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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와 아빠의 제주여행#9_가파도 여행

by 오인환

좌와 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배를 타고 온 곳은 가파도다. 흩뿌리는 비를 뚫고 한 시간이나 선착장으로 이동하면서 이번 여행은 망했다고 확신했다. 와이퍼가 심하게 앞 유리를 닦을 때마다 마음은 싱숭생숭했다. 아침에 우산을 들고 온 것은 다행이었다.


배를 탈 때만 하더라도 날씨는 좋지 못했다. 흐릿하다가 빗방울이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선착장에서도 불안 불안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난 아빠를 따라 하율이가 일어났다. 하율이는 아빠와 눈을 마주치더니 한참을 쳐다본다. 그리고 갑자기 다율이를 급하게 찾는다. 새벽의 소동 때문에 하율이와 다율이는 아침 7시에 일어났다. 덕분에 아이들이 출발 전부터 칭얼 거렸다. 우선 다율이가 운동화가 아닌 구두를 신고 가겠다고 떼를 썼다. 안된다고 약속을 하고 차를 올라타니 우산을 갖고 가겠다고 떼를 쓴다. 차를 타고 얼마 후 다시 내리고 우산을 챙겼다.


한 시간을 운전하여 겨우 선착장으로 내렸더니 다율이가 우산을 들고 가겠다고 난리다. 바람이 세게 불어서 아이가 우산을 드는 것도 위험했지만, 얼핏 비가 오지 않을듯 보여 짐처럼 보여졌다. 그 밖에 아이들은 애착 이불을 꺼내달라 넣어달라. 가방을 들어달라 넣어달라를 반복하며 칭얼거렸다.


승선 신고서를 써야 했다. 간단한 노트북과 커다란 DSLR 카메라, 그리고 아이들 가방과 내 가방을 어깨 이곳 저곳에 들쳐 매고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애착이불을 어깨에 들쳐 맸다. 군 시절 유격을 마치고 돌아오는 천리행군이 따로 없구나. 당시 완전군장을 하고 걷다보면 내가 밟는 바닥에 공룡 발자국처럼 흔적이 남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토록 무거운 짐을 들고 그리고 양손에 아이를 잡고 여행을 갈 수 있을까 싶었다.
대략 완전 군장한 군인의 모습을 하고 승선 신고서를 작성하니 매표소가 보였다. 줄은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요즘 시기가 시기다 보니 사람들의 외출이 거의 없는듯 했다. 어렵지 않게 매표를 마쳤다.

이른 아침부터 부실하게 먹고 온 아이를 위해 바나나 우유와 딸기우유 그리고 삶은 계란을 샀다. 하율이의 계란을 까주고나서 다율이의 계란을 까주려고 보니, 다율이가 자기가 직접 해보겠다고 한다. 다율이는 독립심이 매우 강한 아이이다. 모든지 직접 해보려고 한다. 그런 아이의 고집을 못이긴채 아이에게 직접 해보라고 시켰다. 아이는 꿈질 꿈질 거리더니 계란을 깠다. 아이들은 반 정도만 먹고 거의 먹지 않았다. 먹지 않은 우유와 계란은 모두 내 몫이었다. 다율이가 먹지 않은 이유는 찍어 먹을 소금이 없다 것이고, 하율이는 가파도에 가면 짜장면을 먹자는 아빠의 지나가는 이야기를 기억하는 듯 했다.


높은 파도에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웅실 거리는 파도를 보자니 '웅실 거리다'라는 우리말의 표현의 위대함이 느껴졌다. 파도는 말 그대로 '웅실'거렸다. 집채만한 파도가 내 머리 위로 올라갔다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은 처음 가보는 바다에 신나했다.

