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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끔찍했던 1시간_아이 실종 50분

by 오인환

아이와 해변을 찾았다. 도시락을 싸고 슬리퍼에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피카츄 도시락'에 하율이가 좋아하는 분홍소시지와 다율이가 좋아하는 떡갈비를 넣었다. 아이 스스로 밥을 뜨고 반찬을 담았다. 2칸으로 이러우진 도시락통의 한 칸에는 키위, 바나나, 귤을 먹기 좋게 잘랐다. 요쿠르트 2개를 각각 챙기고 동화책 두 권과 수필 한 권을 실내화 가방에 두었다. 날이 좋았다. 바람은 선선하고 햇살은 따사로웠다. 아이폰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그냥 책상 위에 두고 나가기로 했다. 날이 좋았다. 아이는 나가기 전에 부스럭거렸다. 나중에 보니, '팝잇, 장난감 자동차, 모래를 담을 상자 등'을 챙겼다. 신나했다. 주차를 해변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는 챙긴 장난감을 들고 쏜살 같이 바다로 달려 갔다. 말릴 틈새도 없이 바다에 발을 담구고 한참을 발가락을 꼼질 거렸다. 부산하게 뒤쫓고 아이 옆에서 발가락을 같이 꼼질 거렸다. 아이는 이어 바닥에 쪼그려 물길을 팠다. 스마트워치로 오디오북을 재생했다. 추천으로 뜬 '자기계발서'가 나왔다. 하나를 재생하고 아이를 무심히 바라봤다. 한참을 지켜섰다. 해변가에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았다. 가만 서 있으니 그들의 진로를 방해하는 꼴이었다. 그들을 따라 움직이고자 했다. 흐름을 따라 걸었다. 평소 '파도소리'를 검색하여 듣던 배경 음악이 서라운드로 펼쳐졌다. '노이즈 캔슬링'을 취소했다. 자기계발에 파도소리가 함께 들렸다. 맨발로 한참을 걸었다. 들어왔다 나가는 파도를 밟았다. 모래가 사르르 빠져나가며 팔을 간질거렸다. 가만보니 오고가는 사람들은, 오고가는 바 없이 오고 갔다. 이들 대부분은 해안끝과 끝을 건들이고 돌아왔다. 몇 바퀴를 그들과 함께 했다. 한참을 '오디오북'에 심취해 있는데, 다율이가 발걸음을 맞췄다. 바지에 물이 튀었다고 한다. 바짓단을 올리고 팔도 걷어 주었다. 이미 젖었다고 속상하다고 했다. 아이의 바지를 보니 꽤 젖어 있었다. 괜찮다고 일러 주었다. 그래도 속상하단다. 그래서 바닷쪽으로 걸어가 물을 내 바지 쪽에 튕겼다.

"아빠도 젖었지? 금방 말라. 괜찮아."

아이는 몇 번을 자기에게 한 번, 아빠에게 한 번 물을 튕기고, '진짜네?' 그러더니 '하율이'에게 뛰어갔다.

한참을 놀다가, '도시락'을 꺼냈다. 편식하던 아이가 그렇게 잘 먹을 수가 없다. 다율이는 어쩐 일인지 두 공기나 먹었다. 먹다보니 내몫으로 싸둔 도시락을 먹으면 모자랄듯 했다. 내몫을 아이에게 덜어주고 점심을 마무리했다. 다시 해변으로 돌아갔다. 내가 듣던 오디오북은 '유근용' 작가의 '나의 하루는 세 번 시작된다'라는 책이다. 얼마를 공감하고 얼마를 후회하고, 얼마를 자극받았다. 한참을 오디오북에 심취하다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다율이와 하율이를 불렀다. 이제 돌아가기로 했다. 가기 싫다는 아이를 꽤 설득하고 겨우 집으로 갈 셈이다. 아이가 떼를 쓸 때, 육아 철학이 있다. '여지'가 없어야 한다. 아이쪽으로는 쳐다도 보지 않고 목적지로 걸었다. 아이는 '이제 정말 갈 때가 됐구나' 느꼈는지 몇 마디와 함께 웃으며 따라왔다. 한참을 가다보니 '하율이'가 없다. 이런 기억은 몇 번 있다. 그럴 때마다 어렵지 않게 찾았다. 찾고 나면 혼을 내고 잘 따라오라고 일러주고 끝냈다. 하율이는 워낙 독립적인 성격이다. 모든 일을 독립적으로 하고, 자신이 혼자하는 일을 또 좋아한다. 그 짧은 순간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놈 또 이럴 줄 알았다.' 아마 근처 어디서 못들은 척 딴짓을 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혼 내킬 요량으로 주변을 돌았다. 보이지 않았다. 맨발의 발가락 사이에 고운 모래와 조개껍데기가 들어왔다. 발가락이 날카롭게 베였다. 발은 빨라졌고 행동이 과해졌다. 그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위 아래로 급하게 돌리는 모습이 제3자의 시선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비슷한 또래 아이에게 달려갔다. 아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오늘 무슨 옷을 입었는지 가물가물했다. 주변에는 청소를 돕는 미화원분들이 계셨다. 물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얼마를 지나고 나는 뛰고 있었다. 때마침 다율이가 화장실에 가겠다고 한다. 아이를 잃어버리고 화장실을 갈수는 없는 노릇이다. 본심없는 성이 벌컥 쏟아졌다. 아이에게 화를 냈다. 아이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여차저차, 다율이 화장실을 처리했다.

시계를 봤다. 이미 30분이 지나 있었다. 부모 없이 30분이면, 놀이에 심취한 어린이도 심각성을 인지할 시간이었다. 아이는 없었다. 다율이와 뛰어다니며 '하율아'를 불렀다. 10분이 더 흘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차장으로 향했다. 때마침 한 아주머니께서 물으셨다. '혹시 아이 찾으세요?' 그렇다고 했다. 방금 옆에 있는 아이랑 똑같은 아이가 지나갔다는 것이다. 다율이와 똑같은 아이면 '하율이'가 틀림없다. 한참을 달려가다보니, 다율이와 나의 발바닥이 맨발이다. 아스팔트 위에 깨진 아스팔트 조각들을 몇 번 밟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율이는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하는 말이 이렇다.

'나빴어'

울고 있진 않았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을 짧게나마 느꼈다. 나의 망상은 수 십 년을 흘러, 쌍둥이 중 하나를 잃은 성인 '다율이'와의 대화까지 닿았다. 그것은 '생각'이 아니라, '무드'같은 것이었다. 그저 쌀쌀하니 쌀쌀함을 느끼는 것 처럼, 지극히 수동적인 것이었다. 시간을 재고 겪은 일화는 아니다. 다만 50분 정도는 경과했으리라. 그 짧은 순간 별의 별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누군가가 데리고 갔거나, 자동차 사고가 났거나, 물에 빠졌거나, 이성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해도 그 불안이 가슴으로 와서 전속력으로 들이 박았다. 가슴이 쿵쾅대는 것이 촛침처럼 시각을 알렸다. 아이를 보고 놀라면 아이가 더 놀랄까봐,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아이는 몇 번, '나빴어'를 말하다가, 조개껍데기를 찾아가야 한단다. 다시 해변가로 뛰어가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이를 향해 달려갔다. 조개를 찾아보다가 찾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짠물을 씻어내고 아이는 잠옷으로 갈아 입었다. 방금 전, 일화가 벌써 아무 일도 아닌 듯, 더 신나게 떠들고 논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지금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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