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와 아빠의 제주여행#15_서귀포 휴애리를 방문하다

by 오인환

서귀포시 남원에 위치한 '휴애리'를 갔다 왔다. 앞서 말한 남원은 '교통'의 요지다. 제주를 가로지르는 여러 도로 중

하나인 '남조로'의 종착점이다. 남원은 제주시, 서귀포시, 성산을 모두 잇는 세 거리로 뻗어나가는 길목에 있는 곳이다.

때문에 성산일출봉이나 용머리 해안 같은 커다란 관광명소로 유명하기보다 게스트하우스와 같은 숙박 시설 혹은 카페 등으로 많이 찾는다. 아마 제주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넘어갈 때, 혹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넘어갈 때, 혹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넘어갈 때, 이 중간 지점인 남원에서 한차례 머물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남조로'라는 명칭 또한 '남원'과 '조천'의 길이라는 뜻이다. 남원읍은 일제시대까지 서중면이라고 불렀다. 그러다 1935년 4월 1일부터 남원이라고 이름을 고쳐 썼다고 한다. 지금은 서귀포시 남원읍이라고 부르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는 '남제주군 남원면'이었가 다시 남원읍이 되고 2006년에 제주가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서귀포시에 통합되었다. 면적은 서귀포시 전체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대규모 기업 목장이 있어 축산업이 발달해 있다. 또한 제주도 남쪽이라는 좋은 지리적 특성에 풍부한 일조량을 받아 감귤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제주도 감귤 생산량의 24%가 이 남원이라는 지역에서 나오고 있다.


날이 후덥지근한 게 습하기도 하고 불쾌지수가 엄청나게 오르는 요즘이다. 사상 최장기간 장마와 집중 호우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 이웃 국가에서는 엄청난 경제적 혹은 사회적 피해를 보고 있었다. 우리가 뉴스를 보면 수 비게 나오는 싼샤댐은 양쯔강 유역에 건설된 땜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수력발전 땜이다. 이에 중국에서는 만리장성 다음의 역사적 축조물이며, 이를 파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핵폭탄뿐이라며 자신들의 기술력을 오만했다. 마치 신조차 침몰시킬 수 없을 거라는 타이타닉이 처녀항해에서 침몰했던 것처럼, 자연은 꼭 우리에게 한 번씩 경각심을 안겨준다.



기후 변화로 기온이 상승하면 당연히 극지방 얼음이 녹고 얼음이 녹으면 해수면이 상승하고, 다시 기온이 상승하면 적도지방 해역의 온도가 상승하고 증발한 해수는 비구름이 되니, 비가 많아지는 건 당연하다. 입구부터 찌는 더위였지만, 비는 내리지 않아 좋았다. 주말 답지 않게 사람들도 많지 않지만, 그래도 방문객은 꾸준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여행을 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방문하는 일은 썩 나쁘진 않다. 요즘 한국 영화들이 300만, 200만을 동원한다고 하는데, 밀폐된 공간에서 다닥다닥 붙어서 영화를 보는 일에 비하면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하는 공원 방문은 긍정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휴애리는 쉴 휴에, 사랑할 애를 사용한다. 우리 집에서 휴애리는 15분도 걸리지 않아다. 아이들과 기쁜 마음으로 가볍게 소풍을 갔다. 한 번 나가자면 아이들은 챙기는 게 너무 많다. 특히 다율이는 가방 안에 이것저것을 많이 챙긴다. 물론 그 짐은 모두 아빠의 몫이다. 아이들이 마스크를 차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마음이 짠하다. 우리가 잘못된 세상을 물려준 듯하다. 확실하게도 내가 어린 시절 마스크를 차고 밖으로 돌 아디는 적은 없었다. TV에서 감기 걸리면 마스크를 착용한다는 내용을 본 적은 있지만 워낙 촌에서 생활을 했어서 감기쯤이야 한 번 앓고 가는 정도로 생각했었다. 어린 시절 인류에게 바이러스가 퍼져 모든 인류가 마스크를 착용한다는 공상 영화 같은 일이 끓는 물속에 개구리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를 익혀가고 있는 것 같다.


