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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인프제 아니신 것 같은데..._인트제 아니세요

by 오인환

꽤 긴 시간 우울의 늪에 빠졌다. 늪은 생각하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었다. 시간은 약이라는데, 그 시간이라는 항생제를 투여 받고, 안개 같은 우울은 점차 걷혔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한겹 두겹 뚜렷해 졌다. 뜨겁게 타오르던 감성이 식고 차가운 이성이 남았다. 원래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변화무쌍한 삶을 살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다. 본질은 언제나 지금이다. '감성'이 '우울'을 낳고 '우울'이 '늪'이 되어 본질을 가누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자기감상이 자아를 잃게 했다.

고통의 임계치를 넘으면 누구나 거부의 모르쇠가 된다. 불에 데인 손이 다시 불을 찾지 않듯. 데인 상처는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흔적이 되어 무엇을 피하게 됐는지 알린다. 수 많은 자아와 페르소나를 번가르며 주변 주파수에 나를 맞추는 공짜, '서비스업 종사자' 같은 삶에 신물이 나고, 혼자 끙끙 앓던 자신이 한없이 한심하게 느껴질 쯤, 마음 한 중간에 물한방울이 던져지고 그 출렁임이 못 전체로 퍼진다. 하나 둘 채워가던 고통의 임계점이 어느 순간 넘어서 버렸다. 한방울의 물이 떨어지고 출렁임이 못 전체로 퍼지자, 못내하던 무언가가 물꼬를 틀고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정신이 차려지니, 출렁이던 감정이 싸그리 식어버리고 차가운 이성만 남아 고요해졌다. 사람을 구별하는 무언가의 테두리에 들어가는 것이 언짢지만 유형의 다른 사람을 보며, 자아가 보인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고 한 컷의 추억도 공유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저렇게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됐을까.

이렇게 보면 이렇고, 저렇게 보면 저런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하나의 언어로 표현 할 수 있으며 양극의 질문 유형으로 알아 낼 수 있을까. 사람을 일반화 할 수 없다. 다시 돌이키면, 피할 수 없게도 모두는 일반화하며 살아간다.

지나가는 흑인을 흑인이라고 부르고, 백인을 백인이라고 부르며, 남자를 남자라 단정하고 여자를 여자라고 단정한다. 그것도 그렇게 양극으로 구별하면서 '모든 인간을 16개의 유형으로 구분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느냐'라는 질문이 모순적이라는 생각에 빠졌다. '남녀'와 '노소'로 구분하고, 피부의 명암으로 인종을 결정하며, 학력과 소득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많은 일반화 오류를 범하면서 더 분류된 16개의 유형으로 나누는게 미개하다고 한다면, 스스로 가식적인 위선자가 아니라는 또다른 페르소나가 아니던가.

MBTI 검사를 10번하면 10번이 INFJ가 나온다. 누군가 물었다.

'작가 님의 글을 보면 INTJ 같습니다.'

순수하게 뱉는 말의 빈도를 다시 곱씹어보고 문항에 답한다. INTJ가 나온다. 다시 떠올려보면 묻는 질문에 '스스로'를 답하는지, '정답'을 찾는지 헷갈린다. 그것은 '정답찾기'가 아님에도 숨겨진 정답을 찾으려는 것처럼 접근한 것은 아닌가. 가만 보면 아주 오랜 시간을 INFJ와 INTJ 사이를 번가르며 살아간다. 이 둘을 비교해보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가만보면 인류애를 가졌다가, '뭣하러 그러나 일단 나부터 잘하는 것이 먼저지'를 왔다 갔다 거린다.

혈액형이나 별자리로 사람을 구별하고 발뻗고 자는 자리로 풍수를 확인하며 사람의 얼굴을 보고 과거와 미래를 맞춰 보는 것과 어딘가 다르다.

그것을 그것이라 대답한 이에게 그렇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논리적으로 그렇다. MBTI가 말하는 나가 때로 낯설고 때로 소름끼칠 정도로 낯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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