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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Feb 10. 2022

[소설] 저돌적으로 주제를 제목에 걸어놓고도 재밌는

옆 방에 킬러가 산다 독후감

*책의 소개에 적혀 있는 내용을 제외하고 스포를 피한 리뷰입니다. 모르고 봐야 재밌습니다.

 지금이야 내 옆방에는 누구도 살고 있지 않지만, 유학생활 중에는 누군지 모를 외국인이 항상 살곤 했다. 얇은 석고보드로 칸을 겨우 나눴는지 방음은 전혀 되지 않고 옆방에서 샤워하는 소리나 전화하는 소리, 심지어 코고는 소리까지 들렸다. 인사를 하고 얼마 있으면 옆방 플랫메이트(룸메이트)는 바뀌었다. 어느 날은 일본인 남자가 살았다가 어느 날은 말레이시아 남자 둘이 살다가 어느 날에는 중국인 남학생이 살기도 했다. 집에 돌아오면 상대를 위해 최대한 소음을 내지 않는다. 그러다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상대의 소음에 예민해지게 된다. 주변이 점점 조용해지니 작은 소리에 귀가 기울여진다. 전화하는 소리나 밥 먹는 소리가 의도치 않게 들리게 되면 일부러 이어폰을 끼지 않는 이상 옆방의 누군가와 대화나누지 않는 사생활을 알아차리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오고가며 어색하고도 친절한 인사를 형식적으로 나누고 각자의 방 안에서는 '방귀'끼는 소리까지 공유한다. 앞에서는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는 사이지만 방 뒤에서 개인적인 '생활 소음'을 모두 듣으면, 뭔가 알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소설은 옆 방의 소음 때문에 잠에 들지 못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쩐지 내 기억 속의 어떤 기억과 공유되는 소재다. 흥미로운 소재에 제목이다. 어쩐지 제목이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는 듯 하지만, 읽으면서 너무 흥미지진했다.

 이미 집에 읽을 책이라고 쌓아두고, 아이들에게 '책방'에 대한 추억을 쌓아주기 위해, 주기적으로 '서점'을 향한다. 아이들은 '스티커'나, '슬라임', '클레이' 등에만 관심을 갖지만, 그곳에서 대략 한 시간 정도를 구경하다 아이스크림을 구매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아마 아이들에게 '책방'의 인식은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함께 남을 것이다. 이 날도 마찬가지였다. 더이상 책을 사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적당히 이곳 저곳을 서성이고 있었다. '소설' 코너에서 책들의 이름을 살피고 있는데, 바로 옆에 50대 남성분과 20대 여성이 서 있었다. 그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부근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빠 이거 읽었어?" 

여자가 물었다. 그러자 아빠로 보여지는 남자분이 대답했다.

"아직 안 읽었어"

"이거 읽어봐. 이번에 나온 건데 재밌어. 불륜에 관한 책인데... (어쩌구 저쩌구..)"

둘은 한참동안을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엿들으려고 한 것은 아닌데,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이 들리자, 귀가 쫑긋해졌다. 책 장을 바라봤다. 작가 별로 구별된 책장이었다. 그곳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책이 진열된 곳이었다. 예전에는 그의 책을 골라 읽곤 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일본추리소설'은 내가 재밌게 읽는 소설류였다. 오늘에 와서는 잘 읽지 않게 됐지만, '에구니 가오리'나 '히가시노 게이고', '츠시 히토나리' 등의 일본 작가들의 소설은 왠만하면 실패하지 않았다. 추리소설을 하나 골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아빠와 딸이 '서점'에 와서 같은 취향의 소설책을 권하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재밌기는 하나, 많이 읽다보면, 전개 방식이 비슷하게 흘러간다. 소재를 보고나면 대략 누가 범인이고 어떻게 전개될지 그려질 때도 있다. 그런 이유로 다른 작가의 책을 골랐다. 직관적인 제목에 많지 않은 쪽수의 책을 골르다보니 '옆방에 킬러가 산다'라는 책을 고르게 됐다. 주인공의 옆방에는 밤마다 불쾌한 소리가 난 다. 함께 같은 공장에 일하는 노동자이지만, 옆방의 룸메이트는 '중국인 노동자'다. 일본 내에서도 '중국인 노동자'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존재한다. 주인공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선입견으로 그가 만들어 내는 '소음'이 '시체'를 해부하는 일이라고 '망상'한다. 욕실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 때문에 신경이 예민한 주인공은 점차 해당 '중국인'의 모습이 수상하다고 여긴다. 소설은 이야기를 질질 끌거나 빼는 것 없이, 바로 핵심 사건의 발단을 앞부분에 서술한다. 그리고 매우 빠른 속도로 소설은 전개한다. 챕터 하나를 읽으면, 다음 챕터를 읽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일본 추리 소설 특유의 직관적인 서술방식으로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가 '척!', '척!'하고 날만큼 속도가 붙는다. 옆방에 킬러가 산다는 굉장히 중요한 핵심 소재를 제목에 노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어? 이게 뭐야?', '어? 이게 뭐야?'

하며 소설은 전게 된다. 제목에 노출된 소재는 극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간혹 추리소설은 책의 2/3 부근까지 읽으면 대략 어떻게 전개가 될지 흐림이 보이기 시작하지만, 이 책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소설이 쉽게 읽히고 이해도 빠르다. 이런 류의 소설의 재미를 알았던 것이,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군복무 실절에는 '운전병'이었다. 당연히 '핸드폰' 사용이 불가능하던 시기, 다른 군인들은 무엇으로 무료함을 달래고 살았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항상 책을 읽고 있었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 쌓여진 '운전병 대기실'에 앉아 그 방에 있는 수 백 권의 책 중 아무거나를 임의로 꺼내 읽었다. 그리고 부대 내에 있는 책들 중에서도 재밌어 보이는 책들을 골라 읽었다. 당시 내가 주로 읽었던 책들은 '여행서적'이나 '자기계발서', '추리소설' 등이었다. 읽고 읽고 읽다 보면 관심사는 넓어진다. 당시 '창판협기'라는 무협판타지 소설도 읽었었는데, 거의 처음 읽었던 무협지였다. 어린시절 친구가 빌려줬던, 책들 중 '소드엠페러'라는 무협판타지 소설도 있었다. 그때, 1, 2권 까지 읽었던 기억은 있다. 그 뒤로 '창판협기'라는 소설을 읽었다. 무협지는 마니아 층이 많은 분야로 마니아들 중에서는 해당 책에 대해 '좋은 평'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평들도 있어 보였다. 어쨌거나 어린시절 친구가 빌려줬던 무협지를 읽을 때, 어머니는 "'무협지' 읽지는 읽지 않는 것이 좋다" 라고 하셨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너무 '흥미' 위주의 책이라 그러셨던 것 같다. 다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무협지도 '독서'의 일종이자 굉장히 중요한 분야다. 심지어 '해리포터'와 같은 판타지 소설 작가도 세계적인 명성을 갖게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인식이 그렇지 않은 듯하다.

 '흥미위주의 독서는 하지마라'는 너무 어른들다운 생각인 것 같다. TV를 보되 '흥미 위주의 TV시청을 하지마라. 오로지 다큐멘터리만 보거라'라고 말하면 TV에 대한 관심은 당연히 떨어진다. '판타지', '무협지', '추리소설', '만화책' 등의 흥미 위주의 독서 편식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이든 '독서'를 권장하는 것이 좋다. 일과를 마치고 은은한 조명 등만 켜놓고  맥스 귀마개를 껴놓고 내 숨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추리 소설'을 읽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앞으로 서점에가면 비슷한 추리 소설을 더 골라 놓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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