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이 내려앉은 얼굴로
알바를 시작하면, 하루는 짧아지고
시간은 손에 잡히듯 흘러간다.
버스 창밖으로
익숙해져야 할 풍경이 스쳐간다.
이내 하차를 알리듯
버스가 멈추고, 문이 열리면
찬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 순간, 피곤한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오늘도 웃으며 시작하자!"
이 웃음이 일하는 내 주변에도
번져 가길 바라며.
행복 바이러스, 퍼져라!
알바 시작 10분 전,
누군가는 감자를 깎고,
누군가는 욕조만큼이나 넉넉한 가마솥에 물을 끓인다.
나의 첫 일과는
한가득 쌓인 배식 반찬통을 설거지하고,
끓는 물을 가마솥에서 퍼내
설거지 주방으로 옮기는 일.
그 전에 먼저,
양말과 신발을 벗고 장화를 신는다.
반팔로 갈아입고, 목장갑을 끼고,
고무장갑과 팔토시를 착용한 뒤,
앞치마를 단단히 두른다.
그때, 식당 이모가 다가와
방금 만든 떡볶이를 시식해 보라며
세 접시에 담아 내민다.
남은 10분의 여유를 아침밥 삼아
떡볶이를 먹으며 하루를 준비한다.
"옙! 오늘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전력을 다해 일하다 보면
구내식당의 가장 바쁜 시간,
점심 피크타임이 지나고,
손님들이 떠난 자리에서
이모들과 늦은 점심을 먹는다.
욕조만큼 큰 가마솥을 세 개나 닦고,
주방 바닥까지 깨끗이 청소하고 나니
솔직히 개운했다.
끝없이 밀려오는 식판 속에서
정신과 피로가 절여질 뻔했지만,
오늘도 새로운 걸 배웠다는 뿌듯함 속에서
이모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
첫날에는 그릇을 깨뜨려 조마조마했다.
이제는 순식간에 요령을 터득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내 별명은 역시나 "막내".
가끔 "오빠"라고도 불리지만,
이곳에서 내가 가장 어린데 오빠라니…
보통은 그냥 이름으로 불린다.
그래도 나도 분위기에 맞춰 센스를 발휘하려고
같이 일하는 분들을
"선배님"
"언니!"
"사장님!"
"이모!" 등 각자에게 어울리는 호칭으로 부른다.
'오빠' 라는 호칭은 큰이모가 처음으로 나에게
붙여준 것이다.
밥을 먹는 동안,
딱 봐도 주방일의 연륜이 느껴지는 큰이모는
세 명의 자식을 모두 장가보냈고,
아직 다섯 살 아이를 키우는 초보 엄마도 있다.
"아우~ 그러니까! 가끔씩 전화 와서는
‘엄마~ 엄마가 해주는 김밥이 먹고 싶어~’ 이러는 거야!
물론, ‘그래~’ 하고 부드럽게 말하지, 속으로는 ‘어우, 이 속알머리 없는 놈아!’ 싶다니까!"
초보엄마도 웃으며 맞장구친다.
"자기가 직접 요리해보고, 애를 키워봐야 그때 알겠죠~."
나도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든다.
휴학 계획,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건지...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나도 모르게 현실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그래~! 너네 나이 때는 돌도 씹어 먹을 나이라고 하잖아.
너희는 젊은 게 스펙이다, 스펙!
뭐든 열심히 살아야 해!"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떠오른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이곳 요리 중에서 김치가 정말 예술이에요. 가끔 새벽에 야식할까~하면,
그때마다 생각나요."
큰이모가 재치 있게 받아친다.
"이곳 음식은 다 가져가도 되지만,
김치만큼은 안 돼! 김치는 금치잖니.
배추가 비싸!"
그러자 초보 엄마도 덧붙인다.
"김치는 사 먹어야 한단다…"
그러면서 콩자반을 젓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잇는다.
"그럼 저 갈 때 이 콩자반 좀 싸 가도 될까요?
작은 반찬이지만,
요리하는 데 손이 엄청 가잖아요.
아이들 반찬으로도 안성맞춤이고."
"그럼~! 어차피 애매하게 남아서 버려야 돼.
잘 됐네!
그리고 김치는 다른 요리할 때도 쓰여서,
안 된단 말이지."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날 무렵,
하나둘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제 청소할 시간이다.
이 드넓은 홀 식당.
절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공간.
가끔 청소하다가 잠시 멈춰 물을 마시며
핸드폰을 켜면,
철학적인 이야기,
사회적 논란,
각종 사건 사고…
쏟아지는 뉴스 기사들이 눈에 들어온다.
작가가 되겠다고
이런 기사들을 유심히 살펴보던 날도 있었는데,
이제는 알바에 전전긍긍하는 현실 속에서
그런 이야기들이 왠지 남의 일처럼만 느껴진다.
직장을 다니며 학비를 버는 사람들,
부모의 안락한 지원 없이 생계를 꾸려가는 친구들,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한 사람들.
머리로만 이해했던 그들의 심정이
문득 피부로 와닿는다.
매일 출근하고,
그 와중에 개인적인 꿈도 놓지 않는 삶.
이제는 막연한 걱정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지만, 이상하게 낙담되진 않는다.
오히려,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매일 하나씩 배워가는
지금이
왠지 모르게 만족스럽다. 일단은.
청소는 두 시간쯤 걸린다.
그 정도로 넓다.
젖은 장화를 벗고, 옷을 갈아입고,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고, 대걸레를 헹구고 나면
이제야 가방과 핸드폰을 챙긴다.
그리고 오늘의 일당을 받는다.
"어제 줬던 일급에서 세금을 안 떼고 줘버렸더라고.
이제부터는 세금 떼야 해."
급여를 보니 1,980원이 빠져 있다.
나는 웃으며 90도로 인사한다.
"수고하셨습니다!"
걸어가면서 계산기를 두드린다.
아, 세금 3.3%를 뗀 거구나.
오늘 알바는 끝.
이제 내가 원하던 책을 사러 교보문고에 가야겠다.
그 전에, 집에 가서 씻고 좀 쉬자.
아, 그리고…
콘텐츠 관련 일도 알아봐야 하고,
공모전도 찾아봐야 하고…
어쩌면, 알바를 하면서
미루던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가야겠다는
성실함이 서서히 깃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