선착장을 내리자마자 다율이가 화장실이 급하다고 한다. 바로 앞에 카페로 보이는 곳으로 뛰어갔다. 다율이가 볼 일을 보자,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본 듯 아이스크림을 연신 외친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정확하게 포착됐나보다. 나는 어리버리 아이스크림을 찾느라 이 곳 저 곳을 뛰어 다녔다. 다율이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위치를 알려준다.
"아빠 여기야~"

아이스크림 포스터가 걸려있다. 가파도는 과연 뉴질랜드보다 더 여유있는 곳이다. 내가 가본 제주의 섬은 아직 우도와 가파도 뿐이다. 이런 제주의 섬은 여유로운 제주에서도 더욱 여유로운 곳이다. 역시 카페에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조금만 더 걷기로 했다. 조금만 더 걸으니, 다른 카페가 나왔다. 참 이쁜 카페였다.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 주인인지 손님인지 모를 것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장님! 아이스크림 있나요?"
그러자 앉아 계신 여성분이 그렇다고 한다. 투명한 냉장고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봤다. 마땅히 아이들이 먹을만한 아이스크림은 없는듯 했다. 그러다 눈에 띄는 아이스크림은 바로 '쌍쌍바'.
항상 감이 없는 아빠 탓에, 아이들의 음식은 항상 남는다. 분명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준다면 내가 다 먹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것이다. 쌍쌍바의 양쪽을 잡고 곱게 찢는다. 뜯어서는 안된다. 찢어야한다. 어린 시절에는 항상 양쪽의 크기가 잘못 뜯어지던 쌍쌍바가 무슨 상품 개발을 했는지, 아니면 나의 절박함이 그랬는지 쌍쌍바는 곱게 정확하게 두조각으로 나눠졌다.하나씩 주었다.

그렇게 뉴질랜드에서 처음 경험해 보던 비현실적인 날씨가 펼쳐지며, 아이들은 아이스크림과 날씨라는 두가지 엔돌핀 촉진제를 받고 기운이 넘쳤다. 하율이와 다율이는 맛있다는 표현을 열심히 했다. 그렇게 5분 정도 걸었을까? 갑작스럽게 닥친 재앙처럼, 영문 모를 원인들이 '힘듦'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다율이는 걷기 힘들다고 칭얼거리며 안아달라고 한다. 하율이는 아이스크림이 녹아흘렸다고 칭얼거린다. 좋은 날씨 탓에 아이스크림이 곧바로 녹아버린 것이다.

'어디로가지?' 이곳 저곳을 들여다봤지만 사장님들은 여유있는 분위기처럼 문이 열린채 자리에 안계셨다. 물티슈만 빌리고 싶은데...


골목으로 급하게 뛰어들어갔다. 아이들은 짧은 시간에 울며불며 난리가 났다. 젊은 사장님 둘이 운영하는 카페로 들어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대충 하나 시키고 아이들을 부른다.
"사장님! 여기 물티슈 있나요?"
끈적 거리는 손가락을 모두 펴고 대충 무거운 가방을 안쪽 테이블에 던저 놓는다. 아이들을 부른다. 사장님은 이미 커피를 내리셨다. 아이들을 급히 부르고 미숫가루를 샀다. 건빵을 샀다. 그리고 최후의 수단인 콩순이를 틀어놓는다. 겨우 진정된다. 아이들이 진정되고 나도 진정이 되었다. 긴급하던 응급상황을 간단한 조치로 정리했다. 그제서야 가파도의 경치가 눈에 보인다. 파랗고 노랗고 빨갛다. 이쁘다.

제주는 본섬 외에도 주변으로 자그마한 선들이 많다. 무려 제주의 섬만 62개가 있다고 한다. 이중 8개는 무인도이고 54개가 무인도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섬 8개는 마라도, 우도, 비양도, 상추자도, 하추자도, 횡간도, 추포도, 가파도가 있는데 차귀도는 1970년 말까지 사람이 살았지만 지금은 무인도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가파도는 제주의 섬 중 규모가 그래도 큰 편에 속하는 듯했다.

이는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5.5km 정도 떨어졌는데 하루에 3회 운항하는 여객선으로 대략 15분 정도 걸렸다. 총 129가구 246명의 주인이 살고 있는 섬인데, 걷다보면 대부분이 관광객이지만 가끔 주민들도 볼 수 있다.

이 섬은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섬이기도 했다. 사실 혼자 갔다면 이래저래 천천히 둘러보고 싶었지만 다 방문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아는 부분만 이야기하자면, 하멜표류기를 읽다보면 캘파트(Quelpart)라는 표기를 볼 수가 있다. 이는 제주를 가르키는 말인데, 그 시작이 가파도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도 있단다.

