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기억이란

오늘 밤, 세계에서 이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by 오인환

'간질간질'하다가 '먹먹'해진다. 마흔을 바라보는 시커먼 아저씨가 이 소설을 읽고 있다는 게 죄책감이들긴 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읽어야했다. '교실'과 '학교', '선생님' 등의 어휘가 등장하는 소설을 내가 읽어도 될까. 어느샌가 소설에 푹 빠져들어 읽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려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가는 착각을 들게한다. 여자친구와 남자친구가 '꽁냥꽁냥'하는 이야기를 반쯤 이입해서 들여다 본다. 소설의 소재는 '기억'에 관해 있다. '선행성 기억 상실증'이라는 흔한 소재다. 이미 많이 소비된 소재임에도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평이 많았다. 하룻밤이 지나면 전날의 기억을 읽어버리는, 매일마다 기억이 리셋되는 증상을 잃고 있는 여주인공의 이야기. 소설의 줄거리를 이야기하면 재미는 반감하기에 소설의 줄거리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어느날 사고를 당한 소녀가 특정 날자 이후로의 기억은 모두 잊어버리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내일의 자신을 위해 일기를 쓰고 기록을 한다. 내일의 내가 기억해 줬으면 하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잊었으면 하는 것들은 기록하지 않는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의 조언을 100번 도움받아 주변인들이 주인공에게 이런 증세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살아간다.

어제의 내가 기록한 내용을 토대로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간다.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을 망각해버리는 내일의 나에게 오늘의 나는 해주고 싶은 말들이 많다. 기억해야 할 것과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을 나눈다. 머리로 알게 되는 새로운 정보를 쌓지 못하지만 머리가 아닌 가슴에 쌓이는 많은 것들은 습관으로 남는다. 이런 독특한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으면서 소녀는 한 남자아이와 연애를 시작한다. 새로운 기억을 쌓지 못하는 소녀에게 나타난 새로운 남자친구는 언제나 낯설지만 일기 속의 기억에서 그와 언제나 즐거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기억상실증에 대해 철저하게 남자친구에게 알리지 않고 연애를 지속하던 소녀는 남자에게 연애를 하더라도 정말 사랑하지는 않을 것을 약속받는다. 이유를 모르는 남자친구는 이를 받아들였지만, 점차 그들은 사랑하게 된다.

더이상 새로운 것을 남기지 못하는 기억상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에게도 존재한다. 내일 알면 더 좋은 일들과 내일 해야 할 일들을 반드시 기록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자면, 매일 망각해가는 하루와 하루를 사는 우리의 모습의 축약판일지도 모른다. 삶은 그렇다. 어제와 오늘이 헷갈릴만큼 정신없이 살며 방금했던 일들도 기억해 내지 못하는 기억상실에 걸려 사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정신없는 기억상실에 세상 감사할 것들과 사랑해야 할 것, 고마워 해야 할 것을 잊고 산다. 하루라는 분명한 단위에 모든 것이 초기화되는 소설의 주인공이지만 그녀는 어제의 하루를 오늘에 잇고, 내일에는 잊지 않기 위해 일기와 기록의 도움을 받는다. 새롭게 만들어진 기억을 쌓지 못하는 장애 속에서 새롭게 만난 남자친구와의 연애를 하며 그녀는 기억이 아닌 감정으로 남자친구를 받아들인다. 모든 것들은 그렇다. 내가 행동했던 모든 것들은 사실 기억에만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감정으로 남겨지고 무의식으로도 남겨지는 것이다.

좌절과 절망, 사랑과 기쁨. 이런 감정들은 휘발되어 지나면 하나도 남지 않는다. 그렇게 일생에 내가 느꼈던 감정이 일회용처럼 소비된다. 하지만 이는 소비된 것이 아니라 우리 속 어딘가에 깊게 남는 것이다. 단지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을 잊고 지낼 뿐이다. 어제의 나는, 타인보다 더 타인과 같다. 일기에는 내일의 내가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부탁하기도 하고, 내일의 나에게 하지 말아야 할 조언을 하기도 한다. 내일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다르게 그 조언과 부탁을 들어주기도 하고, 깜빡 잊기도 하며 무시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좋은 가독성으로 빠르게 읽힌다. 허구의 이야기는 소설이지만 자기계발이 면모도 있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빠르게 흐르는 소설의 전개 과정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느껴진다. 사랑과 그 뒤로 슬픔과 먹먹함이 들기도 한다. 한 편의 짧은 청춘영화를 본 듯한 순수하지만 아련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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