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날씨가 흐릿하다. 원래는 비가 온다는 데 비가 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행운이다. 올해는 비도 많이 오고 역대급 무더위가 시작한다고 하는데 벌써 7월이 다 지난 상황에서 무더위도 오지 않고 비도 많이 내리지 않아 나들이하기 좋다. 내가 사는 서귀포시에서 산을 넘어가다 보니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살짝 걱정은 됐지만 한라산 중턱을 찍고 내려가다 보니 빗방울이 머졌다. 되려 시원한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것이 나들이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용담동은 내가 도외에서 손님이 왔을 때, 항상 소개하는 곳이다. 용담동은 제주공항에 붙어있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막 내린 손님들이 바로 제주를 맞이하는 곳이기도 하다. 공항에서 멀지 않은 정도의 거리를 이동하면 카페와 맛집이 즐비한 해안도로가 나온다. 이 해안도로는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과 도민들이 함께 어울려진 제주스러운 곳 중 하나이다.
용담 해안도로를 들어가자 시원한 바다와 관광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더 깊숙하게 안쪽으로 들어가면 '카페 나모 나모'가 나온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맛집의 기본은 '주차장'이다. 주차장이 완비되어있지 않은 맛집은 맛을 평가받을 기회를 많이 놓치는 샘이다. 깔끔한 외관에 전용 주차장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전용 주차장이 가리키는 화살표 방향으로 갔더니 시원하게 넓은 주차장이 보였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주차를 한다. 아이들은 요새 차를 타면 장거리 운전이라고 확신을 하는 것 같다. 차를 타자마자 신발부터 벗는다. 때문에 차에서 내릴 때면 전쟁이 따로 없다. 벗어놓은 신발을 찾고 그것을 다시 신기려면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고서야 겨우 내릴 수 있다.
차에서 내리자 다율이 가 애착 이불을 꼭 껴안는다.
"아빠가 사진 찍어줄까?"
이제는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한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배웠는지 '치주~'라고 말하며 손을 브이로 편다. 신난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성큼 성금 카페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주차장으로 차를 데어 놓으면 당연히 자연스럽게 카페의 뒷문으로 들어가게 된다. 나올 때는 정문으로 나왔는데 어쨌건, 전용추 차장에서 바라본 뒷면도 정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신이 나있다. 아마 아빠와 하는 외출에 대해 이제는 주 1회는 기대하는 눈치다.
간단히 독후감을 기재하는 용도로 시작한 블로그가 이제는 의미가 확대하여 맛집과 생각을 정리하는 곳으로 커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아이들과 추억을 만들고 기억할 공간이 되기도 했다. 뒷 문을 열고 들어가면 커다란 샹들리에 조명이 내리 비추고 있다. 반짝 거리는 조명에 아이들은 궁전에 온 듯 갑자기 괴성을 지른다.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까 우려했지만, 일찍 나온 탓에 사람이 많이 있지 않아 다행이었다. 샹들리에 조명의 스펠링은 Chandelier이다. 이는 양초를 뜻하는 샹델(Chandelle)에서 유래된 말이다. 어쩐지 영어에 있는 Candle과 비슷한 걸로 봐서 어원상 같은 뿌리를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는 '초'라는 뜻인데, 원래는 촛대를 뜻했다고 한다. 라틴어에 칸델라비륨(candelabrum)이 '매단 등'이라는 것으로 보아 아마 영어와 프랑스 모두 라틴어에서 뿌리를 두고 있는 듯하다.
비잔틴 시대에서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가면서 공간을 비추는 도구에서 실내장식의 포인트로 변모했다고 한다. 17세기 후반에 청동과 크리스털로 치장하여 더욱 화려해지기 시작했고 18세기 후반에는 궁전이나 대저택을 더 호화스럽게 만드는 공예품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조명 빛이 노란색인 것이 촛불을 켠 듯했다.
매장의 내부는 금색이 많아 샹들리에의 노란 불빛을 잘 반사시켜준다. 노랑은 심리적으로 휴식과 즐거움의 감정을 돋아주게 하는 색이라고 한다. 또한 평화와 기쁨의 감정이 더 잘 느껴지도로 돕는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부엌이나 식당에서 사용하면 공간에서 오래 머물며 안락함을 느끼게 한다.