가파도는 영조 26년인 1750년 제주목사가 나라에 진상하기 위해 소 50마리를 방목하면서 소를 키우려고 주민의 출입을 허가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무인도였던 가파도가 사람이 본격적으로 살게 됐다고 한다. 딱 보면, 정말 지상 낙원이다. 우도도 마찮가지이지만, 제주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주의 섬을 방문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은 왠지 안타깝다. 이곳은 넓게 펼쳐진 펴지와 낮은 건축물들 때문에 하늘이 높고 어디서도 바다가 보인다.


아이들이 바다 바퀴벌레를 구경하고 있다. 내가 바퀴벌레라고 소리치자 아이들이 "바퀴벌레 안녕" 하며 인사한다. 나는 무섭다고 도망갈 줄 알았는데 벌레를 무서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 아니라 학습인 듯하다. 아이들은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1840년에는 영국의 사마랑호가 가파도에 무단 침입하여 소를 강탈했다고 한다. 사마랑호라는 영국 군함은 제주와 전라도 해안을 측량하기 위해 1845년 다시 한반도를 방문한다. 사마랑호는 동인도 회사에서 1822년에 만든 군함이다. 사마랑호는 1차 아편 전쟁때까지 전 세계 여러곳에서 군복무를 했던 에드워드 벨처(Edward Belcher)에 의해 1843년 부터 1846년까지 중국 남부 해안을 조사하는데 사용 되었다고 한다.


1843년 7월 17일, 사마랑호는 말레이시아의 쿠칭이라는 도시에 있는 사라왁 강에서 암석에 걸려 배가 뒤집히기도 했다. 당시 승무원은 살아 남았고 이 항해를 위해 배에 있던 외과의사 조수였떤 영국동물학자 Arthur Adams가 항해 중 동물학을 편집했다. 1883년 회사의 파산으로 인해 매각되기 전까지 이 배는 스페인의 Gibraltar라는 곳에서 경비함으로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뭐 아무튼 쓸데 없는 이야기이지만 세계가 모두 연결되는 근대의 역사는 흥미롭다. 가파도는 여름에는 수영을 할 수 있는 듯 하다. 수영시설과 샤워시설 등이 있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운영 전인듯 하다.

가파도는 이곳 저곳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하늘이 넓은게 뉴질랜드를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지만, 아기자기한 돌담이 제주스럽다.

우리가 아이들의 손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닦기 위해 방문한 카페인데, 엄청 젊은 청년 사장님 둘이서 가게를 운영하는 듯했다. 급하게 들어가느라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하여 미숫가루를 시켜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건빵까지!

아이들이 여기서부터 힘들다고 칭얼거려서 아주난감했다. 나는 여기서 아이들과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사실 엄청 멀리 온 것 같지만 내린 선착장에서 몇 걸음 벗어나지 못한 곳이다. 아이들은 이제 가자는 아빠의 말에 카페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다. 몇 걸음 걷다가, 갑자가 아이 둘이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난리가 났다.

다시 카페로 뛰어 들어갔다.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을 이용했다. 더 이상 이동이 불가능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파도를 다 돌아보지는 못할 듯 했다. 아이들의 체력이 끝나가는 듯 해서, 근처에서 꽃구경이나 좀 하고 밥이나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율이는 미숫가루 몇 모금을 먹더니, 맛없다고 한다. 쓰는 말만 겨우 쓰는 녀석들이 맛이 없다는 말은 또 어디서 배웠는지...


"왜 맛이 없어?"


나는 하율이가 들고 있는 미숫가루를 먹어보았다. 젓지 않은 미숫가루의 걸쭉함이 빨대에 빨려 올라왔다.

"맛이 없는 게 아니라, 저어먹어야 되는 거야~"

아이에게 알려주었지만, 아이들은 또 먹지 않았다. 아침부터 계란에 딸기우유에 바나나 우유를 먹었는데 아이들이 먹지 않는 미숫가루를 또 급하게 먹었다. 아메리카노 한 잔과 아이가 입에 넣어주는 건빵 몇 개를 먹었더니 배가 부르다.

