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을 삼키고 다시 나아간 시간에 대하여
산재를 신청하려 했던 날을
나는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다친 건 분명히
근무 중이었고,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병원 기록도 있었고,
사고가 난 시간도 명확했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경우엔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어렵다.”
“회사 입장이 있다.”
“지금 신청하면 복잡해진다.”
그 말들은
부드럽게 포장되어 있었지만,
결국 하나의 뜻이었다.
안 된다는 것.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억울하다는 감정이
늦게, 아주 느리게 올라왔다.
‘다친 건 나인데,
왜 내가 이해해야 하지?’
‘일하다 다친 게
왜 내 책임이 되는 걸까?’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법과 제도보다
사람의 말 한마디가
이렇게 쉽게
누군가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솔직히 말하면
많이 흔들렸다.
신청을 계속 밀어붙일 수도 있었고,
싸울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이미 지쳐 있었다.
몸도, 마음도
회복 중이었고
더 이상
싸울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억울함을 삼킨 채
한 발 물러났다.
그 선택이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금도 가끔
‘그때 왜 더 말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선택이
나를 완전히 무너뜨리게 두지는 않았다.
나는 그 이후로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도가 너를 지켜주지 못했어도,
너는 너를 포기하지 말자.”
보상은 받지 못했지만
회복은 계속했다.
인정은 받지 못했지만
다시 걷는 연습은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의 서명은 없었지만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확인 도장을 찍었다.
오늘도 버텼다.
억울함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루는 법을 배울 뿐이다.
나는 그 일을 통해
세상이 늘 공정하지는 않다는 걸 알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에게만큼은
정직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산재는 신청하지 못했지만,
그 시간은
내 삶의 일부로 남았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 억울함 속에서도
너는 무너지지 않았어.
그걸로 충분해.”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혹시 비슷한 억울함 속에 있다면
이 말만은 꼭 전하고 싶다.
제도가 당신을 외면했어도,
당신의 시간과 아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걸 이겨낸 당신은
이미 생각보다
단단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