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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Feb 01. 2022

[수필] 암투병 2년 간의 비망록_암중일기

 진심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가? 책을 통해 누군가의 삶을 훔쳐봤지만 가늠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도 헤아려지지 않는다. '암'을 맞이한다는 사실은 어떤 것일까. 암은 모순덩이 병이다. 주기적으로 사멸해야 할 세포가 사멸주기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증식한다. 세포가 제어되지 않는 수준으로 성장하고 분열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환자는 생명을 잃는다. 죽지 않기 때문에 죽는 병이다. 이 병이 더 무서운 것은 아이러니가 더하고 또 더해지기 때문이다. 암환자의 25%는 우울증을 동반한다. 우울증은 쉽게 말하면 '죽고 싶은 병'으로 치열하게 생존하고 있는 환자들이 걸린다. 죽지 않기 위해 투병하는 이들은, 다시 '죽고 싶은 병'에 걸린다. 살기 위해 하는 행동들로 되려 죽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살기 위해, 죽지 않는 세포를 떼어내는 것, 암이 가져다 주는 아이러니다. 우연하게 암투병하여 회복한 이들이나, 암투병 중인 이들을 알게 될 때가 있다. 누구나 삶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각자 자신의 어깨 위에 지어진 무게감이 가장 크다고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인생은 넘어야 할 산들 투성이었다. 하나 둘 넘기다보면 가장 큰 산으로 알고 있던 산이 때로는 아주 작은 조약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6살 난 딸 아이들과 밥상머리에 앉을 때, 아이는 작은 목구멍으로 계란이 묻어진 밥알을 삼키기 힘들어 했다. 아마 저 아이에게는 어른들이 쉽게 삼키고 소화시키는 작은 밥알 조차 모래처럼 느껴지겠지.

'젊음'과 '건강'을 자랑하는게 가장 미련한 것이라고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다. 한 겨울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으면 어른들이 '젊은게 좋긴 좋네...'하고 지나갔다. 그것이 곧 자랑처럼 여겨지는 시기가 있다. 웬만해서는 감기도 걸리지 않고 아프지도 않는다. 젊음과 건강은 즉, 거의 유일한 장점처럼 강력한 무기로 삼던 것들은 사실 매일 하루마다 노쇠해진다. 몇 일 쯤은 밤을 세워도 괜찮고 몇 끼니 정도는 건너뛰고 음료 한 잔 마셔도 펄펄하던 것이 무기였던 시기는 하루 하루 사라진다. 영원할 것 같은 순간이 사라지는 것은 하루와 하루다. 알게 모르게 사라져간다. 몸의 과만이 정신까지 깃들여 뭐든 무서울게 없었다. 자신보다 노약한 이들보다 우월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들의 노약함을 하루도 빠지지 않도 닮아간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듯. 젊음이 노약을 닮아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은 되돌릴 수도 없고 거스를 수도 없다. 자신의 가야 할 길에 대해 비웃고 가엽게 여기는 것만큼 바보같음은 없다. 나의 미래를 먼저 맞이한 이들을 바라보며 가져야 하는 것은 우월감이 아니라, 존경심이다. 한 살과 한 살이 더 해질 수록 누구나 죽음을 향해 가깝게 다가간다. 

 '흔한 일이야. 죽음 따위...'

배우 최민수 님은 한 TV프로그램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나만 경험 못했을 뿐이지. 사람들은 다들 한번씩 경험하고 가."

죽음을 가깝게 경험해 봤던 '최민수 배우'의 '죽음'을 대하는 철학이 느껴졌다. 죽음을 앞 둔 이 들은 '죽음'을 초월하는 경험을 갖는다. 결국, 죽음을 초월한 이들이 삶을 바라보는 태도는 여느 인간과 확실하게 다르다.

 신체와 정신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서로 영향을 준다. 건강한 몸은 건강한 정신과 긍정적인 사고를 기를 수 있게 하고, 다시 건강한 정신과 긍정적인 사고는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도록 만든다. 물론 이런 순환이 마치 수학의 공식처럼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어느정도 일관성 있도록 움직인다. 신체와 건강이 원활하게 상호 작용하며 돌아가다가 가장 먼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보통 '신체' 쪽이다. 신체가 고장난 상태에서 삐끄덕거리며 정신을 치열하게 다듬는 것은 쉽지 않다. 이미 범람한 오염수가 맑은 물 쪽으로 치밀어 들어오는데 그것을 필사적으로 막아서고 정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꼴이다. 병을 초월한 이는 죽어가는 신체를 초월한 강력한 정신을 갖게 된다. 정신은 신체에 영향을 주고, 신체는 다시 정신에 영향을 준다.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긴 다시 한번 성장한다. '영생'하는 생물로 알려진 바닷가재가 죽는 순간은 딱딱하게 스스로를 가두고 있던 껍질을 탈피하는 순간 뿐이다. 껍질에서 벗어난 바닷가재는 그 죽음의 고비만 잘 넘길 수 있다면 죽지 않고 영생한다.

 김성태 작가 님은 꾸준히 내 글을 읽어주시고 피드백을 주신다. 세상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경험들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의 비망록은 솔직하게 모든 것을 기록한다. 몇 시에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먹었으며 어떤 증상들이 있는지 상세하게 적어둔다. 읽어 내려가는 동안, 자칫 내가 그 상황과 현실에 처해졌다는 이입이 들다가도 표면적인 이입으로 공감을 한다는 자책감이 들고나면 숙연해진다. 남들은 이름만 들어도 겁이 벌컥나는 '병명'을 맞이하고도 '생업'과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씻지 못한 불편함이나 먹지 못하는 불편함, 배변의 불편함 등. 병에 걸려 막연히 병원 침대에서 밍밍한 밥을 먹으면 될 것 같은 간단한 투병생활은 존재하지 않는다. 살던 방식의 모든 부분이 불편해지고 고통스러워진다. 맹장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 한 적이 있다. 병원은 씻지 않은 머리와 얼굴을 하고 돌아다녀도 아무도 이상해게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아픈 곳이 아니더라도 아플 것고 맥빠지는 기운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여기 저기서 소근 소근 이야기하며 걷는 말하는 이들의 표정은 어둡다. 얼마간 더 누워 있다가는 없던 병도 생겨 날 것 같은 분위기와 기운.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 병을 이겨내는 것 만큼이 나 힘들었다.

 '암중일기'는 위암 1기 B를 겪으셨던 '김성태 작가' 님의 비망록이다. 잊지 않기 위해 기록했던 거의 모든 이야기가 적혀 있다. 사업상, 개인상, 가족상의 모든 이야기를 잊지 않기 위해 기록했던 누군가의 이야기다.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강한 변명거리를 가졌음에도 자신이 가진 책임을 끝까지 다한다. 강한 정신에는 강한 신체가 깃든다. 맞는 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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