다율이는 마스크로 둘러싸인 코를 꽃에 들이박고서 꽃 향기를 맡고 있다. 좋은 꽃 향기도 제대로 물려주지 않으면서 그 코를 마스크로 막아버린 세상에 대한 죄를 우리는 환경과 아이들 모두에게 지고 있다. 한 여름에 핀 꽃이라 그런지 꽃은 참 아름다웠다. 휴애리는 매년 4~7월에는 매화축제를 그리고 9~11월까지는 수국과 산수국 축제를 한다. 그 중간이 8월에는 그 둘을 모두 볼 수 있는 매력이 있는 듯하다. 몇 걸음을 걷자 시원한 폭포가 나온다. 폭포에서 나오는 백색 소음은 실제로 인간이 안정감을 느끼게 해 준다. 때문에 도를 닦는(?) 도인이나 음악을 하는 명창들도 마음을 다잡기 위해 폭포에서 수련하곤 한다. 바로 오른쪽으로 시원한 분수가 보인다. 분수는 원래 종교적인 장소에 설치를 하던 장치물이다. 이는 종교시설 앞에서 신자들이 참배 전에 손과 발, 얼굴 혹은 몸으 씻기 위해 사용하곤 했다. 또한 물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던 이들이 신을 위해 바치는 의미로 만들어졌으며 로마시대에는 그 나라의 풍부한 수량과 예술과 기술을 뽐내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한국이나 동양에서는 '신'보다는 '자연'을 숭배하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하늘로 솟구치는 분수는 부자연이라고 생각하고 자연의 이치에 맞도록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낙수가 발달했다.


습한 걸 빼면, 뉴질랜드에서 찍은 사진처럼 화창하다. 우리나라는 웬만해서는 하늘이 넓게 보이지 않는다. 그건 제주도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70%가 산악지역으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의 지형이 그 역할을 하는 듯하다. 또한 도심으로 갈수록 건물이 높아지면서 하늘을 볼 수 있는 조망이 줄어든다. 특히 우리나라는 주거 문화가 '아파트 문화'이다. 대부분이 시민이 아파트 생활을 하기 때문에 아파트가 하늘의 대부분을 가린다.

하지만 유럽이나 오세아니아 지역으로 가면 대부분 단독 주택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위로 생활권을 넓히는 동안 유럽에서는 옆으로 넓혔다. 때문에 뉴질랜드에서도 아파트 한 동 정도면 해결될 주택과 정원이 끝없이 넓어지는 주택단지가 형성된다. 제주는 방풍 낭이라는 것이 있다. 제주도는 태평양에 있는 섬이기 때문에 사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 있다. 또한 이 바람을 더욱 강하게 해주는 건 가운데로 높게 솟은 한라산 때문이다. 때문에 제주도는 예전부터 과수를 재배하기 어려웠다. 짠 바닷바람이 농작물에 피해를 주기 때문이었다. 초창기 감귤농장들은 농장을 조성할 때, 빨리 자라는 삼나무를 과수원 둘레로 심었다. 그리고 이를 바람을 막는 나무라고 하여, '방 풍낭'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낭'은 나무의 제주어다.

사려니 숲길이라고 알려진 숲길에서나 제주 이곳 저것에서 보이는 높은 나무는 거의 삼나무인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비자림로의 확장으로 삼나무를 베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하면서 제주에서는 삼나무에 대한 애증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피톤치트가 나오는 침엽수림은 소나무나 측백나무, 향나무를 포함하고 있다. 삼나무 또한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삼나무는 비교적 높이 솟아나기 때문에 삼나무가 자라나면 지표식물이 잘 자라지 못한다. 이런 근거로 삼나무는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모두 갖고 있으며, 제주도민에게는 애증의 대상이다. 실제 삼나무는 일제강점기에서 박정희 정권에 8700만 구루가 인공적으로 심어졌다. 제주에 살다 보면, 미세먼지는 없는데 차 앞유리에 노랗게 쌓여있는 이상한 가루들이 종종 생겨난다. 때문에 제주의 차는 어느 정도 지나면 노란색 가루가 가득 묻어진다. 이는 삼나무에서 나온 가루이다. 이 가루는 알레르기를 동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데로 우리가 높은 삼나무는 중국에서 불어오는 여러 미세먼지를 거르기도 하고 피톤치트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최근에 읽었던 '인간과 자연의 비밀 연대'라는 책에는 이런 인공림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것이 제주의 자연 생태계가 아니라는 명분으로 또다시 벌목하는 것도 논의가 필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이쯤 돼서 커다란 실수를 하나 깨달았다. 바닥이 소자 갈로 되어있다. 운동화를 신고 온 나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더운 날 샌들을 신고 온 아이들은 신발에 모레가 들어갔다면 몇 걸음을 걸어갈 때마다 신발에 모레가 들어갔다고 빼 달라고 울어댔다. 결국 얼마 걷지 못하고 초입에 있는 오두막에서 쉬기로 했다. 제주스러운 쉼터에 아이들이 앉아서 쉬고 있다. 제주도 초가의 특징은 두꺼운 새끼줄이 촘촘하게 매어 있는 것이다. 이는 바람이 많기 때문인데 바람에 날아가지 못하도록 바둑판 모양으로 촘촘하게 매어 놓는다.


