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책 한 장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

by 오인환

책을 읽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은 아니다. 책은 기호이기도 하고 취미의 종류이기도 하다. 때문에 책을 읽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죄책감을 갖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다만 영상 시청을 하는 일에 비해 사용하는 두뇌가 달라지는 것은 축구를 취미로 하고 있는 사람과 책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신체와 정신 구조가 다른 것만큼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을 것 같다. 일단 책을 취미로 한다는 것은 사고의 폭이 넓어짐을 의미한다. 내가 읽었던 독서 리스트를 보자면 4차 산업혁명에 관한 내용과 셰일가스에 관한 내용, 중국 플랫폼에 관한 내용, 무역에 관한 내용, 미국 대선 후보들에 관한 내용, 중국 일대일로에 관한 내용, 환경에 관한 내용 등 연결성이 다소 부족한 주제들을 위주로 읽었다. 하지만 읽는 책이 계속해서 많아지면서 비워진 종이 위에 덕지덕지 발라지는 페인트들이 하나, 둘 중복되며 서로 연결되는 듯하다. 낱개로 존재하지만 차곡차곡 쌓이며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가 되듯 독서란 비어있는 나의 지적 세계 어딘가를 차곡차곡 쌓는 일과도 같다.

이렇게 책이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막상 책 읽는 것을 권하면 대게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는다. 일단 제일 먼저 '시간'이다. 아는 쌍둥이를 키우고 있는 쌍둥이 아빠이며, 명함은 꽤 여러 개를 갖고 있다. 동시 다발적으로 벌이는 일들이 많지만, 지나가는 2020년에 2권의 책을 집필했고 200권의 책을 읽었다. 또한 매번 읽었던 책을 2000자 이상의 독후감을 작성하기도 한다. 정독이냐, 속독이냐를 따지자면 나는 어느 하나를 고르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정독을 원칙으로 하지만, 어느 부분에 와서는 속독을 하는 부분도 있고 속독만으로 읽는 책도 존재한다. 내가 이렇게 바쁜 와중에 이렇게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자투리 시간 활용' 덕분에 있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책을 읽는 것은 '독서시간 확보'하고 읽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특히나 '독서'하는데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육아'에 '독서'는 제일 큰 힘을 준다. 내가 책을 읽기 위해 아이를 학원으로 보내거나 다른 활동을 잡아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 집안 꼴이 쫌 엉망이더라도 엄마가 집에서 책을 읽는 모습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 훨씬 더 좋은 모범이 된다. 아이가 움직이는 동선 하나하나를 치우며 쫒았다니는 엄마는 아이들 눈에 '성기시고 할 일 없는 존재'로 비추어질 수 있다. 차라리 집이 얼마나 엉망이 되던지 상관하지 말고 아이 앞에서 당당히 책을 펴서 읽어보자. 아이가 물을 엎지르던 잘 정리 정돈된 장난감 통을 엎지르던.

어차피 정신이 없어서 보지도 못하는 TV 소리를 한껏 키워 놓고 아이를 쫒았다니며 치우고 야단치느니 차라리 집안 꼴이 어쨌든 조용히 옆에서 책을 읽자. 읽고 있던 책을 덮어 둘 쯤, 아이와 함께 어질러진 방을 정리하는 편이 훨씬 교육적이다. 자투리 시간에 책을 읽는 사람은 왠지 시간을 내어 책을 많이 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실제 너무 바쁜 나머지, 책을 읽을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거의 매일 책의 한 장도 넘겨보지 못한다.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다 보면, 일단 주변 사람들로부터 열심히 자기 관리를 한다는 평을 듣게 된다. 사실 취미가 축구이거나, 취미가 골프인 사람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독서는 자투리 시간만 이용하더라도 충분히 자신의 취미를 즐길 수 있으며, 자투리 시간에 책을 읽는 모습을 행여 타인이 보게 된다면 그들로부터 좋은 이미지 또한 얻게 된다. 특히 내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시간은 '운전 중 오디오북 듣기'와 아침에 샤워 후 머리 멀리는 동안 자기 계발서 읽기 등이 있다. 외출 시에는 항상 전자책 2권과 종이책 두 어권을 들고나간다. 누군가와의 약속을 하면 먼저 도착해서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인다.

