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무슨 뜻일까? 박물관은 한자로 넓을(박)에 물건(물)을 쓴다. 고고학적 자료나 역사적 유물 혹은 예술품이나 학술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곳이다. 다양하고 많은 물건들을 진열해 놓고 일반인들을 교육하기 위한 시설이다. 제주도는 유독 박물관이 많다. 벌써 100곳이 넘는 박물관이 제주도에 있다. 하루에 한 곳 씩 둘러보다더라도 한 분기는 쉬지 않고 돌아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다. 때문에 정말 좋은 박물관을 고르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어쨌든 이런 박물관이 많다는 사실은 많은 공예품과 콘텐츠가 제주로 몰려 있다는 뜻이고 그만큼 선택지와 볼거리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의 여행 테마는 무엇으로 해야 할까? '유리의 성'으로 택했다. 유리라는 독특한 테마를 가지고 어떤 공예품과 전시품을 진열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유리라는 독특한 테마를 가진 박물관이 이처럼 집 근처에 있다는 것은 제주에 살고 있는 삶의 축복이다. 널따란 주차장의 끝에 차를 주차한다. 요즘은 '코로나 19' 때문에 관광객의 발길이 많이 줄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해외를 나가지 못하다 보니, 제주를 사는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부쩍 렌터카가 늘어났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관광객들은 나름 부딪치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관광지를 찾아 관광을 하는 듯했다. 이런 공원형 박물관은 요즘 같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좋은 선택지이기도 하다.
유리의 성.
입구가 보인다. 매표소를 지나 유리의 성 안으로 들어간다. 널찍한 주차장과 입구는 4살 배기 딸아이들이 뛰어놀기 충분했다. 우리는 주중의 오전을 이용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때문에 여유 있는 관람이 기대됐다. 들어가자마자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예품들이 우리를 맞이 했다. 불쑥 시작된 전시의 시작에 당황했다. 산호초와 물고기를 표현한 여러 가지 공예품들이 '유리의 성'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된 공예품 중에는 닮은꼴이 없다. 하나하나가 생동감이 넘치고 다양한 모양이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더라도 물속에 있는 듯 생동감 넘치는 작품들이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유리병들이 어쩐지 낯이 익다. 어디서 본 듯한 유리병들이다. 이토록 재밌는 작품을 시작으로 박물관의 첫인상이 생겼다.
입구의 왼쪽 측면에는 '구슬이'와 '유리'라는 대표 캐릭터가 이렇게 맞이하고 있었다. 동글동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에 쌍둥이 녀석이 자석에나 이끌린 듯 쪼르르 달려간다. 유리가 배꼽인사하는 모습에 녀석들도 배꼽인사를 했다. 재빨리 카메라를 꺼내 들었지만 재미난 장면은 촬영하지 못했다. 가만 보니 뒤에 있는 벽이 유리였다. 유리의 평면만을 살펴보단 나였는데, 이렇듯 측면을 겹겹이 쌓아 벽을 만들었다고는 생각을 못했다. 이는 수 만장의 판유리를 한 장 한 장 붙여 쌓은 작품이라고 했다. 그저 벽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조차 조형물이었다. 이는 작업 기간만 수개월이 걸렸다.
참 재밌게도 콘셉트에 충실한 박물관이었다. 지나가는 디테일 하나하나가 살아있었다. 자리에 앉아 쉴 수 있는 벤치 또한 유리로 되어 있었다. 나는 나의 무게를 버티지 못할 것 같아 앉아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그렇게 약하게 만들진 않았겠지 싶다. 사실은 우리가 들어간 곳이 출구라는 사실도 몰랐다. 아이들과 나는 출구를 시작으로 안쪽으로 깊게 들어갔다. 선인장과 버섯을 포함한 강아지 풀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이들은 눈이 반짝반짝거린다. 이제야 말을 겨우 배우는 아이들에게 이런 귀여운 조형물들은 참 말공부하기 좋았다. 강아지풀은 아이들은 그냥 휙 하고 지나가던데, 왠지 잘은 모르겠으나, 초록색은 소주병이고 노란색은 맥주병으로 보이는 것은 나의 과거를 반성해야 하는 건가 싶다.
