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땡볕에 나가서 얼굴이 탔다면 해의 잘못인가?

by 오인환

밖으로 나가서 얼굴이 탔다면 해의 잘못인가? 나의 잘못인가?

내리는 비에 몸이 젖으면 비의 잘못인가? 비가 옴에도 나간 나의 잘못인가?

생각해보면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에 외부의 잘못을 찾아내기는 상당히 쉽다. 나에게만 그 일이 일어난 까닭을 찾아보자면 생각보다 외부의 다양한 원인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풍날 비가 온다면, 내리는 비의 잘못이 아니라 비가 오는 걸 확인하지 않고 소풍 날자를 잡은 나의 잘못을 택해야 한다. 이 문제에 원인을 '비'에게서 찾는다면 결국 '비'에 대한 원망만 쌓여 갈 뿐, 다음번 찾아 올 '비'도 고스란히 내 몫으로 맞게 된다. 소풍날 비가 온 까닭에는 잘 확인하지 않았던 나의 과오를 생각해야 한다.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알아차리지 못한 부끄러움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의 잘못도 아니다. 무지의 흔적일 뿐이다. 이 흔적은 아는 순간, 반복되지 않는다. 누구에 대한 미움도 남지 않는다. '비'는 더 이상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 연구대상일뿐이다. 세상에 관찰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질수록 삶은 즐거운 것들로 넘쳐 난다.

얼마 전, 사려니숲길을 걷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초입과 중반, 후반의 생각 변화가 일어나고 반환점에서 또한 생각의 변화가 일어난다. 초입에서는 내가 걸어야 할 길의 방향과 기간, 난이도를 예측하지 않고 걷는다. 넘치는 체력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며 신나게 걷는다. 음악을 듣기도 하고 재미난 생각과 오래된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생각하기도 한다. 스스로의 생각을 한참을 하고 중반부에 이르면 나의 시선이 내부에서 외부로 확장되며 걷는 사람들의 표정과 길거리의 나무와 풀이 보이기 시작한다. 듣고 있던 음악이나 생각은 멈춰진다. 체력이 조금씩 약해지며 아파오는 곳도 생겨나기 시작한다. 후반부에 도달하면, 더 빨리 걷고 싶어도 몸이 따라 주지 않아 빠르게 걷지 못한다. 발바닥부터 허벅지와 허리까지 안 아픈 곳이 하나 없다. 생각은 내부도 외부도 아니다. 나의 앞과 뒤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은 이미 신경 쓰이지 않는다.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야 할 목적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목적에 도달할 때의 기쁨보다 걷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게 된다. 반환점을 돌고 출발지로 향할 때는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된다. 어디쯤 걸을 때면 어느 정도 왔겠구나 싶다. 올 때보다 갈 때는 더 빠르게 가는 듯 느낀다. 걸어왔던 모든 것들이 생각이 난다.

인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듯하다.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가. 나는 아마도 한참 기운이 넘치던 초입과 내부에 있던 시선이 외부로 향하는 그 중반부쯤을 걷고 있는 것 같다. 내 앞 뒤로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며 앞선 사람을 넘어서느냐, 뒷 선 사람과 거리를 늘리느냐의 의미 없는 경쟁으로 체력을 소모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반환부를 돌아 이 부분을 분명 다시 걸을 때쯤에 오늘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때는 내가 했던 소모적인 체력 낭비에 후회하지는 않을까? 누군가를 탓하고 사는 삶을 살다 보면 적이 많아진다. 표면적으로 적 없는 인생을 살았지만 스스로의 문을 굳게 닫고 세상을 좁게 살고 있는 우물을 쌓는 개구리처럼 말이다. 비가 오는 날, 소풍날을 잡아서 비가 싫고, 날 맑은 날 씨앗을 뿌려 맑은 날을 싫어하고 살면 나는 어떤 날을 기쁘게 맞이 할 수 있을까?

세상 살면서 겪는 거의 대부분의 일에는 능동적으로 대처하되 내부적인 원인을 발견해야 한다. '공주님!!!'이라고 호칭만 달라져도 '목소리'가 달라지는 아이의 천진한 모습처럼 내가 맞이하는 상황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대응해가며 살아야 한다. 나는 '아빠'이기도 하고 '아들'이기도 하다. '학생'이기도 했고 '선생'이기도 하다. 나의 정체성은 불러주는 사람의 이름에 따라 천지차이로 달라진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정의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는 것은 그만큼 유연한 정체성을 지닐 수 있다는 뜻이다. 비가 올 땐, 비가 오는 데로 좋은 하루를 보내고, 날이 맑으면 맑은데로 좋은 하루를 보내야 한다. 아버지라고 부르면 아버지로서 좋은 역할을 다하고, 아들이라고 부르면 아들로서 좋은 역할을 다 해야 한다. 내가 부모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아이에게도 아들의 모습을 고수할 수 없다. 외부는 나를 훈련시키는 좋은 선생님이다. 언제나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행복함을 잃지 않도록 변화무쌍히 나를 훈련시켜준다. 나쁜 일은 빨리 벌어지는 것이 좋다. 막바지에 와서 결론에서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보다 이야기 초기에 벌어지는 나쁜 일이 훨씬 좋은 일이다.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좌절하지 말자. 이렇게 빨리 찾아왔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100m 달리기 99번은 100번째 달라기를 쉽게 만들어 준다. 오늘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내일의 안녕을 위해 존재한다. 세상과 싸워 이기지 말자. 세상을 받아들이고 연구하고 공부하자. 특히 나에게는 어떤 자세가 있어야 하는지를 꾸준하게 연구하자. 그리고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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