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과정에는 자신을, 결과에는 겸손을...
진인사대천명
순조실록(1815년)에는 이런 내용이 기록이 있다. "지난달 24일과 25일의 비가내려, 물 깊이가 석자(900mm)가 되고, 함안 등 여러읍이 무너져내려 떠내려간 민가는 2,019가구, 사망자 570명...", 이틀 간, 900mm의 비가 내렸다는 엄청난 기록과 수 백 명의 사망한 이런 일은 1회로 끝나지 않았다. 마찬가지 조선 순조 16년인 1816년에도 또한 커다란 흉작이 일어났다. 2년 전이던 1814년에는 790만 명이이었던 조선의 인구가 2년 뒤에 659만 명으로 130만명이나 줄어든 것이다. 꽤 오랜 기간, 먹구름이 심하게 끼고 장마가 아주 길게 이어졌다. 전국이 동시에 연달아 흉년이 일자, 조정은 세입이 크게 줄어 위기를 느꼈다. 조정에서는 원래 받아야 세수의 1/3정도만 얻었을 뿐이다. 이에 불안감을 느낀 호조판서 정만석은 관원(공무원)의 숫자를 줄이고 긴축재정을 하지 않으면 2,3년 이내로 큰 위기가 있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조정에서는 장마를 멈추기 위해 기청제라는 제사를 지냈다. 하늘이 맑기를 기도하는 이 제사에는 엄청나게 많은 공물과 희생(동물)을 받쳤다. 흉작이 이어지던 시기, 조정은 엄청난 세금을 이용하여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제사를 지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구름은 걷힐 생각이 없고 내리는 비는 그칠 생각이 없었다. 틀림없이 하늘에 어떤 변화가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같은해 9월 영국의 두 함선인 알세스트호와 리라호가 서해안에 도착했다. 그리고 2일 간 정박했다. 당시 영국의 선원들은 조선에 책 한 권을 전해 주었는데, 이것이 굳게 닫혀있던 조선의 빗장이 잠시 풀렸던 내용 중 하나다. 이들이 조선에 전해주고 간 책은 다름 아닌 '최초의 성경'이었다. 이런 모든 것이 인과관계가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사람들이 '하늘'과 '신'의 위엄을 느끼고 '국가'와 '조정'의 무능을 느낄 때, 우연하게도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사이아세는 히로미마 원자폭탄의 2,000,000배의 폭발이 있었다. 이 폭발은 잿빛 기둥을 만들어냈고 인근 600km 반경 내의 지역에서는 이틀동안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지내야 했다. 폭발 중 만들어진 가스에는 플루오린이 섞여 있었으며 이는 땅으로 들어가 가축과 인간을 죽였다. 이에 이 지역의 사람들은 대략 10만명 정도 사망했다. 폭발 시에 만들어진 재는 기류를 타고 성층까지 올라가 전 지구를 덮었다. 그리고 1816년과 1817년은 조선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여름이 없는 해로 기록되었다.
1816년과 1817년에는 유럽과 미국은 여름에 서리가 내려 엄청난 흉작이 일어났다. 당시 엄청난 기근이 발생하여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 죽었고 전염병과 식량난에 견디지 못한 유럽인들은 미국으로 대거 이주하여 미국 개척이 가속화 됐다. 같은해 프랑스의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 중이었다. 그는 질척이는 땅 덕분에 진군이 2시간이나 늦어지며 패하게 된다. 이 전투에서의 날씨의 변화는 갑작스러웠으며 이런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 덕분에 나폴레옹과 유럽, 인류의 역사는 크게 바뀐다. 4일 후 나폴레옹은 폐위 되었고 연합군은 파리에 입성하게 된다. 대략 예상을 하겠지만, 이런 폭발은 핵폭발이 아닌,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탐보라 화산 폭발 때문에 일어났다. 이 폭발이 일어난지 18년이 지난 1833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서는 진도9.0의 거대지진과 쓰나미가 다시 한번 발생하였다. 같은 원인으로 유럽에는 한파가 발생하여 200만명의 사람이 다시 목숨을 잃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의 일이 일어났다. 1833년 서울과 경기 지역은 흉년이 극심하여 쌀폭동이 일어났는데, 이 당시 쌀 값은 2배 가량 오르고 상인들은 싸전을 일제 거래 중지하였다. 지금에서야 전 세계를 내려다보는 인공위성과 통신망의 발전으로 전 세계가 여러 문제를 공유할 수 있지만, 당시에 이유를 모르고 죽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는 알 수 없는 '재앙'일 뿐이었다.
갑자기 영문도 모르는 불행은 느닷없이 찾아오지 않는다. 어느 곳에선가 원인은 일어나고 그것이 나비효과가 되어 여기까지 미치는 것이다. 그것을 모른다면 우리는 막연한 불안감을 갖는다. 어떤 원인에 기인할 것이라는 확신은 '무지'를 없애는 데서 시작한다. 17~18세기, 프랑스는 '신'이 아닌 인간의 이성에 의해 의식을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우리는 이것을 '계몽'사상 이라고 한다. 무지했던 어제의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이런 계몽주의는 점차 확장되며 '왕'의 권한은 '신'을 대신하기에 기인한다는 '왕권신수설'을 몰아내고 영국과 프랑스의 의회정치를 만들어 낸다. '신'이 아닌 '사람들'이 통치하는 '공화정'이 시작되며 인류의 정치 체제는 지금껏 걸어오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태어난다. 조금 늦지만 우리 조선에서도 '전봉준'이 중심이 되어 '반봉건'의 운동을 펼쳤는데, 영국, 프랑스와는 다른 결과를 가졌다. 아마 우리 스스로 의회정부를 수립하지 못한 이유는 흥선대원군의 왕권강 정책이 성공적이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그는 세도정치를 타파하고 비변사를 혁파하며 경복궁을 중건하는 등 여러 정책 보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가끔은 잘했던 일이 발판이 되어, 최악의 결과를 만들기도 하고, 최악의 일이 발판이 되어 성공의 길을 열기도 한다. 역사에서 배우컨데 이유를 모르고 발생하는 일에 대해 철저하게 경계하고 원인과 결과에 대해 항상 고심하며 잘하고 못하고를 스스로 판단하고 어쩔 수 없는 되고 되지 않고는 하늘이 정하는 것에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은 열심히 했다고 잘되거나 대충했다고 안되거나 하지 않는다. 어쨌건 이미 벌어진 일들에 대해 재빠르게 수긍하고 받아들인 후 대응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