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깨어 있는 식사_오늘도 허겁지겁 먹고 말았습니

by 오인환

요즘 차는 '자율주행' 기능이 달려 있다. 자율 주행은 꽤 똑똑하다. 저절로 앞차와 간격을 맞추고 차선을 지킨다. 때로는 주차가 되는 경우도 있다. '자율주행'이라는 기능은 꽤 편리한 기능이지만 믿고 맏기기 힘들다. 그 믿음의 담보가 목숨이기 때문이다. 무척 편리한 이 기능은 말 그대로 '보조'로 밖에 사용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자율주행을 보여 주겠노라' 말하면 손과 발을 떼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수초 혹은 수분 정도 지켜본다. 그것이 '자율주행'에게 맡길 수 있는 정도의 신뢰다. 사람은 스스로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고 믿지만 그렇지 않다. 한번도 주체적인 삶을 살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아주 약간만 느껴보고 죽는 경우도 있다.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뇌는 '자율주행' 기능이 있다. 이 자율주행은 '무의식'이 담당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의식'이 관장하는 자율 주행에 몸을 맡기고 '의식'은 다른 곳으로 떠난다. 언젠가 때가 되면 저절로 움직이는 것들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하던 행동을 반복한다.

물을 한 잔 들이키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칫솔을 입에 문다던지, 어떤 이들은 본인도 모르게 잠자리에서 SNS를 확인한다. 누군가는 눈을 뜨지마자, 허겁지겁 상황이 주어진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이들은 과연 주체적으로 살고 있을까.

버릇이 되다시피 깊게 배어져 있는 것을 보고 '인(印)이 박혔다.'라고 한다. 인(印)은 도장을 뜻하는 말로 하도 여러 번 되풀이해서 그것이 '뇌'에 각인되어 버린 것이다.

비가 내리는 겨울, 혹한기 훈련을 했던 적 있다. 혹한기 훈련 중에는 군용 텐드를 설치하고 그 주변으로 물이 흐르는 선 긋어준다. 물줄기는 처음에는 아주 앏게 그 자국을 따라가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길'이 된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면 물은 그 자리를 반복하여 지나가고 결국 그것은 '인(印)'으로 남는다. 뇌도 비슷하다. 아주 사소한 행동이라도 하나의 실선이 긋어지면 아주 얇게 자국을 따라간다. 그 몇 번이 반복되면 그것은 '길'이 되고 결국 인(印)으로 남는다. 한 번 물길이 크게 트이고 나면 물길을 다시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다른 길을 내는 것은 거의 초인적인 힘을 주어야 한다. '시간'이 무념무상히 만들어낸 현상을 인간은 인고의 세월을 견뎌내어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숲길에는 사람 다닌 자국이 있다. 그것은 말 그대로 '길'이 됐다. 처음에는 한 명, 다음에는 두 명이겠지만 점차 그 길은 두터워진다. 언젠가 날을 잡고 한 사람이 최소한의 시간으로 같은 길을 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결국 사람은 다님길로만 다닌다. 그것을 '습'이라 한다. '습'은 '인'으로 박힌다. 그러면 결국 인간은 그저 박혀진 '인'데로 '습'을 행하며 산다. 다님길은 점차 넓어지고 커진다. 고로 더 쉽고 빨라진다. 무의식은 그렇게 작동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3살부터 새겨 온 수많은 행동 중의 반복을 '인'으로 박아두고 산다. 고로 스스로 생각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온 물줄기대로 흘려가며 산다. 삶의 축복은 주체성에서 나온다. 그것이 살아 있음의 축복이다. 다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마치 반쯤 죽어 있는 좀비처럼 '본능'과 '무의식'에 이끌려 살 뿐이다. 머리를 감을 때, 머리 감는 손가락 끝은 머리감는 일에 충실하고 있나. 양치질을 할 때는 칫솔모가 치아 사이 사이에 잘 닦아내고 있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스마트폰에 눈을 붙이고 있거나 귀를 붙이고 있다. 지나간 어제를 생각하고 다가 올 내일을 걱정하며 이를 멀티태스킹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멀티태스킹에 능숙하다고 착각한다. 다만 그것은 착각이다. 애초에 뇌는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하다. 의식을 가지고 해야하는 일에는 확실히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하다. 의식은 시계바늘과 같다. 딱 하나의 지점만 가르킬 수 있다. 2시를 가르키며 동시에 4시를 가르키는 일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의식이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기에, 인간의 뇌는 그 중요도에 따라 일부 업무를 '무의식'에 전담시킨다. 바로 '자율주행'이다. 자율주행은 '의식'이 아니다. 즉, '사람'이 아니다. 쉽게 말해 과거 데이터를 통해 학습된 반복을 이행할 뿐이다. 삶은 어느 정도 과거의 데이터가 유용하게 사용된다. 다만 그것이 곧 미래도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우리는 미래와 현재를 모두 자율주행에 맞춘다. 주사위 굴리기에서 지난 3번의 독립시행이 4번 째 시행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밥을 먹을 때, 밥알의 식감은 어떤가. 혹은 목 넘김은 어떤가. 그 향은 어떻고 미세하게 올라오는 짜고 달고 신 맛들은 모두 온전하게 느끼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식사를 무의식에 맡겨두고 TV나 책을 보고 있진 않은가. 멀티 태스킹은 온전해야 할 의식은 '식사'에 0.5 정도를 사용하고 다른 무언가에 0.5 정도를 사용한다. 비워진 각각의 0.5는 무의식이 채운다. 반 좀비 상태로 식사하고 말하고 살아간다. 앉아 있다면 바닥에 닿아 있는 엉덩이의 촉감은 어떤가. 서 있다면 발바닥에 닿는 땅의 감각은 어떤가. 누워 있다면 등에 닿는 내 몸의 무게감은 어떤가. 숨을 쉴 때, 들숨과 날숨은 완전히 들어오고 나가는가. 콧속을 지난 공기가 가슴을 들어 올리게 하고 다시 서서히 내려가고 있는가. 내 얼굴 근육, 어깨 근유그 다리와 팔 근육에는 의식없이 힘이 들어간 부분은 있지 않은가. 의사가 '식후복용'이라고 적힌 약봉지를 건내주는 것은 그것이 '식사'와 연관되서가 아니라, 규칙적으로 세 번을 나눠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온전히 깨닫는 것은 하루 세번 정해진 시간에 깨닫는게 좋다. 그것이 '식사 시간' 만큼 좋은 게 또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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