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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May 31. 2022

[집필] 회색 소년_1화

 누구냐 묻는다. '너 이기도 하고, 나 이기도 해요.'

무엇이냐 묻는다. '존재이기도 하고 무존재이기도 해요.'

 나이를 묻는다. '어리기도 하고 늙기도 해요.'

 소년은 묻는 말에 모호한 대답을 내놓는다. 소년을 바라보던 의사는 소년의 눈을 한참을 바라보다 묻는다.

'너의 이야기 좀 해 줄 수 있겠니?'

소년은 의사의 눈을 한참동안 보더니 눈동자를 떼어 오른쪽에 있는 큰 창가를 바라봤다. 창가에는 커다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소년은 한참을 흔들리는 나무가지를 바라본다. 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를 치고 지나갈 때마다 만들어내는 휘파람 소리를 듣는다. 소년은 다시 의사를 바라본다.

 '제 말을 믿어 주실 껀가요?'

소년은 입을 뗀다. 고작 10살이 넘었을 법한 소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의사는 궁금했다. 아들 뻘 되는 소년에게 눈을 맞추고 '환자'가 아닌 눈빛을 하겠노라고 의사는 다짐한다.

 '믿기 힘드실 거에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소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영혼 없는 기계가 뱉는 음성과도 같았다. 굳이 소리에 색깔을 표현하자면 회색과 같았다. 

 '제 이야기를 듣고 소견에 조현병이나 망상장애 쯤 쓰시겠죠. 리스페리톤이나 아피리졸 따위 처방해 주실 생각이시면 됐어요. 어차피 목구멍으로 넘겼다가 화장실로 가서 토해낼 거에요.'

 의사는 쥐고 있던 연필을 내려놓고 소년에게 다가가 두 손을 잡는다.

 "약속하마."

 "진찰하지 않으마. 사람 대 사람으로 지금 오가는 이야기를 믿으마."

젊은 의사는 10세의 어린 소년의 손을 움켜 잡았다. 소년은 표정없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의 눈은 다시 큰 창으로 향했다. 바람이 다시 분다. 바람은 나뭇가지 사이를 스치고 지나가며 휘파람 소리를 만든다. 

 "물 이야기 아시나요?"

소년은 묻는다. 역시나 표정은 회색이다. 

"물 이야기가 뭐니?"

의사는 소년의 뜸금없는 질문에 당황한다.

 "물을 데우면 역시나 물이에요. 조금 따뜻해지면 수증기가 피어 나요."

소년은 창가에 있는 나무를 바라본다. 그러나 입은 계속해서 움직인다.

 "정확히 몇 도에서 부터 수증기가 올라오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건 그것을 수증기로 부르느냐, 물이라고 부르느냐는 의미가 없어요. 그냥 물이죠."

의사는 허리를 펴고 의자에 등을 붙인다. 

"그렇지. 형태가 달라져도 물은 물이지."

소년은 한참을 창가를 바라본다. 적막이 조금 어색할 때 쯤 소년은 다시 입을 뗀다.

"냉동실에서 얼음을 꺼내면 마찬가지로 하얀 수증기가 나와요. 그 또한 '물'이죠."

소년은 비어있는 눈동자를 다시 의사에게 가져다 놓는다.

"저는 물이구요."

"의사 선생님은 수증기에요."

소년은 의사가 책상 위에 올려 놓은 펜을 집고 말한다.

 "이 펜은 '얼음'일 수도 있어요."

 "본질은 모두 같아요. 그 형태는 달라져도 사실 다 같은 거 잖아요?"

아이의 철학적인 전개에 의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그게... 너의 이야기와 무슨 관련이 있니?"

의사가 따뜻한 표정으로 다시 묻는다. 소년은 잠시 천장으로 눈동자를 향하여 고민하는 듯 하다가 대답을 내어 놓는다.

 "저는 '제'가 '저'이기 이전의 기억이 자꾸 떠올라요."

"저를 구성하고 있던 세포는 두어달 전에 먹은 딸기맛 우유일 수도 있었어요. 지금은 저구요. 딸기맛 우유는 이전에는 '암소'였구요. 암소는 이전에 풀이었어요."

 의사는 말없이 잠시 왼쪽 위로 눈동자를 올려 고민하더니 펜을 들고 적는다.

'조현병이나 망상장애. 리스페리톤이나 아피리졸 처방 요망'

의사는 펜을 내려 놓는다. 아이는 의사를 빤히 쳐다본다. 의사의 표정은 해답을 찾은 것처럼 그랬다.

아이는 말했다.

"선생님, 얼음이 물이되고 수증기가 되는 것은요. 기가막힌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종에 규칙이에요. 적정한 온도가 되면 그 형태를 바꿔요. 제가 의사 선생님의 내일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도 같은 소견을 적으실 껀가요? 선생님 아이는 혼자 두지 마세요."

아이의 표정은 진지했지만 의사는 그냥 웃었다.

"그래 알겠다. 혼자 두지 않으마."

아이는 진료가 끝났음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 진료는 이만하면 됐구나. 우리 다음주에 한번 더 봐야 하는데, 언제쯤 괜찮겠니?"

의사는 물었지만 아이는 다시 말했다.

"다음주 화요일이요. 다음주 화요일에는 절대 혼자 아이를 두지 마세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말씀은 여기까지에요."

 아이는 선생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그냥 일어서서 진료실을 나가 버렸다. 아이의 얼굴은 역시 '회색'이었다. 의사는 아이의 말에 큰 뜻을 두지 않았다. 벌써 십 년도 넘게 진료를 하고 있지만, 비슷한 상황은 몇 번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업 초기에는 불쾌한 이야기를 들으면 몇 번이고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못했으나 지금은 무덤덤했다. 

 조금 얇게 열려 있는 진료실 문 사이로 아이가 손을 흔든다. 역시나 그의 표정은 무표정이었다. 아이의 입이 조그맣게 움직인다. 

'화요일이에요.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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