커리어 향상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신디가 잘될 때 맥북을 사달라고 하.. ㅎㅎ
"This is my boyfriend, Noah~"
신디가 날 그분께 소개하였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Im noah~~"
그 이후 다시 이어진 신디와 그분의 프리토킹. 순간 그들과 나 사이에 펼쳐진 장벽. 만리장성을 능가하는, " 왕좌의 게임" 속 얼음 장벽과도 같은 장벽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으니. 혼자만 고립되어 블랙홀 속에 빨려가 내 시공간 감각이 전부 소멸된 듯했다.
들리세요..?
저기.. 요?
그러나 조금씩 귀가 트이기 시작했는지 아는 단어들이 들려오면서 그들의 말을 미루어 짐작이 가능한 단계에 이르자, 그때부터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여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아, 짧지만 마치 양념처럼 약간의 유머로 그들의 오디오를 꽉꽉 채워 풍성케 해 주니~ 조금은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흐흐~ 나 이래 봬도 윤숸생 했던 솨람이라고~~
오늘따라 내가 말할 때마다 빵빵 터져서 '오늘 나 되는 날인가?'싶어 자신감이 샘솟았던 난 급기야 개그 하나를 치자는 생각에 이르렀으니. 나는 눈을 크게 뜨며 신디에게 신호를 보냈다.
'나, 그 개그 할 거야!'
이런 내 신호를 바로 읽은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강한 눈빛으로 날 응시한 채 만류하고 있었다.
'하지 마! 나 경고했다? 하지 마! 나 창피당하는 거 보게 만들지 말고!'
그러나 그런 그녀의 경고를 무시한 채 개그 시작! 자, 배꼽 잡을 준비 하시라~
난 그녀를 보며 말했다.
"Do u know the coffee that American dont like???"
이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날 바라보았다.
"American dont like... coffee???"
그녀를 응시하며 나는 다음의 말을 함과 동시에 크게 웃었다.
"Americano~~~~"
내 말에 그녀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곧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웃음을 터뜨렸으니~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박장대소가 터지고. 그런 날 보는 신디의 박격타에 내 눈치는 터지고~
그렇게 세 사람의 동상이몽 속에서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우린 식사를 마치자마자 성북천 분수광장에서 낙산공원 쪽으로 걷기 시작했고.
나는 헉헉대며 한 발자국씩 발을 떼며 등반하고 있는 신디를 보며 말했다.
"신디~ 어때? 좋지? 얼마나 좋아~ 푸른 하늘에 맑은 공기~ 크으~~~"
이에 신디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아.. 그.. 러네.."
그러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난 웃으며 말했다.
"자기야~ 저분 보다도 쳐지면 어떻게 하니~ 한국인으로서 프라이드를 가지고! 한국인의 힘을 보여줘~~!! 파이팅~!!"
"자..기야? 이따보자?"
순간,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이는 신디의 시선. 그 시선에 순간 위기를 감지한 나는 바로 자중함을 보이고. 말을 애써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저분 진짜 잘 올라가신다~ 괘.. 괜찮으려나? 그래도 처음 보는 외국인 지인인데 첫 만남부터 등반시키는 게 맞.. 는 건가..?"
신디는 비록 헉헉대며 힘들어했으나, 그분은 꽤나? 잘 오르셨으니~ 급기야 나와 함께 신디 페이스를 맞춰주면서 그렇게 낙산공원에 등반? 할 수 있었다. 힘들어하는 신디의 모습을 보며 문득, 단둘이 갔으면 어땠을까? 분명 달랐으리라ㅋㅋ
멀리 보이는 남산타워와 한눈에 보이는 대학로 전경. 그 모습을 보자 그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감탄을 연거푸하였다.
"Wow... Awesome~~!!! beautiful~~~~"
한때 나만의 장소였던 낙산공원. 지금 이곳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니 감회가 새로웠다.
푸르렀던 하늘이 남색으로 짙어져 갈 무렵, 초록색의 조명으로 남산타워가 멀리 선명해져 갔을 때 그 모습을 나는 조용히 바라보았다. 이때 내 귓가에서 잔나비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노래가 흘러나오는 듯했다. 지금 희미하게나마 아른아른 흘러나오는 그 노래가 마치 이어폰를 매개로 과거로 거슬러 가 그때의 내 기억, 순간, 분위기를 자아내는 듯 했다. 이때, 스물스물 올라온 그당시 내 감정들.
그 감정에 놀라 바로 뒤돌아보니,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홀로 이곳에서 대학로 일대를 내려다보고 있던, 그때의 내가 아른거리는 듯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마냥 울고 있는다 해도, 그 눈물을 닦아주는 어른들은 이 세상에 없다. 스스로 눈물을 닦고 일어서야 한다.
왜 나의 시간은 언제나 밤인지에 대해서도 투덜대고 우울해할 필요도 없다.
밤이 있으면 아침도 있는 법이니까, 이 밤이 지나면 언젠가 아침이 찾아오는 건 당연하니까.
나의 시간에 밤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컸다. 밤이 불어와 일정 기간 나에게 머물렀던 시간, 매번 남색 하늘 구름에 가려진 별을 바라보며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었다.
깜깜한 어둠이 주는 무서움 때문에 우울하기도 했었다. 그 한기 속에 들어가 부르르 떨며 버티고 있던 나날, 그날의 끝자락에는 언제나 어느새 아침이 찾아와 있었다.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그 순간에 내가 매번 목격했던 건, 밤새 울어서 부어올랐던 내 눈과 먼지가 수북히 쌓여있던, 텅빈 내 방.
그때마다 나는 언제나 부어올랐던 눈이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낮 시간을 보내오곤 했었다. 그러다 밤이 찾아오면 다시 되풀이되고~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낙산 공원에 있었다.
나에게 이곳은 그러한 곳이었고, 내 오리지널리티였다.
한 장소에는 추억이 있기 마련이다. 그 추억에는 정서가 깃들기 마련이고. 그 정서는 한 사람으로 하여금 감정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그 올라오는 감정으로 인해, 분위기를 느끼는 법이고.
그 감정 때문에, 분위기 때문에 언제나 생각나는, 그곳에 머물러있는 기억 한 씬. 그 씬에서의 나와 너.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너와 아직 이곳에 남아있는 내 존재 간 간극에서 번지는 그리움.
그러나 그 감정도 한때. 시시각각 불어오는 시간에 그때그때 짙게 머물렀던 우리 모습들은 망각의 저편으로 흩날리고. 새로운 정서가 밀려오는 법이니. 그렇게 우리의 계절은 바뀌고. 순환하는 게 아닐까.
너와 함께 있는 이곳. 이곳의 기류, 분위기, 감정은 그때와 다르다. 공간은 그대로지만, 그때와 전부 다르다.
이런 계절의 순환을 알게 해주는 신디.. 항상 고마움을 느껴. 네가 없었으면 나는 결코 보지 못했을 세상이야. 아메리카노 개그에 웃음 짓던 분과의 만남도 없었겠지.
모든 게 감사했다. 이런 감사함에 벅찬 채, 그리고 매 초마다 불어오는 칼바람에 살가죽 하나씩 벗겨져 아려오는 듯한 한기를 느끼며~
과연 우리는 언제 집에 가는 건지 묻고 싶은 말도 배회하다 얼어버린채~
그렇게 낙산공원에서의 밤은 깊어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