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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35년(7)_1941~1945 마지막 제국주

by 오인환

역사 소재의 책이다. 어떤 책인지 자세히 보지도 않고 골랐다. 이 시대를 좋아한다. 세계의 역사 중 가장 역동적인 시대다. 배경이 전 세계 다양한 패권국이 각축을 벌인다. 삼국지연의보다 흥미롭다. 세계 역사에서 이 정도 규모의 드라마가 펼쳐진 적은 없었다. 원자폭탄이라는 현대적인 무기가 실전에 사용된 처음이자 마지막 역사이기도 하다. 다만 이런 흥미로운 역사 뒤에는 공식 사망자 5,646만 명이라는 무서움이 숨어져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스케일의 이벤트였다.

책은 박시백 님의 작품이다. 우연하게도 그는 제주도 출신 작가이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신문사를 통해 이름을 많이 알렸다. 사람들에게는 '조선왕조실록'으로 가장 유명한 작가다. 책은 광복 75주년을 맞아 전 7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시간 순서로 1권부터 7권까지 나눠져 있다. 다만,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책은 첫 장부터 시간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이끌어가지 않는다. 각 장마다 소재가 있고 그 소재마다의 이야기를 그 시간에 맞춰 알려준다. 내가 7권을 먼저 본 이유는 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불꽃이 화려하게 빛내고 마침내 살아지는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오고 세계의 질서가 재편된다. 일본이 몰락하고 한반도가 독립을 하며, 미국이 세계 패권국으로 떠오른 시기이기도 하다. 나는 역사를 볼 때, 정치적으로만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만 보기에 우리의 역사는 그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고대나 중세 시대를 뒤로하고, 근현대사를 이야기할 때는 최소 경제, 즉 자본주의를 빼놓고 설명이 불가능하다. 책은 흥미롭게도 1940년 대 중반의 세계 흐름부터 시작하여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뒤로 갈수록 큰 밑그림부터 디테일로 넘어가는 느낌이다.

나는 책을 읽고 난 뒤 내가 느낀 재해석을 글로 옮겨 담는다. 자본주의란 생산 수단을 국가가 아닌 개인이 소유하면서부터 시작한다. 국가 권력이 생산량을 독점 관리하던 시대에서 개인에게 생산 수단이 넘어간 일은 생각만큼 오래되지 않았다. 단순히 생산뿐만 아니라, '무역'이라는 일 조차 불법이던 조선은 생산과 무역이라는 소비를 제외한 모든 경제 활동을 국가가 독점하였다. 이 시기에는 비단 조선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생산을 하던 주체가 인간의 노동력에서 기계로 넘어갔다. 인간의 노동력을 독점하던 국가는 힘을 잃고, 기계를 독점할 수 있는 자본가가 생산력을 갖게 되었다. 자본가는 자본을 투자하여 생산설비를 확충했다. 그 시기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며, 노동자들의 노동력이 우스울 만큼의 생산성을 가진 공장을 설비해 나갔다.

공장은 엄청난 생산성을 가졌다. 소수의 자본들은 엄청난 생산성의 공장을 갖기 위해, 주식회사의 형식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공장의 지분을 나눠 가졌다. 주식회사는 생산된 물품을 국내외로 팔기 시작했다. 당연히 경쟁이 치열한 국내보다는 무한한 시장이 열려 있는 해외로의 수출이 확실한 수익이었다. 제국주의는 그렇게 시작했다. 커다란 배에 온갖 근대문물을 싣고 세계 이곳저곳을 떠돌며 박람회 하듯 물품을 팔았다. 그리고 그 대가로 해당 지역의 특산품을 싹쓸이했다. 자본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다른 나라들은 아직도 국가가 생산을 독점하고 있었다. 당연히 공장과 주식회사는 없었다. 누가 생각해도 기계의 운영비용은 인건비보다 싸다. 폭발적으로 생산해 내는 물건의 값은 터무늬 없이 쌌다. 그렇게 서유럽은 투입 대비 엄청난 소득을 올렸다. 자본주의가 확립되지 못한 국가에서는 많은 인력을 투입해야 겨우 그들의 물품을 살 수 있었다. 더 많은 거래를 진행할수록 그들은 손해를 보았다. 해외 시장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유럽에서는 점차 닫혀가는 문을 열기 위해 용병을 고용했다. 그리고 무력으로 그들의 항구를 개항하려 했다. 당시 조선의 주요 산업은 쌀 생산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쌀이 신문물과의 교류를 위해 해외로 반출되면 서민경제는 어려워질 것이 뻔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서구의 문물을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자본주의를 국내에서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다만 우리는 그 부분에서 옆 나라보다 조금 늦었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그들은 다만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생산을 위한 투입은 대부분 쌀이다. 얼마나 많은 쌀을 생산하는지는 그 국가의 생산력을 대변했다. 많은 쌀은 많은 노동력을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쌀은 효율이 낮은 원료나 다름없었다. 인간보다 더 빠른 생산을 해 내는 기계는 쌀이 아닌 '석유'나 '석탄'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쌀'에 의존하고 있었다. 당시 일본은 석유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미국으로부터 석유를 수입하고 있었다. 저효율인 쌀로 생산력을 높이던 조선은 석유로 생산력을 높이는 일본과 비교할 수 없었다. 일본의 저렴한 문물이 조선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조선의 쌀은 반출되었다. 조선은 자신의 생산력을 지탱하던 인간을 위한 쌀마저 부족한 상황이 생겼다. 이런 수차례 악의 고리가 반복되고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일본은 자신의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필수적인 석유를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다 일본은 인도차이나 반도와 남태평양에 석유가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된다. 미국에서 에너지 독립을 이루고 싶은 일본은 남쪽으로 진출의 야욕을 보인다.

