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평론가가 말하길 '모두가 조금씩 선하고, 조금씩 악하지만 바쁘면 더 악에 가까워진다.'고 했다.
약속 장소로 이동 중 ATM기기 앞에 섰다. 약속 시간이 코 앞이었다. 잠깐 은행 업무를 보는데 1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ATM 부스에 노인 한 분이 계셨다.
잠깐만 기다리면 되겠지...
1분이 지났다. 2분이 지났다.
뭘 하고 계시진 않았다. 스마트폰을 한참 들여다 보시다가 다시 ATM기기 버튼을 누른다.
들으라는 듯, 한숨을 푹하고 내쉬었다.
다시 1분이 지났다.
가만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저 모습'
굉장히 얄밉다. 답답해 보인다.
'에휴..'
이제와서 포기하기에는 '매몰비용'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자리를 피하면 곧 나오실 것만 같다. 5분을 더 기다렸다. ATM기기 앞에서 간단한 메일 확인을 했다. 영상 몇개를 봤다. 시계를 봤다. 이러다가는 약속에 늦을 것만 같다.
노크를 했다. 노인은 잠시 이쪽을 쳐다보더니 대꾸없이 한참 ATM기기 앞에서 있다.
몇 분 더 흐르고 노인이 나왔다.
'아.. 대체 뭘 하고 있는거야'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때 '이동진 평론가'의 말이 생각났다.
고속도로 화장실 들어 오는 사람과 나가는 사람의 표정 차이일까.
독서, 산책, 명상 이런 고리타분한 취미가 '릴스'나 '쇼츠'를 보는 것보다 더 이로운 이유는 그런 것들은 '여유'를 주기 때문이다.
여유가 중요하다. 요즘과 같이 짧은 영상의 시대에 사람들은 아주 짧은 여유시간마저 빼겼다. 잠시 어떤 감정에 깊숙히 나왔다가 들어가지도 않고 사고와 감정을 쉬었다가 갈 충분한 시간도 없다. 그저 알고리즘이 증폭시키는 '사고'와 '감정'의 흐름을 타고 일상과 일상의 작은 1분까지 '긴장'을 이어 나간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가서 사람을 기다리는 일.
만남과 만남 사이에 짧은 정적과 분위기를 느끼는 일.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는 일.
우리 일상은 이런 기본적인 '빈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이것을 참지 못하는 '여유롭지 않은 습관'이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고, 비신사적으로 만들고, 무례하게 만든다.
삶에 여유가 필요한 이유하다. 여유가 필요한 이유는 여유로움이 '선'을 주기 때문이다. 급한 것은 '악'에 가깝다.
시간, 마음, 금전.
뭐든 풍요롭고 여유로워야 한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했다.
풍요로워지면 타인에게 너그러워진다.
돈도, 마음도, 시간도 모두 그렇다.
일정이 넉넉한 사람은 상대의 5분 지각은 눈감아 줄 수 있다. 다만 일정이 빡빡한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스스로 여유로워지는 것은 선해지는 일이다.
스스로도, 가족에게도, 사회에도
빚독촉에 어려움을 겪던 어떤 이들은 가족도 해할 정도로 악해진다.
'죄'를 미워해도 '사람'을 미워하지는 말라고 했던가. 결핍한 상황에는 누구나 악해질 수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죄가 아니라 그 사람의 '상황'이 죄일지 모른다.
악의 평범성이라고 하던가.
평범한 공무원이 때로는 가장 사악한 악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일상을 살면서 여유롭지 않은 마음과 금전, 시간의 압박으로 우리는 얼마나 악해지는가. 간혹 충동을 이기지 못하여 '범죄자'로 이어지는 '평범한 이'는 얼마나 많은가.
열심히 자산을 모으고, 능력을 풍족하게 키우고, 지식을 확장하고, 시간적 여유를 갖고, 명상과 독서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왜 좋은가.
여유를 가져야 하는 이유는 빠르게 넘기는 쇼츠보다 몇 배는 더 사람을 선하게하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