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3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소설] 모든 리뷰가 스포가 될 만한_기묘한 러브레터

by 오인환 Nov 05. 2021


 띠지도 자세히 보지 말 것! 커버도 자세하게 보지 말 것! 리뷰도 읽지 말 것! 그냥 책을 펴고 바로 읽을 것!


책을 먼저 읽은 독자들이 나중에 읽는 독자에게 보내는 평이다. '기묘한 러브레터'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 또한 띠지도 보지 않고, 커버도 보지 않고, 리뷰도 보지 않고 책을 펴서 읽었다. 그래서 그런지... 너무 재밌다. 읽어야 할 책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어제 저녁 11시 얇고 글씨가 넉넉한 소설책을 폈다. 너무 두꺼운 책은 한 번에 읽기 힘들다. 한 번에 읽지 못하면 소설은 흐름을 놓치고 흥미의 선이 끊어진다. 조용하고 어두운 밤, 한 번에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소설을 서재에서 고르다가 집어 들었다. 결혼식 당일 사라진 신부... 그리고 30년 만에 밝혀진 충격적인 진실... 이마저도 알지 말고 봤어야 하는 책이지만. 이 책은 그렇다. 책을 펴면 저도 모르게 작가가 누구인지 확인한다. 작가 소개에는 "'야도노 카호루', 복면작가."라고만 적혀 있다. 그리고 작가의 소개가 적혀야 할 페이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가능한지. 실제인지 허구인지. 80만 독자를 혼란에 빠뜨린 이 작품에 대하여 밝혀진 사실은 친구의 실제 경험담에서 출발했다는 것 뿐이다.'



 흥미롭다. 본 리뷰에는 어떤 스포나 책의 내용을 담지 않겠다. 이 후에 읽을 다른 독자를 위해서다. 다만 오랫만에 읽게 된 '일본 소설'에 관한 내용을 말하겠다. 아주 오랜 전부터 '일본 소설'을 좋아했다. 일본 소설을 좋아했던 이유는 '문체' 때문이다. 일본어는 한국어와 어순과 어휘를 공유하고 있지만, 아주 다른 특성이 있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 전 부터 생각해왔지만, 일본의 한 전문가인 '사와다 가쓰미'님의 저서인 '한국과 일본은 왜?'를 보고 그 근거가 맞다는 확신을 했다. '사와다 가쓰미' 작가는 1967년 생으로 일본 게이오 기주쿠 대학의 법학전공을 했던 이다. 그는 마이니치 신문사에서 30년간 기자 생활을 했던 인물로 오랜 기간 '글'과 함께 했던 인생이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한국어와 일본어는 같은 한자문화권이자 알타이어계 영향으로 어순이 같고 어휘를 공유한다. 이처럼 닮은 언어는 사실상 없다시피 할 정도로 비슷한 언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문체와 어체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일본인이 바라본 한국어의 어체와 문체는 '관념'과 '명분'이 중요히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어의 어체와 문체는 굉장히 직관적이다. 예를들면 이렇다. 일본인들은 직관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한국인들은 관념적 표현을 사용한다. 우리쪽에 좋게 말하자면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문장은 사유적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우리나라 애국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영원히 하느님에게 보우 받는다'라는 직관적 표현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사유적이고 관념적 표현이 없고 한국인들은 직관적인 표현을 쓰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게 그런 표현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독일인 작가의 글은 제목과 도입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실제로 독일인의 글을 보면 굉장히 복잡하고 심오한다. 어쩐지 우리의 글도 비슷하다. 쉽게 설명하는 것 보다는 어사무사한 글이 깊이 있는 글이라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한 문장을 읽고도 다르게 해석하는 해석의 여지를 넓게 남겨두는 것이 한국어의 특징이라면 일본어의 특징은 쉽고 빠르고 간결하게 저자의 생각을 전달하는데에 있다. 무엇이 낫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는 없다. 한국인은 '독자의 해석'에, 일본인은 '저자의 의도'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보니 일본어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글들은 매우 쉽게 읽힌다. 일본어 소설은 분량에 비해 빠르게 읽히고 이해가 쉽다. 반면 한국어의 소설이 일본어로 번역될 때, 일본인들은 매우 혼란스럽게 느낀다. 



 내가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이유도 있다. 일본소설은 쉽게 읽힌다. 이 것은 수준 낮기 때문이 아니다. 쉽게 읽히는 글은 좋은 글이다. 일본의 소설은 빠르고 직관적으로 읽히며 고단하게 머리 쓸일 없이 친절하다. 이런 비교는 남녀가 같은 연애스토리를 다른 시각으로 썼던 '공지영', '츠시 히토나리'의 소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서도 명확하게 구분된다. 이것은 작가의 집필 능력이나 어느 국가의 문체와 어체가 더 우월한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부분이 분명하게 느껴지고 그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할 뿐이다.



 이 소설은 220페이지가 조금 넘는다. 글씨는 여유있게 넉넉하다. 편지체로 이뤄져 있어 일본어 특유의 직관적인 느낌과 더불어 더 빠르게 이해하게 만든다. 빠르게 읽혀야 속도감이 있는 소설의 경우에는 일본소설이 재밌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추리소설'에서 일본소설은 너무 유명한 작가가 많다. 이 책은 빠르게 속도감있게 읽힌다. 일본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와 전개가 이어지고 결과 또한 매우 일본의 느낌을 준다. 이 책을 최고의 명작 소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 1시간, 2시간을 흥미진진하게 보낼 수 있고, 무척이나 재밌다. 넷플릭스 영화 한 편을 보는 느낌처럼 즐길 수 있다. 소설의 줄거리와 내용을 전혀 적지 못하는 것이 아쉽고도 아쉬운 책이다. 읽는 시간은 길게 잡아도 2시간이다. 꼭 읽어본다면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드는 책이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브런치 글 이미지 2
브런치 글 이미지 3


작가의 이전글 [여행] 사진과 편지로 보는 여행 이야기_여행의 순간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