노랑의 밝은 이미지 때문에, 노란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노란색의 부정적인 부분은 한없이 부정적인 것도 있지만 좋으면 좋은 거고 뭐든 그 상황과 기분에 맞춰 생각해보면 모든 것들이 그 상황과 그때의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분 좋은 날은 노란색의 좋은 면만 보자.
내부를 들어가면 앞서 말한 대로 노란색 샹들리에 조명이 매장 안을 가득 채운다. 왠지 최고급 숙박시설을 함께 하고 있는 호텔 카페의 내부를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든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내부가 끝이라고 생각했다. 1층에 카페가 끝이라고 생각했고, 생각보다 커다란 일체형 테이블로 되어있는 자리가 부담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나 나는 촌스러웠다. 들어가자 다율이는 '레리꼬야~' 하면서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어디가 어느 부분이 겨울왕국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 눈에서는 동화 속 궁전에 들어온 모양이다. 아이들의 눈이 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후문 바로 왼쪽에 위치한 기계인데, 커피 로스팅 기계인가?. 잘 모르겠다. 어쨌건 장식품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이것이 이렇게 내부에 나와있는 것도 독특했다. '이건 뭐하는 기계지?' 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하율이가 갑자기 카메라 앞으로 와서 '치주~'한다. 아이들은 두 손가락만 펴는 일이 어려운지 온 신경을 가득 담아 검지와 중지를 펴낸다. 신체뿐만 아니라, 두뇌까지 아직 미완성인 아이들이다. 방금 전, 신발을 벗어두고 신지 못하는 아이에게 답답한 마음이 생겼다는 나 자신을 반성해본다. 꼬물꼬물 두 손을 이용하여 어렵사리 브이자 표시를 만든다. 그리고 카메라에 들이댄다.
사진 촬영이 끝나자 두 녀석이 잽싸게 의자부터 앉으려고 한다. 앞서 말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불편해서 커피를 마시기 힘들겠는데?'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 생각이다. Order라고 적힌 계산대에서 주문을 한다. 주문하는 곳 뒤편에는 베이커리가 있었는데 베이커리에서 빵을 꺼내오면 앞 계산대에서 함께 주문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뭘 먹으면 좋을까요?"라는 황당한 초보 아빠의 질문에 직원분은 "수박주스 괜찮아요."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수박 주스와 망고주스를 시켰다. 그리고 베이커리로 갔다. 마치 플라스틱 모형처럼 생긴 예쁜 케이크들이 줄 맞춰 서있다. 쌍둥이 녀석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이때까지도 계속 "이쁘다"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맛있겠다"로 바뀌었다. 역시나 아이들은 초콜릿에 눈을 떼지 못한다. 다른 거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도 무조건 초콜릿만 무한 반복이다.
"그럼 아빠가 다 고를게~"
라고 하자 다율이 가 급하게 마카롱을 먹겠다고 한다. 보라색 마카롱을 먹겠다고 한다. 사실 아이들과 외출하다 보면, 가장 고민되는 것이 애들이 과연 얼마만큼 먹을까이다. 잔뜩 주문해 놓으면 안 하기 때문에 도통 가늠할 수가 없다.