좌와 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배를 타고 온 곳은 가파도다. 흩뿌리는 비를 뚫고 한 시간이나 선착장으로 이동하면서 이번 여행은 망했다고 확신했다. 와이퍼가 심하게 앞 유리를 닦을 때마다 마음은 싱숭생숭했다. 아침에 우산을 들고 온 것은 다행이었다. 과연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을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지만 대정을 도착할 때쯤 돼서는 습하긴 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배를 탈 때만 하더라도 날씨는 좋지 못했다. 흐릿하다가 빗방울이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선착장에서도 불안 불안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난 아빠를 따라 하율이가 일어났다. 하율이는 아빠와 눈을 마주치더니 한참을 쳐다본다. 그리고 갑자기 다율이를 급하게 찾는다. 새벽의 소동 때문에 하율이와 다율이는 아침 7시에 일어났다. 덕분에 아이들이 출발 전부터 칭얼거렸다. 우선 다율이가 운동화가 아닌 구두를 신고 가겠다고 떼를 썼다. 안된다고 약속을 하고 차를 올라타니 우산을 갖고 가겠다고 떼를 쓴다. 차를 타고 얼마 후 다시 내리고 우산을 챙겼다.


한 시간을 운전하여 겨우 선착장으로 내렸더니 다율이가 우산을 들고 가겠다고 난리다. 바람이 세게 불어서 아이가 우산을 드는 것도 위험했지만, 얼핏 비가 오지 않을 듯 보여 짐처럼 보였다. 그밖에 아이들은 애착 이불을 꺼내 달라 넣어달라. 가방을 들어달라 넣어달라를 반복하며 칭얼거렸다. 들어갈 때는 이렇게 승선 신고서를 써야 했다. 간단한 노트북과 커다란 DSLR 카메라, 그리고 아이들 가방과 내 가방을 어깨 이곳저곳에 들쳐 매고 마지막으로 아이들의 애착 이불을 어깨에 들쳐 맸다. 군 시절 유격을 마치고 돌아오는 천리행군이 따로 없구나. 당시 완전군장을 하고 걷다 보면 내가 밟는 바닥에 공룡 발자국처럼 흔적이 남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토록 무거운 짐을 들고 그리고 양손에 아이를 잡고 여행을 갈 수 있을까 싶었다.

대략 완전 군장 한 군인의 모습을 하고 승선 신고서를 작성하니 매표소가 보였다. 줄은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요즘 시기가 시기다 보니 사람들의 외출이 거의 없는 듯했다. 어렵지 않게 매표를 마쳤다. 매표소에 있는 밖의 바다 그림이 아이들은 참 재미있었나 보다 이 글을을 쓰기 위해 사진을 보고 있던 아빠 옆에 붙어서 저 바다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른 아침부터 부실하게 먹고 온 아이를 위해 바나나 우유와 딸기우유 그리고 삶은 계란을 샀다. 하율이의 계란을 까주고 나서 다율이의 계란을 까주려고 보니, 다율이가 자기가 직접 해보겠다고 한다. 다율이는 독립심이 매우 강한 아이이다. 모든지 직접 해보려고 한다. 그런 아이의 고집을 못 이긴 채 아이에게 직접 해보라고 시켰다. 아이는 꿈질 꿈질거리더니 계란을 깠다. 아이들은 반 정도만 먹고 거의 먹지 않았다. 먹지 않은 우유와 계란은 모두 내 몫이었다. 다율이가 먹지 않은 이유는 찍어 먹을 소금이 없다 것이고, 하율이는 가파도에 가면 짜장면을 먹자는 아빠의 지나가는 이야기를 기억하는 듯했다. 높은 파도에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웅실 거리는 파도를 보자니 '웅실 거리다'라는 우리말의 표현의 위대함이 느껴졌다. 파도는 말 그대로 '웅실'거렸다. 집채만 한 파도가 내 머리 위로 올라갔다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은 처음 가보는 바다에 신나 했다.