위에는 백조로 보이는 새들이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는데, 재밌게도 이 것들의 본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다. 사실 유리는 모래(규사)와 석회(탄산칼슘) 그리고 소다(탄산나트륨)를 고온으로 녹인 후 급속하게 냉각시켜 만드는 물품이다. 이는 주조, 압연, 용접을 통해 자유자재로 형태를 변형할 수 있으며 기본 성분에 다양한 화학물질을 첨가가 가능하다. 이로 색상이나 성질을 바꿀 수가 있다. 요즘 '그린 경제'가 핫한데, 유리는 분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 말 때문에 환경에 좋지 못하다는 편견이 있으나, 이는 회수율이 좋고, 형태 변형과 재활용에 유리하기 때문에 어쩌면 친환경 소재라고 본다. 이는 자체로 분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화학적 변화를 이용해서만 성분 변화를 할 수가 있는데, 이 때문에 땅속에 묻힌 유리가 생태계적으로 나쁜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잠수함이야!"
다율이가 소리친다. 잠수함이란 말은 어디서 배웠는지 오리무중이다. 아이들은 부쩍 출처를 모르겠는 어휘력을 발휘하여 나를 놀라게 한다. 최초에는 유리의 기원과 정의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설명해준다. 사실 생각보다 유리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이는 기원전 3000년 경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사용되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신석기시대가 종료되는 시점이다.
어린 시절 '제크와 콩나무'라는 영국 동화를 주제로 한 조형물이 건물 중간으로 크게 나있다. 물론 모두 유리다. 날씨가 좋은 날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볕에 화려한 모습을 자랑할 것 같은 모습이지만, 우리가 간 날은 날이 몹시 흐렸다. '잭과 콩나무'는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였는데, 이는 영국의 민화를 동화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때문에 작가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핵심은 인간이 심은 작은 '콩 알' 하나가 하늘까지 닿는다는 대목이다.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콩나무가 '농사'의 경이로움을 말하려 한건 아녔을까 혼자 생각해본다. 여기서 황금알을 낳는 닭이 나오는데, 마침 조형물에서도 황금알을 낳는 닭이 있었다. 유독 유럽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닭이나 거위가 자주 등장한다.
기후에 따라 토양이 척박하던 유럽지역은 대체로 영주와 노동자의 계급이 확실하게 나누어졌었는데, 이런 계급사회는 빈부격차를 심화시켰다. 이런 빈부격차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은 단백질 섭취가 쉽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많은 유럽에서는 쉽게 기를 수 있고 언제나 공급 가능한 달걀을 생산해 내는 거위나 닭을 집집마다 닭을 키워 생계를 유지했다.
유럽에는 성당의 종각 위에 닭 장식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성경 말씀에서 찾을 수 있는데 예수님과 열두 제자가 최후의 만찬을 가질 때,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너는 닭이 울기 전에 3번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고 말하였고 이에 베드로가 "저는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 장면에서 그 시초를 찾을 수 있다. 그러다 다음날이 되고 새벽에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처럼 3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하였다.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고발했다는 자책으로 자살하고 베드로는 회개를 하였는데, 이런 이유로 닭은 회개의 상징이 되고 성당 위에 닭의 형상이 올라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에는 황금알을 낳는 닭이나 거위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소 황당할 정도로 순수했던 것 같다.
'잭과 콩나무'를 빠져나와 바로 아주 좋은 포토존이 있었다. 실제로 봤을 때는
'웬 폭포에 물고기를 매달아 놨나?'
생각했다. 하지만 이처럼 사진을 찍고 보니, 폭포를 거슬로 올라가는 연어들처럼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 있는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물고기의 종류가 연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이처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이 사진 찍고 난 후에나 알 수 있었다. 연어는 강에서 태어나 바다로 내려가 생활한다. 알을 낳을 때쯤이 되면 자신이 태어난 강을 찾아가는데,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는 이 습성은 신기하게도 본능이다.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강의 물 냄새를 기억할 정도라고 한다. 알을 낳기 위해 자신이 살던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엄청난 여정인데 때로는 200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해야 할 때도 있다.
