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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r 27. 2022

[생각] 세상은 오로지 현실에 대한 당신의 해석일 뿐


 * 내용 중 영화 스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을 처음 봤을 때가 기억난다. 이 영화에 대한 충격은 엄청났다. 재밌게 잘 봤던 영화다. 영화에 대한 충격은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 있었다. 평화로운 '이선균' 네 가족 집으로 '송강호' 네 가족은 들어온다. 하나 둘, 평화로운 가족의 일상으로 다른  가족이 '기생하기 위해' 들어온다. '송강호'네 가족은 마치 다른이들의 집을 자신의 집인 것 마냥 눌러 앉는다. 마음대로 쓰고, 마음대로 사용하며 남을 속이고 연기한다. 외부의 그들이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평화롭고 일상적일 '이선균'의 가족은 영화의 결말에서 비극을 맞이한다. 행복한 생일 파티에서 흉기를 들고 덤비는 외부인 '송강호' 때문이었다. 영화가 마무리 되고, 의심할 여지 없이 누구나 '이선균' 가족의 불행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았다. 굳이 어떻게 해석하기위해 영화를 들여다 본 것은 아니었는데, 생각보다 내 해석은 독특한 편이었다. 무고한 이들의 집과 일상에 침입한 '기생충들'의 죄를 말하는 비극적인 영화라고 생각했다. 다만, 함께 영화를 본 이는 이 영화의 후반부에 복수하는 장면이 속시원하다고 말했다. 놀라운 것은 나나 상대나 모두, 이 영화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고민한 것이 아니라, 그냥 영화가 주어지는 정보를 차근 차근 받아들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같은 영화를 보고 이처럼 다른 시각이 있다. 이것은 지금도 지금도 충격이다. 해석은 언제나 사후에 발생한다. 일이 모두 진행되고 나서 하는 일이다. 



 다음은 누군가의 일기장이다. 그의 일장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나는 그 칼을 들어 놈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점점이 난도를 쳤다. 2월 추운 새벽이라 빙판이 진 땅 위에 피가 샘솟듯 흘렀다. 나는 손으로 그 피를 움켜 마시고, 또 피를 내 얼굴에 바르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장검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면서...(중략)"


 이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들지 생각해자. 이에 각자 많은 대답이 나올 것이다. 윗글은 '백범일지'의 내용이다. 해당 글은 '백범 김구 선생'의 글이다. 이 사건에 관한 글은 사실관계에 대해 명확히 말하기 어렵기에 언급하지 않겠으나, '누가', '왜'라는 배경지식이 없다면, 도저히 해당글 만으로 좋은 해석을 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바구니 안에 공을 던저 놓는 일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실력있는 농구 선수의 업적이 되기도 하고, 멀리가기 귀찮은 게으름의 행위가 되기도 한다. 같은 '노래부르기'도 가수에게는 '일'이고, 노래방 손님에게는 놀이다. 행위는 같으나 그것에 어떤 이름을 붙이냐에 따라 노동이 되기도 하고 놀이가 되기도 한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땅이 산성화되는 것이 저지되야하고 토양에 공기가 통할 수 있는 공기층이 있어야 한다. 땅에서 열이 발생하여 병원균과 잡초의 씨앗이 죽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짚, 잡초, 낙엽과 가축의 똥이 발효된 퇴비를 뿌려야 한다. 이처럼 이로운 퇴비지만,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 뿐이지, 사실은 '가축 똥'이다. 이 이로운 물질은 밭에서는 이로우나 식탁 위에서는 구역질 나는 '똥'으로 불려진다. 상황과 시간 등에 따라 모든 것은 '금'이 되기도 하고, '똥'이 되기도 한다. 



 내가 어린 시절, 갈치는 종종 식사 반찬으로 올라왔다. 저렴한 가격에 조리하기 쉬운 탓에 제주도에서는 일종의 서민 음식이었다. 굵은 소금이 대충 뿌려진 갈치 구이는 점심식사에 적잖에 올라왔다. 국은 물론 찜 등 갈치는 여러가지로 조리되어 올라왔다. 이처럼 쉽게 구해 먹던 값 싼 물고기가 지금은 어마어마한 가격이 됐다. 무려 kg당 25,000원이 넘고 가끔은 6만원 선으로 오르기도 한다. 제주에 가면 이런 은갈치 맛집이 있다. 거금을 주고 몇 번 먹어보긴 했으나, 어린시절 갈치보다 기가막히게 맛있어졌다는 생각은 들지 못했다. 그저 어린시절 먹던 갈치다. 그런 갈치가 지금은 인기도 많고, 별미라고 사람들은 찾는다. 그 짧은 시간에 갈치가 맛이 있을 수 있도록 진화의 과정을 격은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비싼 돈을 주고도 사먹는 음식이 됐을까. 그렇다. 세상은 오로지 현실에 대한 나의 해석일 뿐이다. 길에서 주운 나뭇가지를 짚으면 지팡이가 되고, 휘두르면 몽둥이가 된다. 거기에 이름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정체성이 정해질 뿐이다. 누군가는 '반 밖에 없는 물컵'을 들고 서 있고, 누군가는 '반이나 차있는 물컵'을 들고 서 있다. 물이 실제로 얼마나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 모두는 매 상황마다 이름짓기를 하며, 대부분은 거기에 부정적인 이름을 갖다 붙인다. 생각해보면 똥을 집어 들어도 나무에 뿌려주면 거름이 되고, 돈을 주워 들어도 무인도에 갇혀 있을 땐, 얼마 타지도 않는 종이 쪼가리일 뿐이다. 나는 오늘 하루에 무슨 이름을 붙이고 있는가. 상당히 예민하게 보냈던 하루에 나는 불필요한 '불운'의 딱지를 붙여 짧은 인생에 오점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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