오늘을 위해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나왔는데 많이 먹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무려 3개를 주문했다. 다윤이는 이상하게도 보라색을 좋아했다. 마카롱. 나는 마카롱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여자분들과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간식이다. 이는 달걀흰자와 설탕으로 만든 과자 사이에 쨈이나 크림 등을 채워 만든 쿠키인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마카롱이 좋은 마카롱이란다. 나는 너무 많이 달아서 별로 내켜하지는 않는 간식이기도 하다. 마카로니라는 둥글고 짧은 이탈리안 국수와 그 어원을 같이 하고 있다. 뜻은 반죽을 치거나 두드리다는 뜻에서 시작한 말인데, 이런 이유로 마카롱의 기원이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어렸을 때 오일장에서 어머니가 사다주신 마카로니 뻥튀기 과자도 비슷한 어원을 갖고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나중에 주문이 끝나고 난 다음에 냉장고에 있던 케이크들 외로 많은 치즈 타르트나 마농 바게트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정말 정말 맛있어 보였다. 타르트와 마카롱 바게트 등의 베이커리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전통적인 프랑스 베이커리라는 콘셉트가 확실해 보였다. 사실 해외 이곳저곳을 다녀 보다 보면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게 된다. 사실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현지 음식보다는 한국에서 파는 현지 음식이 더 맛있는 것 같기도 하다. 프랑스 디저트인 브라우니도 있었다. 나는 브라우니 하면 가장 생각이 많이 나는 것은 군대에서 먹던 전투 식량이 생각이 난다. 예전에 선을 잡아당기면 저절로 데워지는 신형 전투식량을 보급받았던 적이 있다. 당시 '초콜릿 케이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전투 식량 안에 케이크가 있다고 해서 신기한 마음으로 먹었었다. 그때 먹었던 맛은 확실히 초콜릿 케이크는 아니었다. '어디서 먹어봤지.' 싶었지만 대충 '브라우니 같다'로 결론짓고 전역을 했다. 실제 브라우니는 맛있는 디저트지만, 그때 전투 식량 생각 때문에 나는 브라우니를 잘 먹지는 않게 됐다. 그 맛있는 브라우니를 군대의 기억 때문에 더 이상 즐기지 못하는 건 슬픔이다.
정말 모양내려고 만들었나? 싶을 정도의 비주얼이 노란색 조명 밑에서 자태를 뽐낸다. 사실 모두 먹어봤다면 좋았을 음식들이다. 먹어보지 못한 거에 대한 리뷰는 이쯤 하고, 이제 아이들과 주문하여 먹어본 것에 대한 리뷰를 해볼까 한다. 앞서 말한 데로, 수박주스와 망고 스무디를 주문했다. 왠지 점원이 추천했던 수박 주스를 주스를 주문 하기는 했지만, 왠지 망고 스무디가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나의 헛된 판단으로 이렇게 두 잔을 주문했다. 아이들은 여지없이 수박 주스를 택했다. 아기자기한 모양의 디저트를 주문했다. 이렇게 아이들이 망고 스무디를 먹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아메리카노를 시킬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이런 디저트는 커피와 먹어야 제맛인데 싶었다. 초콜릿이 잔뜩 들어간 케이크는 아이들의 몹시 좋아했다. 케이크에는 금이 살짝 묻어있는 체리가 있었다. 이 금은 하율이가 감동 없이 먹어버렸다. 반짝거리는 노란색 조명에 사진이 몹시 잘 나온다. 테이블은 반사가 잘되는 금빛 테이블인데 덕분에 인물사진이나 음식 사진 할 것 없이 자연조명이 된다.
아빠가 사진을 찍는 동안 다율이 가 먹고 싶다고 하며 손을 뻗으니 하율이가 "안돼!" 하며 다율 이를 저지한다. 녀석들은 아옹다옹 참 잘 지낸다. 쌍둥이의 좋은 점은 스스로 절제하지 못하는 것을 서로가 견제해주는 데 있는 것 같다. 녀석들은 서로가 자신이 언니라고 단단하게 착각하고 있는데, 덕분에 하율이가 위험한 일이나 절제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다율이 가 절제시키고 다율이 가 절제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하율이가 절제시킨다.
"이제 먹자~"
라고 말하자마자 하율이는 케이크부터 한술 뜬다. 사진 찍을 새도 없이, 이미 케이크의 모퉁이가 잘려나갔다. 그와 동시에 다율이 의 손이 체리로 향한다. 바로 체리부터 선점한 다율이는 만족했다. 나중에 체리가 없어진 걸 안 하율이는 체리를 찾다가 금이 뿌려진 체리를 벌레 씹은 표정을 하고 먹었다. 체리의 꼭지를 선점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이었는데 녀석은 자신이 '금'이 붙어 있는 체리를 먹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까?
다율이 가 직접 고른 보라색 마카롱을 한입 먹는다. 다율이는 윗부분을 뜯어먹고 아빠 먹으라고 준다. 덕분에 내가 먹게 됐는데, 마카롱의 맛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흔히 머리로 알고 있는 것처럼 같이 바삭하고 속이 부드러웠다. 아이들은 수박 주스를 몹시 좋아했는데, 어느덧 정신 차려보니 수박 주스에 꽂혀 있는 수박을 누가 이미 한입 베어 물었다. 그 뒤로도 아이들은 수박을 컵에서 빼지 않고 끝까지 먹었다.