나는 만 20살에 해외로 나가 거주했다.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괜찮은 직장과 안정적인 수입을 갖고 있었다. 누가 봐도 중산층 이상의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듯한 심심한 나의 인생을 뒤로하고 나는 내가 나고자란 이곳 제주에 돌아왔다. 그리고 이처럼 나의 아이들과 함께 같은 공간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연어를 보면 왠지 꼭 나를 닮은 듯하다. 바로 옆에는 살아 있는 물고기가 있다. 아이들은 진짜 물고기를 보자 소리를 지른다. 이곳에서 한참을 머물다가 다시 앞으로 간다. 공원은 생각보다 넒 었다. 박물관이라 실내 진열품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공원도 넓고 참 좋았다. 우리가 도착하기 얼마 전까지는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참 다행인 것은 내리고 나니 비가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우리 아이들과 나는 마음 것 공원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다.
사실 만져도 되는지 안되는지 애매한 작품이었다. 애들에게 조심히 다루라고는 말했다. 아이들은 반짝거리는 과일 모형과 의자를 보더니 꼭 만지고 앉고 싶었나 보다. 우리 앞에는 한 남녀 커플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이곳은 아무래도 연인들이 함께 하기 좋은 것 같다. 사진 촬영은 하지 못했지만, 거울로 된 미로를 빠져나오면 바로 아름다운 포토존이 나온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덥석 하고 꽃을 잡길래,
"박물관에서는 함부로 만지는 거 아니야~"
하고 일러주어 아이들이 아쉬워했는데, 알고 봤더니 선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마음껏 꽃을 들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계속 들고 있게 해 줄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미로 옆에는 아치형의 통로가 있다. 위에 달린 유리잔과 유리구슬들이 바람에 부딪치며 '쨍글 쨍글'하는 아름다운 소리가 꾸준하게 나온다.
새가 우는 숲 속을 걷는 것처럼 유리가 부딪치는 소리는 깨끗하고 마음을 정화시켜주기도 했다.
아! 그리고 이 박물관의 장점 중에 하나는 박물관 관장님의 취향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원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음악이다. 팝 음악을 틀어놓으셨는데, 선곡이 너무 좋아 나갈 때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나중에는 우리 아이들이 체력이 다돼서, 들쳐 엎고 앉고 차로 가느라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사실 유리박물관이라 유리만 있을 것 같지만, 거울도 참 많다. 그도 그럴 것이 표면이 평평한 유리판 뒷면에 수은을 바른 것이 거울이기 때문이다. 서기 6세기경까지는 청동기로 거울을 만들었는데, 사실 당시의 거울은 얼굴을 빚춰 보는 용도라기보다 제사를 지내는 용도로 사용했다. 때문에 태양의 빛을 반사시키는 용도로 그 사용을 하였다. 태조 왕건은 왕창근이 갖고 온 오래된 거울에 새겨진 글자를 해석하여 고려 건국을 결심했다고 하고,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거울이 깨지는 꿈을 꾸고 나서 길몽이라는 해석에 힘을 얻고 조선 건국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이들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이쁜 표정을 짓고 있다.
제주 유리의 성은 아직 걸음마 단계인 한국 유리공예의 저변 확대와 질적 수준을 높이고자 설립했다고 한다. 때문에 유리 공예 선진국인 이탈리아나 체코, 일본의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도입 부분에 말했던 제주에 박물관이 많은 이유는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문화예술품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제주라는 지역의 특성이 가장 중요하기도 하다.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들은 한참 겨울왕국에 빠져 있는 터라, 얼음처럼 보이는 유리 공예를 보며 '안나 공주 같아'를 연신 반복한다. 그러고 보니 얼음과 유리는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건물을 나오자 산책로가 보인다. 유리의 성은 다음 봐야 할 장소를 친절하게 화살표로 표시해 놓는다. 다음 장소를 향해 들어간다. 회사는 벌써 14년이나 된 2006년 설립되었는데, 벽돌에 각종 낙서가 되어 있는데 그 시간을 보니, 꽤나 오래된 낙서의 글들이 감성에 젖게 한다. 과연 저들은 지금 잘 살고 있을까? 이곳에서의 좋은 추억을 남기고 지금 이 순간에는 열심히 일상을 살아가고 있겠지? 그들의 낙서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니 어느덧 넓은 공터가 나온다.