살림 공원답게 휴애리는 푸릇푸릇하다. 앞서 말한 아이돌 신발 속에 들어가던 모레는 알고 봤더니, 화산송이인 듯하다. 송이란 화산 폭발할 때 점토가 고열에 타게 되는데 이렇게 탄 화산 돌 숯을 말한다. 이는 '가벼운 돌'이라는 뜻으로 실제 어린 시절 사촌에게 놀러 가면 개울가에서 부석이라고 물에 뜨는 돌을 갖고 장난쳤던 기억이 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소녀상'으로 보이는 하얀 석상이 보였다. 저걸 어디서 봤나 싶더니 평화의 소녀상이었다. 마침 내가 방문한 날자가 8월 15일 광복절이었는데 이렇게 눈에 띄게 되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소녀상의 대상은 14~16세의 어린 소녀다. 초등학교 6학년이면 13살인데, 이제 곧 초등 교육을 벗어난 아이들이다. 실제 일본군 위안부의 평균 나이가 성인도 되지 않는 어린 소녀들이었다는 걸 보자면, 역사에서 전쟁의 광기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보여주는 듯하다. 이는 일본인과 한국인의 이분법적인 시각으로만 문제를 접할 수도 있겠지만, 전쟁의 광기와 인간의 비인간성에 대해 우리 스스로도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치 그림 한 폭 같은 하늘의 모습이다. 요즘은 저렇게 뭉게구름을 보고 아이들이 구름빵이라고 소리를 치는데, 도통 그 출처가 어딘지 모르겠다. 구름빵이 뭐지? 초가집처럼 생긴 건물 옆에는 그네가 있었다. 어린 시절에 그네를 너무 타고 싶었다. 아마 요즘 아이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플레이스테이션 기계처럼 그네는 항상 갖고 싶었던 꿈의 놀이기구였다. 어느 날은 아버지가 하우스 정비하실 때 사용하시는 부품을 가지고 투박한 그네를 집 앞에 만들어주신 적이 있으셨다. 동생과 나는 그 그네를 타다가 뒤로 휙 하고 넘어가 다쳤던 적이 있었는데, 어린 시절 코 흘리던 촌의 아이들은 지금도 내가 동감을 일으킨다. 건물의 내부는 외부에 크게 달랐다. 전시관처럼 되어있고 에어컨도 있다. 하지만 에어컨은 가동되고 있지 않았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오래 있지 못하고 얼른 나왔다.



돌이 많은 제주의 특성에 맞게 제주의 돌담은 저렇게 현무암 돌덩이들과 진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주에는 삼다가 많고 삼무가 없다는 삼다의 섬이자 삼무의 섬으로 불린다. 돌과 바람, 여자가 많다는 삼다이다. 떠올려보자면 어릴 때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는 여자가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겠지만 그 당시에는 남녀를 꼭 짝을 맺어 앉았는데 남자아이들이 부족해서 여자아이들끼리 짝꿍이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또한 바람과 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삼무는 도둑과 거지, 대문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다에는 크게 문화적 의미가 없지만 삼무에는 제주의 문화적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제주는 '평등'과 '평화'의 섬이다. 거지도 없고 부자도 없다는 이런 평등사상은 뉴질랜드도 똑같다. 뉴질랜드에서도 이런 말이 있다. '부자가 되기 힘들지만, 거지가 되기는 더 힘들다.'

