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빠방'가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다른 어린이들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빠방'은 드라이브를 뜻한다. 노란 자동차(유치원차)가 아닌 빨간 자동차(아빠 차)를 타고 외출하는 날은 나도 그렇지만 아이들도 신나는 일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주중 유치원에서 이제 도착한 아이들을 데리고 '빠방'을 가기로 했다. 아이들은 노란색 가방에 자신들의 소지품을 챙기고 정원으로 내려왔다. 날씨는 조금씩 비가 내렸지만, 마침 우리가 나서는 시간에는 잠깐 비가 멈추었다. 덕분에 아이들은 우산 없이 나들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이 더욱 기분이 좋았던 건 나비였다. 화단을 날아다니는 나비가 아이들 앞에서 춤을 추다 '휘리릭'하고 날아간다. 아이들은 '나비야~' 노래를 부르며 정원을 뛰어다녔다. 이번에 우리가 갈 곳은 '교래리'이다. '교래리'는 에코랜드와 사려니 숲 근처에 위치한 동네이다. 예전에는 '사려니 숲길'은 정말 아무도 모르고 심지어 근처에서 나고 자란 나도 모르는 곳이었는데, 언제 부턴가 갑자기 핫해지더니, 요즘은 거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사려니 숲길에서 산책을 하는 사람들은 대게 교래리에서 식사를 하곤 한다.
우리는 교래리 안쪽으로 더욱 깊게 들어간 '맛집 칼국수'를 방문했다. 이름부터가 '맛집 칼국수'이다. 원래는 그 맞은편에 있는 초등학교에 들려서 잠시 운동장에 있는 놀이기구를 좀 타고 놀 생각이었으나 비가 왔던 터라 초등학교를 방문하지는 못했다. 넓은 주차공간에 차를 주차하니 굳이 초등학교를 방문하지 않아도 괜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록달록 그네가 커다란 마당에 자리 잡혀 있었다. 아이들은 타보라는 말도 안 했는데, 벌써 달려가서 서로 앉아 보고 난리도 아니다.
"내가 밀어줄게~"
하율이가 다율이를 앉히고 그네를 밀어준다. '영차 영차' 한참을 밀어주는 서로이다. 얼마 후에는 하율이도 힘이 들었는지 아빠 보고 밀어달라고 한다.
결국 사진 찍는 일을 내려놓고 아이들을 밀어준다. 아이들은 너무 좋아했다. 살짝 빗물이 마른 터라 아이들이 앉아 놀 수 있었다.
안에는 독채가 따로 있었다. 우리는 별채로 들어가 식사를 할까 했지만, 좌식으로 되어 있는 식탁이 낫은 듯하여 사장님이 안내해주시는 방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는 흑돼지 두루치기와 보말 칼국수 2인분을 시켰다. 기본 밑반찬으로 쌈을 먹을 수 있는 상추와 김치류가 나온다. 이제 보말 칼국수도 나온다. '보말'은 바다 고동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으로 '고메기'라고도 부른다. 이를 지칭하는 표준어가 없는 이유는 이 생물이 제주에서만 서식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바닷가로 가서 검은 현무암 돌을 밟으며 고메기를 잡으러 다녔다. 잡는다기 보다 주으러 다녔다. 구멍이 송송 난 제주 현무암을 바닷물이 흠뻑 젖은 슬리퍼를 신고 뾰족 뾰족한 돌 틈을 다니다 미끄러지면 짠 바닷물과 뜨거운 피가 섞이는 손바닥을 제주도 어린이들은 종종 보곤 했다. 고메기를 주머니 속에 가득 줍고 가면 집에서 어머니나 할머니는 이 고메기를 삶아 주신다. 그러면 조그마한 바늘로 고메기 집 속에 들어있는 고메기 살을 콕 찍어 빙글빙글 돌리며 꺼내 먹는 재미가 있다.