선착장을 내리자마자 다율이가 화장실이 급하다고 한다. 바로 앞에 카페로 보이는 곳으로 뛰어갔다. 다율이가 볼 일을 보자,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본 듯 아이스크림을 연신 외친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정확하게 포착됐나 보다. 나는 어리바리 아이스크림을 찾느라 이 곳 저곳을 뛰어다녔다. 다율이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위치를 알려준다.

"아빠 여기야~"

아이스크림 포스터가 걸려있다. 가파도는 과연 뉴질랜드보다 더 여유 있는 곳이다. 내가 가본 제주의 섬은 아직 우도와 가파도뿐이다. 이런 제주의 섬은 여유로운 제주에서도 더욱 여유로운 곳이다. 역시 카페에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조금만 더 걷기로 했다. 조금만 더 걸으니, 다른 카페가 나왔다. 참 이쁜 카페였다.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 주인인지 손님인지 모를 것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장님! 아이스크림 있나요?"


그러자 앉아 계신 여성분이 그렇다고 한다. 투명한 냉장고 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봤다. 마땅히 아이들이 먹을만한 아이스크림은 없는 듯했다. 그러다 눈에 띄는 아이스크림은 바로 '쌍쌍바'.

항상 감이 없는 아빠 탓에, 아이들의 음식은 항상 남는다. 분명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준다면 내가 다 먹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것이다. 쌍쌍바의 양쪽을 잡고 곱게 찢는다. 뜯어서는 안 된다. 찢어야 한다. 어린 시절에는 항상 양쪽의 크기가 잘못 뜯어지던 쌍쌍바가 무슨 상품 개발을 했는지, 아니면 나의 절박함이 그랬는지 쌍쌍바는 곱게 정확하게 두 조각으로 나눠졌다. 하나씩 주었다. 그렇게 뉴질랜드에서 처음 경험해 보던 비현실적인 날씨가 펼쳐지며, 아이들은 아이스크림과 날씨라는 두 가지 엔도르핀 촉진제를 받고 기운이 넘쳤다. 하율이와 다율이는 맛있다는 표현을 열심히 했다. 그렇게 5분 정도 걸었을까? 갑작스럽게 닥친 재앙처럼, 영문 모를 원인들이 '힘듦'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다율이는 걷기 힘들다고 칭얼거리며 안아달라고 한다. 하율이는 아이스크림이 녹아 흘렸다고 칭얼거린다. 좋은 날씨 탓에 아이스크림이 곧바로 녹아버린 것이다.


'어디로 가지?' 이곳저곳을 들여다봤지만 사장님들은 여유 있는 분위기처럼 문이 열린 채 자리에 안 계셨다. 물티슈만 빌리고 싶은데... 골목으로 급하게 뛰어들어갔다. 아이들은 짧은 시간에 울며불며 난리가 났다. 젊은 사장님 둘이 운영하는 카페로 들어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대충 하나 시키고 아이들을 부른다.

"사장님! 여기 물티슈 있나요?"

끈적 거리는 손가락을 모두 펴고 대충 무거운 가방을 안쪽 테이블에 던져 놓는다. 아이들을 부른다. 사장님은 이미 커피를 내리셨다. 아이들을 급히 부르고 미숫가루를 샀다. 건빵을 샀다. 그리고 최후의 수단인 콩순이를 틀어놓는다. 겨우 진정된다. 아이들이 진정되고 나도 진정이 되었다. 긴급하던 응급상황을 간단한 조치로 정리했다. 그제야 가파도의 경치가 눈에 보인다. 파랗고 노랗고 빨갛다. 이쁘다.


제주는 본섬 외에도 주변으로 자그마한 선들이 많다. 무려 제주의 섬만 62개가 있다고 한다. 이중 8개는 무인도이고 54개가 무인도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섬 8개는 마라도, 우도, 비양도, 상추자도, 하추자도, 횡간도, 추포도, 가파도가 있는데 차귀도는 1970년 말가지 사람이 살았지만 지금은 무인도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가파도는 제주의 섬 중 규모가 그래도 큰 편에 속하는 듯했다.