1층 내부를 살펴보고 음식을 맛있게 먹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다 먹었지? 이제 가자!"
맛있게 먹고 정문으로 나왔다. 나는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웬만하면 아이들이 스스로 일을 하도록 한다. 아이들이 부모의 손이 많이 필요하긴 하지만 쌍둥이가 서로 돕고 스스로 한다면, 서로가 부모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충분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육 철학은 첫째도, 둘째도, '독립심'이다.
밖을 나와서 건물을 올려봤다. 2층과 3층이 있었다. 역시 1층이 전부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다시 올라가자."
아무래도 어쩐지 이상하더라 싶었다.
정문의 오른쪽에는 드라이브 스루가 있었다. 제주에서 드라이브 스루는 롯데리아, 맥도널드, 스타벅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드라이브 스루가 얼마나 편한데 제주에는 많이 활성화가 안 되어 있을까. 싶었다.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이런 아이디어는 도대체 누가 생각해 낸 거지?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주차하지 않고 상품을 살 수 있는 이 획기적인 사업 서비스를 생각해 낸 사람은 분명 천재일 것이다.
사실 드라이브 스루가 생겨난 것은 굉장히 오래됐다. 무려 90년이나 됐다. 최초의 양산형 자동차인 미국 포드 T형 자동차는 1892년 발표했다. 그 뒤로 20년이 지난 1914년 미국의 자동차 도시인 디트로이트에 최초의 전기 신호등이 등장했다. 그렇게 자동차 문화가 정착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5년 뒤인 1930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도 한참 전에 드라이브 스루는 존재하고 있었다.
아시아에서는 1976년 일본 니가타현 나가오카시에서 처음으로 선보였고, 우리나라에서는 1992년 맥도널드 부산 해운대점에서 최초로 등장했다고 한다. 이제는 이런 드라이브 스루가 일종의 비대면 서비스를 대신하고 있다. 사실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실례이기도 하다. 요즘의 같은 시대에서는 밖에 나가는 일만으로도 죄책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낀다. 이런 문화가 형성되었을 때는 드라이브 스루는 참 좋은 서비스이다. 우리는 지난 2월 23일 세계 최초로 코로나 19 검사 방법으로 드라이브 수루를 개발했다. 자동차에 탄 채로 접수와 체온 측정 그리고 문진과 소독을 하는데 10분 정도 걸리는 시스템으로 이런 비대면 서비스는 앞으로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곳은 내부가 워낙 예뻐서 드라이브 스루도 좋지만 직접 방문하는 것도 괜찮다.
주차장 입구에는 이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워낙 아이들이 천방지축이다 보니 한 컷을 찍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은 아니다. 뒷 배경으로 제주의 바다가 찍히기 때문에 관광객들에게는 좋은 추억거리가 될 듯하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집 안에 재떨이가 항상 있었다. 아버지는 집에서 TV를 보시며 담배를 피우셨다. 자장면 집을 가면 식탁 위에는 크리스털 모양 재떨이에 물에 젖은 하얀 티슈가 깔려 있었다. 집에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의 흡연 장소는 방에서 거실 창가로 바뀌셨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베란다로 바뀌시고 결국은 집 밖에서 피우신다. 예전에는 버스를 타도 버스 안에 재떨이가 있을 정도로 흡연가의 천국인 곳이 우리나라였다. 요즘은 밖에서 담배를 피우더라도 사람들의 눈살을 받는다. 세상에 많이 매너 있어져가고 있다. 해외에서 봤을 때 우리나라의 흡연율은 매우 높은 편에 속했다. 지금도 담배 값이 비싸다고 많이들 하지만 정말 뉴질랜드나 호주는 담배를 구하는 일이 엄청 힘들다. 입국할 때, 1인이 들어올 수 있는 담배 수량이 정해져 있다 보니, 꼼수를 쓰고 더 들여오다 걸려서 벌금을 내기도 하고 커다란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뉴질랜드를 갔을 때 가장 놀랐던 건, 길거리에 당배꽁초가 없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더욱 놀란 건 뉴질랜드 나라라는 곳의 담배 값이다. 롤링 타바코는 한 갑에 9,000~10,000원 정도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놀란 건, 그렇게 비싼 가격 때문에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담배꽁초를 주워다가 다시 말아 피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고 그로 인해 당배꽁초를 길거리에서 확인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어쨌거나 이 카페 또한 이렇게 흡연실이 따로 있었다. 감회가 새롭다.