고메기는 주로 작은 해초류를 먹고사는 생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고메기 똥'이라고 부르는 끝부분은 초록색이다. 어린 시절에는 이게 뭔지 모르면서 '똥'이라는 어감 때문에 먹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똥이 아니라 내장이다. 이런 보말의 내장은 칼로리가 낮고 지방 함량이 적다. 각종 무기질이 풍부하여 다이어트에 더없이 좋은 부분이다. 또한 이는 원기회복에 좋고 고소하고 깊은 맛이 난다. 제주는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이 '보말'이라는 것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칼국수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6.25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전쟁 통에 먹을거리가 부족하던 시기, 배부르게 먹기 위해 음식을 찾던 사람들이 구호물자로 들어온 밀가루를 이용하여 국수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최초에는 '밀가루 국수'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한국 전쟁 당시 미국 2사단 의무병으로 참전한 한 병사가 사람들이 먹고 있던 음식을 먹어보고는 다른 동료를 함께 데리고 와 소개하기 시작했고 이 국수를 최초로 전파한 Karl 상병의 이름을 따서 Karl's noodle이라고 불렸다는 이야기다. 출처가 정확하지 않은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는 그렇다. 사실 나는 출처가 불확실한 이런 루머를 그다지 신뢰하진 않는다. 그보다 더 재밌는 건, 김포에는 칼국수집이 많다. 안 동하면 찜닭이고 춘천 하면 닭갈비고 전주 하면 비빔밥이 듯, 김포 하면 칼국수가 떠오른다. 김포에는 왜 칼국수 집이 많을 까? 그 이유는 김포공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KAL(Korean Air Line)이라는 글자 때문이란다. 둘 다 믿음은 안 가지만 심심풀이로 알고 있는 내용이다.
칼국수에는 미역이 함께 들어가 있다. 미역은 섬유질이 많아 장의 운동을 촉진시킨다고 한다. 때문에 변비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효과가 있고 특히 칼슘의 함량이 많고 흡수율이 높아 산모에게 매우 좋다고 한다. 미역 따는 일은 성장기에 있는 미역을 따는 것을 일정기간 동안 금지하였다가 다 성장하면 따는 일종의 규칙이 존재하는데 12월부터 금채기간에 들어갔다가 3월 정도가 되면 이를 해채한다. 이렇게 금채 기간을 정한 것은 마을민 모두를 위한 것인데, 마을 사람들 모두가 서로 경계하면서 지킨다고 한다. 교래리는 토종닭 특구로 지정되어 있다. 해산물이 많은 다른 제주 지역과는 다르게 흑돼지나 닭 등의 음식점이 많다. 내가 먹은 것도 흑돼지였는데 그 이유는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태종실록에 보면 수렵을 통해 잡은 짐승을 종묘에 제물로 바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수렵으로 인해 농작물 피해가 많아지면서 일정 지역을 사냥터로 정했는데, 그 지역이 제주에서는 바로 '교래'라고 하는 지역이라는 것이다.
제주는 곰이나, 표범, 승냥이, 여우, 이리, 호랑이 같은 맹수가 살지 않는 지역이다. 때문에 돼지나 사슴, 오소리 등의 작은 동물들이 많이 자란다. 때문에 제주지역의 단백질을 이 교래 지역이 책임졌다고 볼 수도 있다. 원래 '두루치기'란 음식에만 사용하는 명사는 아니다. 이는 한 가지 물건을 이곳 저것에 두루두루 쓴다는 것을 말한다. 혹은 그런 음식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만능'과 비슷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녀석 공부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는 두루치기로구나!'와 같이 순수 우리의 말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두루치기와 제육볶음을 헷갈려한다. 두루치기는 생으로 야채와 고기를 볶다가 육수나 양념을 넣어 졸인 음식이다. 하지만 제육볶음이나 불고기 같은 경우는 생 고기가 아닌 재운 고기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때문에 불고기와 제육볶음은 양념의 맛이 고기에 고루하게 배어 있다. 반면 두루치기의 경우는 원재료 하나하나의 맛이 모두 살아 있는 편이다. 제주의 두루치기는 다른 지방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나온다. 양념을 한 고기를 불판 위에서 어느 정도 익히고 난 뒤 다른 채소류를 볶아서 다시 익히는 형식이다. 때문에 음식이 나오자마자 바로 먹어도 별 문제는 없다. 또한 채소류의 아삭함이 바로 느껴지는 것은 제주식 두루치기의 특징이다.
아이들도 잘 먹었다. 오래간만에 건강식을 먹이는 듯해서 아버지 노릇 톡톡히 하는 느낌이다. 밖으로 나와서 정원을 많이 찍었다. 사진을 한 참 찍고 있는데, 사장님이 나오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신다.
사실 나는 내가 찍고 있는 게 무엇인지 몰랐지만, 사장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진 좋아하시나 봐요? 잡초도 찍으시네요."
내가 찍고 있던 게 잡초였구나..
일단.. 사장 님이 친절하셔서 덕분에 아이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