제주는 '삼다수'를 비롯하여, 삼다를 홍보하는데 열을 올리지만 사실상 제주가 알려야 할 내용은 삼무가 좋은 듯하다. 4.3 사건은 제주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면서 그 시작이 있다. 당시 제주는 빨갱이 섬으로 분류되어 남한 정부에 미움을 받았다. 하지만 제주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했던 이유는 통일된 정부에 대한 염원이었을 뿐, 북한과 공산주의에 대한 동경 때문이 아니었다. 이는 김구가 북한 지도자인 김일성을 만나 통일정부 수립을 약속했던 것과 일맥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곳에서 아이들과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은 그네에 걸터앉아 아빠에게 밀어달라고 했다. 오른쪽 발로 의자의 밑을 슬 적하고 밀었더니 아이들이 신나 했다. 그냥 앉아 쉴 수 있는 벤치도 제주스럽게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사진을 찍으면 SNS에 올릴 거리가 많은 곳이다. 물론 나는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하늘이 높은 날은 밖에서 뛰어놀아야 하는데, 요즘 아이들은 답답한 마스크와 미세먼지, 코로나바이러스 등의 여러 가지 나쁜 환경 때문에 좀처럼 자연을 제대로 접하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다. 하지만 이처럼 간혹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제주는 또 다른 축복이기도 하다.


쌍둥이를 데리고 나가면 각오해야 하는 것이 있다. 동시 다발적으로 여러 사건이 터지는 것이다. 두 녀석이 아빠에게 그네에 앉으라고 한다. 모처럼 그네에 앉자. 다율이는 걸어가다 넘어졌다. 기어코 피를 보았다. 하율이는 갑자기 커다란 개미를 발견했다며 아빠 보고 같이 찾아보자고 한다. 이런 식의 동시 다발적 이벤트는 많이 발생하지 않지만 한 번 발생하면, 초보 아빠를 당혹하게 한다. 한참을 개미를 찾고 있는 하율이다.


그 와중에 다율이 가 아빠가 앉고 있는 의자를 밀어주겠다고 한다. 나는 아이들이 해준다는 일을 크게 거절하지 않는다. '밀어보거라'라고 말한 뒤 다율이 에게 맡겼다. 다율이 가 그네를 신나게 밀어주었다. 아이들과 관광지를 다니다 보면, 시간이나 목적에 쫓겨 가만히 시간을 죽이는 일을 잊게 된다. 빨리 다음으로 이동해야 하고 빨리 완주해야 하며, 빨리 먹고 빨리 다음 장소로 가야 한다. 가만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산책 나온 강아지가 아니다. 아이들에게 충분히 자연을 만끽하고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주어야 아이들이 자연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율이가 '솔방울'을 주웠다. 한참을 신기한 듯 쳐다본다. 페놀과 폼알데하이드를 혼합하여 만든 석유화학 산업의 파생상품인 플라스틱으로 된 장난감에 비해 솔방울은 안전하고 깨끗하다. 언젠가 길거리에 있는 솔방울을 가지고 놀고 있는 남자아이에게 엄마가 '더러우니까 만지지 마'라고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과연 무엇이 더러운 걸까?


제주에는 돌이 정말 많다. 특히나 현무암이 정말 많다. 때문에 제주는 집의 외벽에도 돌을 쌓고 집 주변으로도 돌담을 쌓고 정승도 돌을 이용한다. 우리 농장의 황금향 밭은 우리가 처음 가꿀 때, 돌밭이나 다름없었다. 흙 반, 돌 반인 그 밭을 부모님은 두 손으로 모두 돌을 골라내셨다. 물론 나와 여동생도 함께 동원되어 그 밭에 있는 돌을 손수 다 날랐다. 이런 현무암 돌이 많은 지반 특성 때문에 제주에는 홍수가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육지 다른 지방보다 강수량이 많은 해에도 제주는 절대 홍수가 나지 않는다. 가끔 지대에 따라 호수가 나기도 하지만 다른 지방에 비하면 100년에 한 번 있는지 모르겠다.