이에 미국은 일본이 인도차이나 반도로 진출하게 될 경우 엄청난 석유 수출에 문제가 발생한다고 판단했다. 그런 이유로 일본의 이런 결정에 매국 내 모든 일본 자산을 동결하고 석유등 전략 자산의 일본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일본은 이제 생산력을 지탱하는 석유를 공급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두 가지였다. 가지고 있는 석유 비축량이 줄어들기 전에 인도차이나 반도로 잽싸게 진출하여 석유를 공급받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빠른 진출이 필요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인도차이나 반도로 들어가기에 유일한 장애가 하나 있었다. 필리핀이다. 일본과 인도차이나 반도에는 필리핀 열도가 길게 늘어서 있었던 것이다. 필리핀 열도는 당시 미국의 식민지였다. 그곳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인도차이나 반도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일본은 자신들이 인도차이나 반도로 잽싸게 들어갈 수만 있다면, 엄청난 석유를 확보하고 미국을 견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본토에서 필리핀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미국은 태평양을 건너야 한다.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또한 중간에 엄청난 태평양을 건너기 위해 한 차례 증류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미국 본토에서 필리핀과 괌 등으로 들어가기 전 잠시 머무는 곳인 하와이를 폭격하기로 결심한다. 하와이를 점령하고 나면 미국이 본토에서 필리핀으로 단 번에 올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소요될 것이고 그동안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석유를 생산해 내고 빠른 협상을 이끌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일본인 미국의 진주만을 폭격한다. 일본의 최대 실수로 전 세계의 역사가 바뀐다. 어느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버섯구름을 그리는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지며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동아시아의 역사를 바꾸는 세계의 흐림이다. 이 흐름에서 우리의 내부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더 먹었을까'에 보면 당시 일제 시대의 생활을 잠시 엿볼 수 있다. 굳이 그 책이 아니더라도, 아마 1940년대쯤 되면, 우리는 조선의 정체성을 꽤나 많이 상실하고 자신들의 국가로 일본을 어느 정도 수용하는 국민들이 늘어나지 않았을까 싶다.

외국인이 정치를 하는 곳에서 밥을 먹고살기 위해선 취업과 같은 경제 활동을 해야 했다. 그런 경제 활동에 정부의 간섭이 없을 수는 없었다. 대부분 비즈니스 상 돈이 되는 사업은 군수사업과 연관이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일본의 발전에 어느 정도 협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시대상황을 지금으로 가져와보자. 만약 지금 통지 정권이 대한민국 국민들이 아니라, 다른 나라 지도부라면 나와 내 지인들은 얼마만큼 소신을 갖고 경제 활동을 멈출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독립투쟁을 했던 독립군들의 투철한 소신이 얼마나 대단하고 존경받아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단순하게 '일본은 '악'이다.'라고 정의한 역사는 큰 공감대를 갖지 못한다. 역사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모든 일들은 '선'과 '악'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칼 마르크스와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사회를 지탱하는 '돈'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사상'과 '이념'을 넘어 역사를 움직이는 '실제'가 되었다. 나는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돈'에 초점을 맞추는 편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면 교과서에서 도저히 설명되지 못하던 여러 역사들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은 어떤 방향일까?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미국에게도 중국에게도 한반도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다.

기존 '쌀'에서 '석유'로 투입 재가 달라지는 시대를 넘어서 플랫폼 공룡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에는 '콘텐츠'와 '첨단기술'이 투입 재가 된다. 한류와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의료 산업 등 중국과 미국 양쪽이 원하는 투입재를 갖고 있는 한반도의 위치가 우리의 미래가 얼마나 밝은지 보여주는 듯하다. 책은 만화책이지만 읽으면서 심오한 자기 망상을 쌓게 해 주었다. 물론 내가 쓴 독후감은 이 책의 내용과 관련 있는 부분도 있고 무관한 부분도 있지만, 그 영감을 이 책으로부터 얻게 됐다는 점에서 이 책이 다른 독자들에게도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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