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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리 May 28. 2022

힘든 청춘

딸의 독립 준비

 #청년 주택 유감 #힘드니까 청춘? #흙수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아이가 독립을 부르짖는다.

회사에서도 자리 잡고, 돈도 좀 모으고 해서 여유가 생기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라고 설득을 해도

이미 독립의 열망으로 가득한 딸에게는 엄마의 말은 그저 잔소리일 뿐,

이제 어른인 자신을 지나치게 걱정하는 구시대적 사고를 가진 엄마로 밖에는 취급하지 않는다.

그 나이 때의 나 자신을 생각해 봐도, 독립해서 내 공간을 가꾸며 

부모의 감시(?)로부터 벗어나 나만의 삶을 늘 꿈꿔 왔던 것이 사실이긴 하다.

딸아이는 친구들이 대부분 독립해서 집들이를 한다, 파자마 파티를 한다고 수시로 모여 

밤을 새우며 젊음을 즐기고 오는데

자기만 아직 부모의 품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스스로 답답한가 보다.

더구나 회사가 출퇴근을 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에 있다는 아주 적당한 이유가 있으니 

딸아이의 주장을 말리기도 어렵다.

딸의 독립을 걱정하는 이유 중 제일 큰 것은 딸아이의 독립을 지원해 줄 경제력이 없는 엄마라는 것이다.

그저 적당한 오피스텔이라도 얻어 턱 하니 독립시킬 수 있으면 걱정이 덜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능력이 없으니 걱정은 배가된다.


어쨌든 독립의 열망으로 마음이 불붙은 딸아이는 여기저기 몇 주째 주말마다 집을 보러 다닌다.

주말인데 쉬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많은 집을 보러 다니다 지쳐 들어오는 딸은 

얼굴이 핼쑥하고 표정도 밝지가 않다.

신경도 예민하고 날카로워져서 말도 붙이기가 힘이 든다.

당연히 그렇겠지. 집이라는 게 어디 계산한 대로 쉽게 찾아지는 것인가. 

그저 지켜만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프고 안쓰럽다.

본인은 부모한테 손 벌리고 집 얻는 일은 절대 안 한다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구한다고 

걱정 말라고 해도 부모 마음이야 어디 그런가.

그저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 것. 그래, 저것도 인생 공부거니 하고 스스로 위로를 하며 몇 주를 지켜보니

마침내 엄마한테 같이 좀 다녀달라고 도움을 요청한다.


그래서 큰마음먹고 달려간 곳이 역세권청년주택이라는 곳.

회사에 연차를 낸 딸과 함께 아침 일찍 이런저런 서류를 준비해 부리나케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헐레벌떡 달려가니 벌써 분양받으려 서있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져 있다.

딸아이는 새로 지어서 비교적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이 주택을 분양 못 받으면 

큰일 날 것처럼 조바심을 치며 줄 끝에 가서 선다.

나도 덩달아 가슴이 콩닥거린다. 아파트 분양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아마도 딸아이를 위한 분양이라 가슴이 더 뛰는 것 같다.

거의 마지막에 방 번호를 뽑은 딸아이는 다행이라며 큰 숨을 내쉰다.

궁금해하며 새로 지어 아직 먼지가 풀풀 날리고 신축건물 냄새가 심한 방 앞에서 

문 열어주기를 기다리며 나 자신도 한숨을 내쉰다.


"헉!"

문이 열리며 방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숨이 탁 막히며 쇼크가 온다.

"아니, 여기서 어떻게 살라고..."

풀옵션이라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들은 다 있다지만 침대 하나 달랑 놓으면 

발 디딜 틈도 없는 꽉 막힌 공간.

이곳에서 어떻게 음식을 해 먹으며, 최소한의 사람다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일까.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는 가슴속에서 서서히 분노가 차오른다.


그동안 실업문제, 주거문제, 복지문제 등등 여러 부분의 청년문제가 보도되었어도 

어느 정도는 거리를 두고 보는 입장이었었다.

그런데 그 문제가 눈앞에 턱 나타나니 머리를 크게 한대 얻어맞은 듯했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젊은 사람들을 이렇게 취급하는 정부도, 건축업자들에게도 정말 화가 치밀었다.

입주하면 부담해야 하는 금액도 적지 않은데 내 눈에 들어온 그곳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아니었다.

누군가 닭장이라는 표현을 썼었는데 그것이 딱 들어맞는 곳이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돈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공간을 만들 수밖에 없는 것.

딸아이도 한숨을 쉬며 "엄마. 여기는 아닌 것 같아." 하며 문을 닫는다. 

결국 계약을 포기하고 돌아오며 허탈함과 함께 현기증을 느낀다.

그래도 그곳은 분양이 완료됐다고 한다. 그곳이라도 살아야겠다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이다.


며칠을 오피스텔이며 원룸촌을 딸아이를 쫓아 돌아다니다 보니 너무 스트레스가 심해 

잠이 오지 않고, 밥도 먹히질 않는다.

TV에 혼자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예능프로그램 속의 젊은이들은 그나마 여유가 있는 삶인 듯.

돈 없는 젊은 청춘들의 적나라한 현실을 보게 되니 역시 흙수저인 딸아이에게 너무도 미안하다.

적어도 우리가 젊은 나이였을 때에는 이렇게 힘들고 각박하게 살지는 않은 것 같다.

적은 월급이라도 알뜰히 모으고 절약을 하면 집도, 차도 장만할 수 있었고, 

결혼해서 아이들도 낳아 기를 수 있었다.

큰 욕심만 안 부리면  매일의 일상에 만족하며 작은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시대의 청춘들은 많지 않은 월급으로 집세 내고 밥사먹고 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는 삶을 살고 있으니 그들에게 결혼이며, 미래, 희망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버거울 것인가.

물론 그렇게 살면서도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모두들 애쓰며 살기는 할 것이다.


딸아이는 같이 다니며 마음 힘들어하는 엄마 표정을 읽고 오히려 위로를 한다.

"엄마, 괜찮아, 다 이렇게 시작하는 거예요. 나는 엄마가 집을 얻어준다고 해도 싫어. 

내 힘으로 시작할 거예요."

그 말이 돈 없는 부모를 위로하는 말인 줄 알지만 부모 마음이야 어찌 편할 수 있을까.

그래도 기죽지 않고 씩씩한 딸아이가 기특, 대견하기도 하다. 그게 그런 척하는 모습일지라도.


모든 젊은이들이, 청춘들이 좀 더 편안했으면, 삶이 조금만 여유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분홍빛 꿈도 꾸고, 내일을 향한 희망의 풍선을 띠우며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기성세대들, 특히나 베이비부머 시대에 태어난 어른들이 지금 아픈 청춘들의 삶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겠다.

조금만 덜 힘들고, 희망이 있는 미래를 가질 수 있도록 마음을 나눠주면 

우리의 청춘 아들, 딸들이 약간은 편해지지 않을까.

이 청춘들에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들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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