군대에 있을 적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땅에 있는 물이 얼어 얼음이 된 것이다. 일단 제주는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웬만해서는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때문에 물이 어는 건 보기 어렵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건 땅 위에 물이 고여 있는 장면이다. 왜 물이 빠지지 않는지 나는 스무 살임에도 놀라워했다. 노란 나비를 발견한 아이들이다. 아마도 분류를 잘 모르지만 어렸을 때 배운 바에 의하면 노랑 배추나비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은 나비에게 말을 걸기도 하는데, 여자 아이들이라 그런지 아직 어려서 그런지 저런 순박한 동심이 너무 부럽기도 하다. 공원은 아주 크진 않다. 이 정도 어린이나 가족 혹은 연인들이 산책하기 알맞다. 걸으면서 가끔 보이는 사진 촬영하기 좋은 인조물들은 추억을 만들기도 좋다. 아이들은 이때부터인가? 통제불능 상태가 되었는데 아마 전날 밤, 자기 전에 틀어줬던 '키키 묘묘'라는 애니메이션 때문인 것 같다. 아이들에게 영상을 틀어주면 당분간은 휴식을 취할 수 있지만, 결국 아이들이 영상을 끄는 순간부터는 약간 난폭해지는 듯하다. 이제 결코 영상 시청은 없다!


아이에게 동물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동물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염소가 다가오자 도망친다. 처음 겪어보는 것들이 많을수록 두려운 것은 어린아이라서가 아니라 사람의 기본적인 특성인 것 같다. 처음 해외 수출을 시작했을 때, 하고 나니 너무나도 별일 아니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구상만 하고 하지 못하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꼭 복잡하고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뭐든지 한 번만 시작하면 두 번과 세 번은 어렵지 않다. 경험이 많을수록 무덤덤한 일들이 생겨난다. 나이가 많을수록 세상일에 무덤덤해지는 것도 아마 많은 경험에 의한 삶의 농숙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보여줄 것이 많았다. 돼지, 염소, 닭, 칠면조, 타조, 소 등등

아이들이 컨디션이 좋지 못해서 많이 아쉽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던 동물은 토끼다. 토끼를 좋아하는 이유는 '깡총, 깡총' 뛰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콩콩'이를 좋아한다. 콩콩이란 아빠가 퇴근하고 오면 두 손을 마주 잡고 콩콩 하늘 높이 뛰는 놀이이다. 이 놀이를 매일 해야 아빠와 반갑다는 인사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렇고 콩콩 뛰는 토끼를 하율이 다율이는 매우 좋아하는데 특히 다율이는 토끼 모자를 매일 쓰고 다닐 만큼 토끼 사랑이 각별하다. 이렇게 실제 토끼를 만나고 다율이는 신기해했다.


널뛰기가 있다. 널뛰기는 얼핏 시소와 비슷해 보이기도 하는데, 차이는 앉아서 타느냐, 서서 타느냐의 차이다. 앉아서 타는 시소는 멀리 있는 사물이 보이다가, 보였다가를 반복하기에 'See-saw'라고 불려진 듯하다. 시소는 실제로 '영차 영차'라는 관용어로도 사용한다.

널뛰기는 그 유래가 명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높은 담장에 갇혀 있는 옥중 남편을 보려는 아내가 다른 죄인의 아내와 꾀어 남편의 얼굴을 보기 위해 높이 뛴 것에서 유래됐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다.

널뛰기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한민족 전통 놀이로 중국에는 없다. 일본의 오키나와에 비슷한 놀이가 있지만 시기상 고려에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중간 지점을 넘어서면, 이처럼 휴게 카페가 있다. 이곳이 없었더라면 아마 매우 난감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나는 청포도 에이드를 마시고 아이들은 한라봉 주스와 천혜향 주스를 마셨다. 사진을 좀 다양하게 찍고 싶었지만 이쯤부터 아이들의 체력이 끝나면서 몹시 난감한 상황이 생겼다.


그 와중에 포클레인을 발견한 다율이와 하율이가 난데없이 포클레인 노래를 불렀다. 여기서부터 다율이가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애들이 컨디션이 난조라 떼는 이유가 없었다. 가령 '빨 때 색깔이 맘에 안 들다.', '빨간색 병으로 주세요.', '얼음이 녹았어요.'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없는 떼쓰기는 잠을 자는 수밖에 없다. 아이에게 단호하게 떼쓰지 말라고 말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점원께서 아이를 대신 달래주었다. 육아와 양육은 엄격과 포용의 시소 타기와도 같다. 하지만 언제 엄격해야 하고 얼마나 엄격해야 하며 언제 포용해야 하고 얼마나 포용해야 하는지 불분명하다. 다만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할 뿐이다. 지금도 그 부분이 가장 헷갈린다. 어느 부분에서 사랑과 공감을 해야 하고 어느 부분에서 엄격해져야 하는지...