이는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5.5km 정도 떨어졌는데 하루에 3회 운항하는 여객선으로 대략 15분 정도 걸렸다. 총 129가구 246명의 주인이 살고 있는 섬인데, 걷다 보면 대부분이 관광객이지만 가끔 주민들도 볼 수 있다. 이 섬은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섬이기도 했다. 사실 혼자 갔다면 이래저래 천천히 둘러보고 싶었지만 다 방문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아는 부분만 이야기하자면, 하멜표류기를 읽다 보면 캘파트(Quelpart)라는 표기를 볼 수가 있다. 이는 제주를 가리키는 말인데, 그 시작이 가파도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도 있단다.


가파도는 영조 26년인 1750년 제주목사가 나라에 진상하기 위해 소 50마리를 방목하면서 소를 키우려고 주민의 출입을 허가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무인도였던 가파도가 사람이 본격적으로 살게 됐다고 한다. 딱 보면, 정말 지상 낙원이다. 우도도 마찬가지이지만, 제주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주의 섬을 방문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은 왠지 안타깝다. 이곳은 넓게 펼쳐진 평지와 낮은 건축물들 때문에 하늘이 높고 어디서도 바다가 보인다. 아이들이 바다 바퀴벌레를 구경하고 있다. 내가 바퀴벌레라고 소리치자 아이들이 "바퀴벌레 안녕" 하며 인사한다. 나는 무섭다고 도망갈 줄 알았는데 벌레를 무서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 아니라 학습인 듯하다. 아이들은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1840년에는 영국의 사마랑호가 가파도에 무단 침입하여 소를 강탈했다고 한다. 사마랑호라는 영국 군함은 제주와 전라도 해안을 측량하기 위해 1845년 다시 한반도를 방문한다. 사마랑호는 동인도 회사에서 1822년에 만든 군함이다. 사마랑호는 1차 아편 전쟁 때까지 전 세계 여러 곳에서 군 복무를 했던 에드워드 벨처(Edward Belcher)에 의해 1843년부터 1846년까지 중국 남부 해안을 조사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1843년 7월 17일, 사마랑호는 말레이시아의 쿠칭이라는 도시에 있는 사라왁 강에서 암석에 걸려 배가 뒤집히기도 했다. 당시 승무원은 살아남았고 이 항해를 위해 배에 있던 외과의사 조수였던 영국 동물학자 Arthur Adams가 항해 중 동물학을 편집했다. 1883년 회사의 파산으로 인해 매각되기 전까지 이 배는 스페인의 Gibraltar라는 곳에서 경비함으로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뭐 아무튼 쓸데없는 이야기이지만 세계가 모두 연결되는 근대의 역사는 흥미롭다. 가파도는 여름에는 수영을 할 수 있는 듯하다. 수영시설과 샤워시설 등이 있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운영 전인 듯하다. 가파도는 이곳저곳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 하늘이 넓은 게 뉴질랜드를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지만, 아기자기한 돌담이 제주스럽다. 우리가 아이들의 손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닦기 위해 방문한 카페인데, 엄청 젊은 청년 사장님 둘이서 가게를 운영하는 듯했다. 급하게 들어가느라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하여 미숫가루를 시켜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건빵까지!


아이들이 여기서부터 힘들다고 칭얼거려서 아주 난감했다. 나는 여기서 아이들과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사실 엄청 멀리 온 것 같지만 내린 선착장에서 몇 걸음 벗어나지 못한 곳이다. 아이들은 이제 가자는 아빠의 말에 카페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다. 몇 걸음 걷다가, 갑자가 아이 둘이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난리가 났다.


다시 카페로 뛰어 들어갔다.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을 이용했다. 더 이상 이동이 불가능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파도를 다 돌아보지는 못할 듯했다. 아이들의 체력이 끝나가는 듯해서, 근처에서 꽃구경이나 좀 하고 밥이나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미터를 해안 반대 반향으로 올라가니 우물이 나왔다. 가파도는 다른 섬들에 비해 물이 풍부한 섬이라고 했다.


길을 다닐 때 몇 개 보이지 않는 민들레 씨앗이 보였다. 나도 어렸을 때 민들레 씨앗을 보면 꼭 꺾어다가 '후~후' 불었던 기억이 있는데 아이들은 민들레 씨앗을 보면 서로 꺾어다가 불겠다고 난리다.


