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막 깬 직후의 행동은 대부분 의식적 사고 없이 이루어진다. 반복하는 행동 혹은 습관을 자동으로 하게 도와주는 신경구조를 '신조체'라고 하는데 선조체의 활동은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시작된다. 또한 이미 입력된 자동화된 행동을 촉진한다. 이 과정에서 도파민이 보상 체계를 강화하고 쉽게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사람마다 아침 루틴이 존재한다. 시간과 상관없이 눈을 뜨자마자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위가 있다는 말이다. 누군가는 눈을 뜨자마자, 알람시계를 살피며 겨우 눈을 뜨고, 누군가는 명상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고 일어난 자리를 잽싸게 정리하기도 한다. 물을 한 컵 들이켜는 사람도 있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이들도 있다. 이런 일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른 행동이 아니라, 아주 높은 확률로 '반복', '지속'되는 '루틴'일 것이다.
잠에서 막 깨어난 상태는 '최면'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 이를 '최면성 각성 상태' 혹은 '최면 유사 상태'라고 한다. 우리의 뇌는 특정 가정이나 생각에 따라 천천히 그 떨림을 방출한다. 이 떨림의 크기와 빈도에 따라 알파파 부터 델파파로 구분할 수 있다. 의식이 완전히 깨어나지 않고 약간 비몽사몽한 상태, 즉 그 상태는 최면과 유사한 특성을 지닌다.
영화 올드보이는 최면 상태를 통해 각성 상태를 조종한다. 결국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영화적 설정은 현실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난다.
잠에서 깬 직후의 상태는 외부 자극에 더 민감하고 수용성이 높다. 즉 최면 상태와 유사하다. 이때 어떤 암시나 제안을 넣으면 더 쉽게 받아 들여질 여지가 있다. 가장 이완된 상태에서 주입되는 암시가 최면가 연결된다는 것은 그닥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때 반복하는 일이 습관을 형성하거나 사람의 생각과 인생을 새롭게 창조한다는 것에도 동의가 된다.
눈을 뜨지마자 무엇을 하는가.
아이가 성장하며 나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삶의 루틴을 고민한다. 7살 이후에 가장 중요한 삶의 루틴 중 하나는 침실에는 '결코' 전자기기를 갖고 들어가서는 안된다 는 법칙이다. 잠에서 깨어난 뒤에 우리가 하는 '첫 생각', '첫 행동'이 무엇인가. 아마 '시계'를 확인하는 것이다. 시계를 확인하면 곧바로 짧게 쌓인 메일이나 문자를 확인하고 간단한 '알림'을 확인할 것이다. 시계를 확인한다는 '명분'으로 우리가 하는 그 첫 행동이 문제다.
'마케팅 전쟁터'로 시작과 동시에 빨려 들어간다.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플랫폼 기업들'이 한푼 파는 것 없이 세계적인 수익을 얻어내는 세상에서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그것에 빨려 들어간다.
내가 가진 철칙 중 하나는 눈을 뜨자마자, 처음하는 행동이 '그날 하루'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20세기 중반 콘라트 로렌츠 박사는 거위 새끼가 부화한 후에 처음 보는 물체를 어미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을 '각인'이라고 한다. 각인은 매우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 더이상 각인이 일어나지 않는다. 태어나자마자 움직이는 첫 물체를 어미로 인식하는 과정은 보통 '조류'에게 일어나는데, 나는 조류와 인류가 0.01%의 연결성도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눈을 뜨자마자, 연예인 기사를 읽은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요즘과 같은 '알고리즘 지능'이 고도화 된 사회에서 그 정보는 다른 정보를 끌어당긴다. 이 얼마나 직관적인 사고 흐름인가.
원숭이 엉덩이는 빨갛고, 빨간 것은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이처럼 인간의 사고 흐름은 앞에서 주어진 인식 대상에 짧은 연결성을 긋고 끊임없이 이어 나간다. 그 사고의 흐름을 '알고리즘'이 기가 막히게 포착해주니, 처음에는 '연예기사'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난데없는 정치 기사나 전혀 관심없었던 물건 사용 후기를 의식없이 들여다 보게 된다.
만약 눈을 뜨자마자, 성경, 불경, 도덕경, 논어, 맹자, 채근담을 읽는다고 해보자. 우리의 사고는 주어진 인식 대상에서 그 사고의 첫 뿌리를 시작한다. 한참을 사고가 확장하다가도 책은 다시 중심으로 돌아 오도록 한다. 아무리 떠내려가더라도 중심 바닥에 앵커가 단단하게 자리를 잡아주고 있으니,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 올 수 있다. 정처없이 사고의 흐름으로 떠돌아다니는 것보다 조금은 안정적인 방식으로 중심을 잡고 사고를 제어 할 수 있다.