감귤 체험은 5,000원을 내고 진행한다. 청귤을 따고 이것으로 청을 만들어 먹는 이벤트였다. 하율이는 기분이 좋다. 다율이 컨디션이 몹시 난조였다. 심하게 운 탓에 눈 주위가 뻘겋다. 덥기도 하고 졸리기도 했을 것이었다. 직원 분께 귤 따는 방법을 배웠다. 아마 직원분 보다 내가 더 귤을 더 많이 따 봤을 테지만, 열심히 배웠다. 하지만 도무지 다율이 의 상태가 청귤을 만들 수 없었다. 비장의 무기인 '키키 묘묘'도 통하지 않았다. 갑자기 다율이 가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한다. 다율이를 둘러업고 화장실로 뛰었다. 아! 하율이도 들쳐 매고 뛰었다. 두 녀석을 합치면 30kg는 넘어가겠지 싶다. 두 녀석을 양쪽 어깨에 들쳐 매고 이곳저곳을 뛰었다.


정말 휴애리 끝까지 뛰고 나니 곤충전시관이 있는 곳 옆에 화장실이 있었다. 겨우 다율이가 일을 봤다. 다시 감귤 체험길로 두 녀석을 둘러없고 뛰어갔다. 다 도착했나 싶을 때쯤, 하율이가 말했다.

"아빠, 쉬~"

'이런...'

다시 녀석들을 들쳐 메고 화장실로 다시 뛰었다. 30kg을 들쳐 메고 휴애리 끝으로 다시 뛰어갔다. 기진맥진했다. 아이들도 힘들고 나도 힘들었다. 이제는 집으로 가야겠다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화장실을 오가며 스쳐 지나가던 동굴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화장실 근처에 동물 전시관이 하나 있었다. 동물 전시관이 아니었다면 아마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정말 절정인 순간 아이들은 다시 곤충을 보며 눈이 반짝반짝했다. 이래서 이 곤충이 이 위치에 있던 거구나 싶었다. 곤충전시관을 도착하면 휴애리의 절반을 본 것이다. 아이들이 곤충과 나비를 보고 있는 동안, 나는 체력을 보충했다. 확실한 건 휴애리는 가볍게 산책할 정도로 좋다. 다만 이날은 다율이 의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서 힘들었을 뿐이었다.


다시 청귤을 따러가는 체험장으로 가는 길에 다율이는 아까 그네를 타다 넘어진 곳이 가렵다며 보여주었다.

'호~호~' 하고 불어주고 다시 들쳐 메고 체험장으로 갔다. 결국 체험은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흑돼지를 연상시키는 듯 한 조형물이 하나 있었다. 흑돼지는 예전 제주에서 똥돼지라고 불렀다. 화장실에 키우던 돼지는 사람이 싼 똥을 먹는 녀석이었다고 한다. 먼 옛날이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리 아버지, 어머니 시대에도 이런 화장실이 일반적이라고 하셨다. 지금은 비데를 쓰는 세상이니 아마 어른들이 볼 때 격세지감이라 할 것이다. 아이들이 코를 막고 냄새가 난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저렇게 생긴 게 똥이라고 알려 준 적이 없지만, 사람의 생각은 다 비슷한가 보다.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벌써 똥냄새난다고 두 녀석이 코를 틀어막는다. 아기 돼지 삼 형제와 새끼돼지와 어미 돼지도 있다. 아까 마저 마시지 못했던 한라봉과 천혜향 주스를 앉아 마시기 시작한다. 녀석들 먹어보란 말도 한 번 없이 한 통을 다 마신다. 아이들은 항상 먹다 남기기를 반복하는데 이렇게 한 통을 깔끔하게 마시는 걸 보니, 목도 마르고 무척이나 더웠던 듯싶다.


집에 가기 전, 매점에서 아이들은 구슬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들은 15분 만에 집으로 도착하고 20분 정도 물놀이를 한 뒤 6시부터 잠에 들었다. 무척이나 피곤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빠가 찍어준 사진을 보니 다시 또 소풍이 생각 난 듯 신나 한다.

이곳은 다양한 테마가 1년 내내 펼쳐진다고 하니, 다음에 또 방문해도 좋을 곳이다. 특히 사진 스팟이 많았는데 다 찍지 못한 것은 아쉽기만 하다. 다양한 동물들에게 먹이 주기 체험도 할 수 있고 예쁜 수국도 볼 수 있는 이 곳이 내가 있는 남원이라는 곳에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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