한 참을 가다 보니 '투명 화장실'이라는 표시가 보였다. 마침 화장실을 가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이는 안 쪽에서는 밖에 보이고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다. 조금 기분이 이상하기는 했다. 예전에 독일인가? 유럽 어딘가에서 이런 비슷한 조형물을 도심의 길거리에 설치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본 적이 있었는데, 참으로 괴이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여러 가지 유리를 만드는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목형 틀이다. 아무래도 고온으로 주조하는 걸로 알고 있는 유리 공예를 나무로 했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다보탑이나 첨성대처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보들도 유리로 만들어 구경할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르지만, 조금만 더 크고 아빠와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된다면 거리낌 없이 설명해 줄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보탑 하니까 10원짜리가 생각이 난다. 예전 사촌들과 돈에 있는 숨은 그림을 모두 찾으면 죽는다는 루머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있다. 사실 돈이나 동전에는 그 국가의 기틀을 세웠던 근대적 인물들의 얼굴을 주로 넣는다.
내가 살던 뉴질랜드도 여왕의 열굴이 그려져 있었던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학', '벼', '다보탑' 등이 그려져 있다. 심지어 근대적 인물은 거의 없고, 이순신 장군이나 이황, 이이, 세종대왕, 신사임당 등이 그려져 있는데 아마도 정리되지 않은 근현대사와 정치 상의 문제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예전 중학교 선생님이 한국돈 500원을 일본에 갖고 가면 자판기가 일본돈으로 인식해서 음료수를 대충 사놓고 거스름돈을 받으면 나중에 환전할 때 돈을 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이 일본 여행에서 그렇게 여행자비를 벌었다는 이야기를 떳떳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수년이 흐르고 그 이야기를 잊을 때쯤 관련 내용에 대한 뉴스 기사가 나왔고, 결국 일본 정부는 자판기 인식 방식을 바꿨다는 씁쓸한 내용의 이야기를 접했다. '부끄러운 한국인'이라는 말을 한참 하고 다니던 그 시절 나의 학교 선생님이 영웅담처럼 해대던 그 이야기가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비 의자가 있어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다율이가 뒤를 돌아보더니, 이렇게 왜 쳤다.
"나비가 위험해!"
뒤를 봤더니 거미가 나비를 잡아먹으러 가고 있었다.
다율이는 "거미 저리 가"를 연신 외쳤다.
사실 이 내용은 동영상으로 촬영했었는데, 나비를 잡아먹는 거미를 보던 다율이는 직접 구해주겠다고 난리가 났다. 결국은 이 조형물을 보고 다율이는 울음이 터져버렸다.
"거미가 나비랑 놀려고 그러는 거야. 잡아먹는 거 아니야"
라고 아무리 타일러도 다율이는 거미로부터 나비를 구해야 한다고 한참을 때를 썼다. 그 옆으로 쇠똥구리가 있었는데, 쇠똥구리로 아무리 주의를 돌리려 해도 안됐다. 나중에 봤더니 그 옆에 또 다른 거미가 나비를 잡아먹으러 다가가고 있었다. 두 녀석이 울며 불며 나비를 구해주라고 하는 통에 이곳이 가장 진땀 나는 곳이었다.
겨우 진정이 됐을 때쯤, 다율이가 괴물이 나타났다고 훌쩍거린다. 얼른 가봤더니 재밌는 조형물들이 서 있었다. 사실 마지막 산책로가 가장 힘들었다. 아이들이 낮잠시간이 자나 버리기도 했고 아이들이 너무 뛰어놀더니 체력이 다됐나 보다. 요즘 같은 시국에는 이런 실외형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도 좋은 체험인 것 같다. 우리는 넓은 공원형 박물관에서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구경을 했다. 덕분에 아이들과 여유 있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