2층으로 올라가니 이렇게 데코레이션이 되어 있었다. 비대칭 대코가 많다. 일단 기본적으로 의도적인 흐트러짐이 있다. 일부러 만들어 놓은 주름이나 넘어짐이 자연스러우면서 세련돼 보인다. 아이들은 반짝이는 금색 거울 앞에서 마음 것 하트표 시도해보고 이불도 펄럭여 본다. 사람들은 대부분 바다를 향하여 앉아 있다. 이렇게 바다를 향해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로 삶의 여유가 느껴진다. 커다란 유리를 통해 소금기 있는 짠 바닷바람을 막고 시원한 시각효과만 누릴 수 있는 것도 2층의 매력이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이 정도 뷰면 바글바글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아침 일찍 온 탓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빠, 보드라워요~"
다율이가 살짝 만지면서 이야기한다. 저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보니 만지지 말라는 표시가 있었던 것 같다. 다율이는 소심하게 살짝 만지다가 잘 타이르니.'네~'하고는 일어났다.
그 위 층으로 올라갔다. 3층이다. 3층은 2층과 같이 시원한 뷰를 볼 수 있다. 2층처럼 창으로 되어 있는 공간이 불편하다면 3층이 좋은 것 같다. 사람들은 창이 없는 자연스러운 자연공기를 받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조용히 사람들이 나가길 기다렸다. 3층에서 내려다보니, 이렇게 빔을 통해 영상을 틀어놓고 공간이 보였다. 바닷 속이나 어항처럼 되어 있었는데, 디테일이 감탄스러웠다.
뒤편으로는 가서 앞 쪽 사람들이 나가길 마냥 기다렸다. 뒤편은 주차공간을 포함하여 산이 보인다. 이곳에 앉아 있으면 수시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볼 수 있다. 아이들은 비행기가 뜰 때마다 비행기 노래를 부르며 신나 했다. 나는 아까 먹다 남은 망고를 테이크 아웃 잔에 담아서 마저 마셨다. 테이크 아웃 잔이 독특했다. 조금만 오래 들고 있으면 축축해지는 종이로 된 커버와는 다르게 여기의 커버는 매우 튼튼한 재질로 되어 있었다.
드디어 3층밖에 있던 손님 분들이 나갔다.
"얘들아 들어가자~"
손님이 없기 때문에 마음 것 아이들 세상처럼 보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열광하던 건 가운데 있던 조약돌과 돌고래를 탄 소년이었다. 조형물을 잠시 감상하더니 아이들은 돌멩이를 계속 만지작 만지작거렸다. 내부는 정말 시원했다. 해변을 걷다 피곤할 때즘 와서 누워 쉴 수 있는 간이침대와 소파들이 있다. 실제로 저기 누워 낮잠을 자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워낙 들떠 있는 상태라 경계를 늦출 수 없어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쐐어봤다. 하율이도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하율이를 쐐어주고 나면 꼭 바라지 않아 하더라도 다율이도 해줘야 한다. 쌍둥이 녀석은 뭐든 똑같지 않으면 싸우거나 서운해하거나 둘 중 하나이다. 다율이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하율이만 않아주는 아빠를 보고 내심 시샘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율이 한번, 다율이 한번, 번갈아가며 바닷바람을 쐐어주었다.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바다를 가리켜며 신나 했다
3층에서 이것저것 구경을 잔뜩 하고, 4층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4층 있는 돌하르방을 하율이가 꼭 하고 앉아본다. 하율이와 다율이는 너무나도 신나 한다. '사춘기가 되면 아빠랑 노는 걸 별로 안 좋아하겠지.' 벌써 4살이면 이제 10년을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친구에게 내어주어야 하고 그 뒤로 10년 후에는 자신의 배우자들에게 내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좋은 사람들을 찾을 수 있도록 좋은 곳과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