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생각] 그릇이 중요한 이유_운칠기삼

by 오인환

확실히 사람에겐 기운이라는 것이 있어서 어떤 때에는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고 어떤 때에는 바라는 것 없이 큰 걸 이루기도 한다. 뭐가 될 때는 뭘해도 되고, 뭐가 안될 때는 뭘 해도 안 될 때가 있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은 운(運)이 일곱이오. 재주(技)가 셋이라는 뜻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운이 일곱이오. 기세(氣)가 셋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렇다고 재주가 무쏠모냐. 그렇진 않다. 재주나 기세나 그것이 모형을 바꿔 오더라도. 비록 운보다 반절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운은 그릇(器)에 담겨야 한다.

결국 재주(技)나 기운(氣)이나 그릇(器)이나 모두 한자로 같은 '기'를 사용하지만 운을 담는 그릇은 재주와 기운을 모두 담기도 한다. 물을 담더라도 어떤 그릇은 둥근 모형으로 담고 어떤 그릇은 네모로 담는다. 어떤 그릇은 종지가 되고 어떤 그릇은 보가 된다. 그릇의 모양과 크기는 '재주'로 짓고 그 모양과 크기는 '기세'로 사용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릇'이라 생각된다.

사람을 보면 사람마다 분위기가 다른데 그들이 풍기는 주파수라던지, 기운이라던지 뭐로 표현할지 모를 것이 느껴진다. 잘 될사람과 그렇지 않을 사람이 구분된 것은 아니지만 잘 될 기운과 그렇지 않을 기운은 분명히 있어, 형용하지 못할 느낌으로 다가온다. 간장을 담기에 '보'는 적절치 못하고 농업용수를 담기에 '종지'가 적절치 못하듯 모든 것은 시기와 때를 다르게 하고 아주 적절한 순간 규모나 모양과 상관없이 제가치를 인정 받는다. 누군가는 말랑말랑한 종지를 가지고 제멋대로 바꾸기도 하고 누군가는 가만히 뚝심있게 한결 같은 모양을 유지한다. 가위바위보에서 상대를 이기기 위해 뚝심있게 주먹만 내거나 셋을 번갈아내거나 그것은 전략의 차이지 승률을 결정짓지 않는다. 한때는 '의술'로 폄하되어 과거 시험에 '잡과'로 분류되던 '의학'은 지금 가장 선망하는 기술과 직업이 됐고, 과거 '딴따라'라는 이름으로 폄하되던 '연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 됐다.

소득없이 인터넷 방송을 켜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이들은 현재 청소년들이 가장 희망하는 직업 1위인 유튜버가 됐다. 그것이 계획대로, 계산처럼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운'이라는 녀석은 쉬엄쉬엄 갈 착(辶)이라는 한자에 군사 군(軍)을 써서 어슬렁 어슬렁 수레를 타고 돌아다닌다. 서두르지도 않고 느긋하게 왔다가 느긋하게 간다. 고기를 빨리 잡고자 낚시대를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면 물고기는 금새 달아나 버린다. 세월을 낚는 강태공처럼 가만히 세월을 낚다보면 어느새 운은 준비라는 미끼를 물고 낚여 올라온다. 개인적으로 대기만성을 좋아한다. 쌓이는 줄 모르게 쌓여 있던 어떤 것이 임계점을 뚫고 올라서면 무한대로 성장하는 그런 류의 사람 말이다. 요즘은 플라스틱이나 종이로도 쉽게 그릇을 만들지만 그것은 쉽게 사용되고 빠르게 사용될 지언정 빠르게 버려버린다. 오래 굽고 숙성한 제대로 된 자기는 수 백도에서 1000도의 불구덩이에 몇 번을 들어갔다가 심지어 다지고 깎이고 만져지지만 그것이 비로소 완성의 단계를 지나서면 누구도 버리지 못하고 모시는 '작품'이 된다. 실패라는 쓴 내용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는가. 끈기라는 독한 내용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는가. 뜨겁고 차고 맵고 짜고 심지어 그것이 독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품어낼 수 있는 그릇이 되는가. 결국은 그런 것들을 다 품고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 입증되면 비로소 그것의 가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000005092.jpeg?type=w580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일상] 대충 견적보다가 각나오면 미쳐라_왜 쓰레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