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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un 23. 2024

[계발] 바보들을 설득하기에 인생은 짧다_가장 중요한

 프리드리히 니체는 '사실이란 없다. 해석만 있을 뿐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서로 보는 세계가 다른다. 각자 다른 해석을 한다. 누군가는 달을 보고 쓸쓸함을 느끼고 누군가는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달은 아름다운가, 쓸쓸한가. 알 수 없다. 각자 자신만의 세계를 살 뿐이다. 고로 다른 자신의 세계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발악할 필요는 없다.

 최근 읽었던 '바나나 산책시키기'는 '스토아학파'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 했다. 삶을 간결하게 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연장선으로 해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당췌 이해 못할 인간들과 현상들을 마주하고 스스로 고통스러워질 뿐이다.


 그렇다. '사실이란 없다. 해석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망상증 환자의 세계를 '망상'이라고 정의 내린다. 그들에게 약물을 처방한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는 실재에서 '상'이 존재하지 않는 순간은 얼마나 되는가.

 기껏 해봐야 겨우 스무시간만 깨어있는 인간에게 '실재'를 사는 일을 얼마나 되는가. 보통의 인간은 삶의 3할을 꿈을 꾸고 산다. 깨어 있는 나머지 시간도 무의식에 지배되며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실재라고 믿는 것이 거짓이라는 상황에 마주한다.

 '만델라 효과'를 보면 알 수 있다. 

1995년 많은 사람들은 조선총독부 청사가 폭바 해체 되는 모습을 TV로 보았다. 이 생중계를 본 많은 이들은 조선총독부 청사가 김영삼 정권에 의해 폭파해체 됐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 조선총독부청사는 15개월에 걸쳐 조금씩 철거됐지, 폭파로 무너진 것은 아니다. 이전 해인 1994년 남산 외인아파트 건물과 라이프건축개발 사옥 건물 철거 모습이 TV로 생중계 되면서 다수 한국인이 왜곡된 사실을 실제로 알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기억은 완전하지 않다. 기억만 완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인지능력 또한 완전하지 않다. 지금은 관관코스로 유명한 제주도 도깨비 도로는 한때 굉장히 이상한 곳이었다. 그곳에 흘린 빗물이 위를 향해 흘러가기 때문이다.

 파타모르가나 현상도 그렇다. 바다에 있어야 할 배가 하늘 위에 떠 있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어떻게 된 것일까. 사람들은 이 배기 저주에 걸린 유령선이라고 불렀다. 정박하지 못하고 영원히 바다를 표류한다는 전설이 수 백년 동안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 내려왔다. 그러나 이는 빛의 굴절로 인한 착시일 뿐이다. 이집트 정복을 나섰던 나폴레옹도 사막에서 호수가 난데없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는데 이 사막은 아이러니하게도 나폴레옹 일행의 머리 위에 산으로 떠 있었다.


 우리가 얼마만큼의 진실을 알고 있는가. 내가 보는 진실도 진실이라고 확답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상대가 보는 진실에 대해서 얼마만큼의 확신을 할 수 있는가. 고로 우리는 '너'와 '나' 둘 중 누구의 말이 더 맞는지를 따지고 들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세계를 그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각각의 세계가 다름을 인정하고 나면 상대의 다름에 대해 인정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세계에 대해 증명하고자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다. 누군가 나의 팔이 '셋'이라고 한다면 필사적으로 나의 팔이 '둘'임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 저 사람의 눈에는 '셋'으로 보이는 구나, 하고 넘어가면 된다. 도를 넘고, 선을 넘어서는 경우가 아니라면 불필요한 에너지를 사용하여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할 필요가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시간적 에너지와 비용을 소모한다. 자신의 사회적 입지와 경제적 지위를 입증하기 위해 값비싼 자동차와 악세서리를 소유하고 자신이 가치있는 사람임을 입증하기 위해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끊지 못하고 살아간다. 다만 자신에 대해 자신이 있는 이들에게 그런 불필요한 수식은 거추장스럽다. 그렇게 이미 완전한 이들은 하나씩 자신을 덜어낸다.

 세계적인 투자자 워렌버핏이 싸구려 지갑, 자동차, 주택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전혀 자존감에 흠집이 잡히지 않는 것 처럼, 마크 주커버그나 스티브 잡스가 항상 같은 옷을 입고 있더라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 것처럼, 삼성 이재용 회장이 국산 자동차를 타고 다니더라도 전혀 굴욕적이지 않은 것처럼 그렇다.


 고로 본질을 수식하는 거추장스러운 포장물로 본질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똥은 황금 포장지에 쌓여 있어도 똥이고, 황금은 똥물이 묻어 있어도 황금이다. 결국 포장에 가려 본질을 보지 못하는 바보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이 '황금'이라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 황금은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가치를 아는 사람에 의해 가치를 인정받는다. 극단적으로 '바보를 설득하기에 인생은 짧다'라고 표현했지만, 이는 타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바라보는 '나'를 말하는 것이고 또한 나와 비슷한 타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고로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본질을 봐야하고, 본질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불필요한 인생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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