길을 걷다가 낯익은 꽃을 발견했다. 어린 시절 대충 비슷하게 생긴 꽃 뽑아다가 끝을 '쪽~쪽~' 빨아먹으면 꿀처럼 달달한 맛이 났던 기억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재밌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꽃을 따다가 몇 개를 혀에 대어보았다.

"어? 왜 아무 맛도 안나지? 이게 아닌가?"


다른 몇 개를 더 뽑아다 혀에 댔다.


"어? 이상하네, 이게 아닌가?"

그러자 하율이가 갑자기 소리친다.


"아빠! 꽃을 먹으면 어떡해!"


하면서 두 팔로 꽃을 지켜 선다.


"아니야~아빠가 꽃 먹은 게 아니라, 꿀이 있어~"


이래도 하율이는 아빠를 꽃을 먹는 아빠를 야만인 보듯 하며, 인생을 쓰고 호통친다.

"꽃을 먹으면 어떡해!"

"어? 미안해. 아빠가 실수로 먹었네."


아이들이 배고픈 시간이 됐다. 깊지 않은 곳에서 식당을 찾았다. 원래는 아이들에게 자장면을 먹을 거라고 잔뜩 기대감을 심어주었는데, 자장면 집까지 가려면 아이 둘을 엎고 가야 했다. 체력이 끝난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은 전복죽을 파는 곳이었다. 식당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야옹이를 봤다며 소리친다.


이곳은 고양이가 꽤나 있었다. 식당에서 남긴 음식 같은 거를 주면 먹는 듯했다. 식당에 들어서자 고소한 냄새가 났다. 전복죽 한 그릇을 시켰다. 배가 너무 부른 탓에 나는 먹지 않고 아이들이나 주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물부터 벌컥 벌컥 마신다. 자장면을 먹으러 온 줄 아는 듯했다.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 아이들 앞으로 전복죽이 왔다. 앞 접시 두 개에 아이들 몫을 떠놓고 입으로 불어서 식혀주었다. 아이들은 먹지 않았다. 절대로 아이를 키울 때 쫒아다니면서 입에 음식물 넣어주는 행위는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다. 나는 전복죽 겨우 아이들 입 속으로 밀어 넣으며, 한 숟갈 먹으면 콩순이 10초를 보여주는 식의 독특한 방식으로 점심을 먹였다. 정말 좋지 않은 교육법이란 걸 알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파도는 마라도에게 최남단 섬이라는 타이틀을 빼앗겨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우도나 마라도만큼이나 매력적인 섬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돌을 쌓으면서 소원을 비는 거라고 돌탑을 설명해 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율이가 커다란 돌을 발견하고 쌓으려고 했다. 배도 부르고 대충의 목적을 달성하니 점점 여유가 생겼다. 이때부터 아이들과 여유 있게 웃으며 보낼 수 있었던 듯하다. 아이들이 갑자기 미친 듯 전력질주를 시작한다. 말릴 틈도 없이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엄청나게 빠르게 바닷가로 달려갔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은 곳이라 안심하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놔두었다. 여행을 마무리 지을 때쯤 되니, 다율이는 에너지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하율이는 계속해서 졸리다고 한다. 아이들이 컨디션이 좋을 때 왔으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착했던 선착장에서 아이들과 바다를 보며 놀고 있었다. 나중에는 땅바닥에 엎드리기도 하고 눕기도 했는데 그냥 두었다. 저 멀리서 배가 온다. 마치 표류되어 있던 로빈슨 크로스가 구조선을 만난 것처럼 기쁘다.


돌아오는 배에서 하율이는 타자마자 잠에 들었다. 다율이는 조용히 바다를 한참을 바라보다 잠에 들었다. 덕분에 왼쪽 어깨에 잠든 하율이, 오른쪽 어깨에는 잠든 다율이를 짊어지고 주차장에 있는 차까지 전력질주를 했다.

아이들 생에 첫 '통통배'를 함께 한 날이었다. 부모라는 것은 한 인간의 처음을 지켜볼 기회가 주어지는 거의 유일한 사람인듯하다. 짧은 여행이지만 나중에 성인이 된 아이들의 기억 속에 아빠와 '통통배' 탄 좋은 추억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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