집에는 TV가 없다. 태블릿도 없다. 스마트폰도 없다. 이것들은 업무에서 사용하고 배터리가 모두 소진되면 부엌 넘어에 있는 세탁실의 세탁기 위, 유일한 충전선에 연결된다. 간단한 문자를 확인하기 위해 꽤 귀찮은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하여 '수도승' 같은 삶을 살기 위해 이런 노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굉장히 화가 났던 적이 있었다. 꽤 오래 전 일인데, 당시만 하더라도 하고 있던 사업이 활력이 돌 때 였다. 전화는 쉴틈이 없이 울리고, 문자, 알림이 미친듯이 쏟아졌다. 이 와중에도 가장 나를 괴롭게 한 것은 '스팸문자'와 '스팸전화' 였다.
'보험', '주식','대출'과 같이 무작위로 대상을 정하여 돌리는 그들의 마케팅 공격에 무기력하게 당해야 했다. 그들을 피하기 위해서는 꽤 큰 중요한 전화를 놓칠 여지가 있었다. 당시 업무의 특성상 입력되지 않은 전화번호는 모두 받아야 했기에, 나는 매우 급한 상황에서 그 쓰레기 같은 전화를 모두 받아야 했다. 어디서 노출된지 알 수 없지만 점차 걸려오는 전화의 상당수가 '광고, 주식, 대출, 보험' 등의 성격이 늘었다. 한 번은 너무 화가 나서, 이들 중 일부를 신고하고 '행정 처리 결과'를 받았는지 확인까지 해봤다.
그때 상담사분께서 말씀하시길, '자신도 이 일을 하지만, 이런 전화를 받게 된다고 피할 수 없다'고 하셨던 기억이 있다. 어떤 기분 좋았던 하루, 분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대며 전화를 끊었던 적이 있다.
나의 하루가 그들에게 간섭 당하는 것을 깨닫고 필사적으로 수 년 간, 스마트폰에서 멀어지기를 시도했다.
지금은 꽤 그 균형을 잡았다. '아이폰13미니'는 괜찮은 선택이었다. 특정 시간과 장소에 따라 '방해금지모드'를 설정하면 원하는 전화만 받을 수도 있고 워낙 작은 화면 탓에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습관도 줄어 들었다. 쓰지 않으면 가방에 넣어 두어 전자책을 꺼내어 본다.
물론 밀려 있는 '메일'과 '문자', '알림'을 내가 원하는 시간에 확인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런 모든 유혹은 참 신기하게도 주 5일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이뤄진다. 스팸을 보내는 이들이 주 5일 8시간 근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꽤 귀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은 주체적으로 관리 할 수 있는 루틴을 가졌다. 이런 까닭에 꽤 여유로운 마음이 생겼다.
개인적으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시간이 짧다고 여긴다. 아이는 여덟 살이고, 앞으로 4년 뒤에는 '아빠'보다 '친구'를 좋아 할 것이다. 다시 4년 뒤에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하게 될 것이고 다시 4년 뒤에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전한 독립을 이루어 나갈 것이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4년, 짧게 보면 1000일 밖에 남지 않았다. 이 1000일을 놓치면 아이와의 추억은 영원히 사라질지 모른다.
일상을 모두 끝내고 난 뒤에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은 거의 어렵다. 다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4시간을 보낸다면 그것은 확보된 시간이다. 아이는 자신의 일과를 마치고 스스로 하루를 정리할 마음적인 여유가 필요하다. 고로 아이와 해야 할 일을 아침에 함께하고 충분한 이야기를 하며 하루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각자 시작한다.
아침 시간은 모든 유혹이 잠에들고 부지런한 이들은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자기 수양을 하는 시간이다. 그 시기에 놓쳐도 주어지는 두 번 째 기회가 있는 꽤 너그러운 시간이다. 저녁 또한 역시 매우 중요한 시간이지만, 저녁은 모든 유혹이 필사적으로 자기 성과를 위해 달려드는 시간이며, 그 시기를 놓치면 기회는 다시 주어지지 않는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주체적인 삶이 중요하다. 기상 시간 따위는 중요치 않다. 그 상황에 따라 주체성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현재 나의 상황에서는 '아침'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