가만 보면, 5시 약속이면 5시 1분부터 화가 솟아나는 나의 못난 마음이 책을 읽는 순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와중 책을 읽는다는 마음을 가지면 그 또한 낭비가 된다. 하지만 나는 책을 피며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책을 읽는 와중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한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 가짐만 바꾼다고 하더라도 독서가 '주'가 되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또한, 나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상대가 나를 만나러 다가오며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면 그 또한 말 한마디 없이 자신을 표현하는 습관이 되기도 한다.

책을 읽을 때는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치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안 건드리기도 한다. 어떤 책은 모서리를 접기도 하지만, 깨끗하게 보관하기도 한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책마다 그래야 할 것 같은 책들이 있다. 어떤 책은 책의 모서리에 내 생각을 적어두기도 하고, 어떤 책들은 노트북을 켜서 책을 읽어가며 바로바로 독후감의 뼈대가 될 메모를 하기도 한다. 주변에 펜이 없으면 급한 대로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두기도 한다. 사실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에 나오는 글과 영상을 보는 시간이 수 시간 씩은 된다. 자신이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핸드폰에 쏟아붓고 있는지는 간단한 어플이나 기본 시스템으로 확인 가능하다. 최소 하루 핸드폰을 바라보며 보냈던 그런 시간들을 책을 읽는데 썼다면 반드시 하루 한 권 씩은 독서가 가능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핸드폰의 방해금지 모드를 사랑하고 유튜브와 카카오톡을 탈퇴했다. 그밖에 소셜 네트워크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내가 유일하게 사용하는 구독은 예스 24 북클럽과 넷플릭스(결코 포기 못했음)이다. 나는 유튜브보다는 넷플릭스가 그나마 더 낫다고 본다. 특히 내 아이에게 영상을 허용해야 한다면 유튜브는 최악이다. 간단한 손가락 조작 몇 번으로 무궁무진한 자료를 넘나들 수 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그럴 수 없다. 넷플릭스는 영어 더빙과 자막 선택도 가능하다. 어차피 보여줄 거라면 나는 영어로 틀어버린다. 영어 공부를 위해서가 아니다. 영어로 틀어서 재미가 없으면 영상을 그만 보라는 의미이다. 그래도 재밌으면 봐보라는 식이다.


나는 방과 후 학원을 보내는 일보다 책 한 권 함께 읽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나의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킬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내가 어학연수를 가던 날, 나는 백인 친구들과 영어로 멋있게 대화하며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식사도 하고 방과 후에는 커피도 먹으러 다니는 생각을 했다. 어학연수를 갔을 때는 적당히 나눠진 반배정으로 적절히 내 수준 이하와 이상의 아이들이 모여 서로 안 되는 영어로 얽히고설켜 있었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서로가 안 되는 영어로 서로의 문법이나 지적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 클래스의 유일한 원어민이 교실에 들어오면 모두가 입을 다물고 한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그리고 그 선생님과 대화하는 시간보다 옆에 있는 나보다 못하거나 조금 낫은 녀석들의 엉터리 영어 발음을 들으며 수시간을 보낸다.

학교는 조금 낫다. 하지만 학원을 가면 적당히 나 정도 되는 아이들끼리 모여 앉아 서로 열등감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낸다. 내 옆에 녀석도 이 정도니 다행이다 식의 합리화와 열등감이 고착화될 것이다. 정말 내가 아이를 위해 함께 앉아 3시간, 4시간 책을 읽어줄 엉덩이 지구력이 부족하다면 아이를 학원으로 보내는 것이 맞다. 하지만 부모가 독서력이 튼튼하여 저녁시간부터 취침시간까지 조용히 아이와 엉덩이를 붙여 종이 위 활자를 넘겨 볼 지구력이 된다면 과감하게 학원을 보내지 말고 함께 앉아 활자를 읽는 것을 추천한다.

독서할 시간이 없는 사람은 없다. 독서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식사 후 최소 인스턴트커피 한 잔 마실 시간은 있는 사람들이며, 담배 한 대 피면서 핸드폰으로 인스타그램을 훑어볼 정도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밥 먹으면서,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버스나 택시를 잡는 동안에 등등 그렇게 열심히 핸드폰 액정을 바라볼 시간은 있으면서 종이 위 활자를 볼 시간은 어떻게 없다는 말인가. 분명 누구에게나 시간은 있다. 자투리 시간만 활용하더라도 300쪽짜리 책을 일주일에 2권 내지 3권은 읽을 수 있다.

누구나 활용 가능한 그런 시간을 먼 거리 친구의 끼니 확인하는 데 쓰지 말고, 내 지적 영역 확장에 사용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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