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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인환 Jun 06. 2022

[일상] Hygge: 오늘의 작은 행복을 즐기기

행복이 무의식에도 꽂혀라

 Hygge:  휘게, 아늑하고 기분 좋은 상태,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소박한 일상을 중시하는 덴마크와 노르웨이식 생활 방식

 아이와 함께 할 때 독서하는 것 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 무언가를 읽고 싶은데 집중이 되지 않아, 음독할 수 밖에 없다. 서재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오늘 집어든 책이 'Hygge'에 관한 책이다. 어쩌면 내일이나 그 다음 날 정도 리뷰를 올리지 않을까 싶은데 절반 정도를 읽다보니 아이에게 꼭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나온다. 그림 그리는 것을 '숙제'라고 부르는 다율이가 숙제를 할 때 옆에서 책을 읽어 달라고 한다. 조용히 해당 책을 들고 옆에서 음독한다. 당연히 아이는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옆에서 대략 100분 정도를 읽어 준 것 같다. 'Hygge(휘게)'는 정확히 번역하기 힘든 개념이다. '행복'과 비슷하고 '여유'와 비슷하지만 또 무언가 다르다. 북유럽 사람들은 이 'Hygge'라는 단어를 명사, 동사, 형용사 등으로 바꾸 자주 사용한다. 우리는 줄임말로 있는 말도 줄이지만, 이들은 'Hygge'를 이용한 신조어를 만들어 내는 모양이다. 소박한 행복을 즐기는지를 서로에게 빈도있게 살피는 문화가 참 가슴 따뜻하다. 주변을 살펴보면 '파이어족'이나 '경제적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으나 언제부터 누군가를 만나면 '행복한지'보다 '돈 벌이가 잘 되고 있는지'를 궁금해 한다. 오래 전 이 땅에서도 사실 사람을 만나면 가장 궁금했던 것이 '안녕(安寧)'한지 였다. '안녕(安寧)'이란 평안하고 안정적인지를 확인하는 인사다. 

'안녕(安寧)하신가요?'라는 질문이 '인사'가 된 걸 보면 이 땅이 예전에 북유럽만큼이나 행복에 기민했던 모양이다. 

 서로가 서로의 행복을 기원하는 문화를 유토피아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오늘 우리집에서 'Hygge(훼게) 할래?'라고 묻는 문화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갓 내린 따뜻한 커피에 설탕이 잔뜩 들어간 케이크 한 조각, 인위적인 '향기'가 없는 '초'를 준비하고 사람들과 모여 저녁식사나 차를 마시는 문화는 정말 어려운 일일까. 저녁 6시면 식당 주인이 가족과 저녁식사를 하러가기에 문을 연 식당을 찾기 어렵다는 '뉴질랜드'에 살면서 나는 생각만큼 여유를 배우고 오진 않은 모양이다. 재밌다는 TV프로그램을 켜놓고 이어폰을 귀에다 꽂는다. 베니다판으로 겨우 칸을 막은 싸구려 아파트에서 이어폰을 착용하지 않고 영화를 틀어놓는다는 것은 매너가 아니였다. 300불 짜리 싸구려 도시바 노트북에 이어폰을 주렁주렁 달아서 귀에 꽂아 놓으면 노트북 냉각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무의식'에서라도 '영어가 들어 박히길 기대했던 부질없는 나의 젊은 시절은 그렇게 여유가 없었다. 그 시절 그렇게 절박해서 그런지 종종 꿈에서 영어를 사용하곤 했는데, 대화 내용은 기억에 나지 않지만 그 감정은 선명히 남아 깨어냈다. 아이는 내가 잠시 멈추면 '왜 안읽어?'하고 되묻는다. 아이의 무의식 속에 'Hygge(훼게)'가 들어 박히길 간절히 바라며 한참을 읽는다. 보통의 아버지와 다르게 나는 '향'이나 '초'를 종종 켠다. 물론 사고가 날지 몰라, 자주 키는 법은 없다. 될 수 있으면 TV나 스마트폰을 아이 앞에서 보려고 하지 않지만 쉽지는 않다. 

 오늘은 아이들과 아웃백을 다녀왔다. 스테이크에 감자튀김을 먹고 왔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종종 먹었던 조합을 시켰다. 주급으로 받아든 급여는 '저축용'이 아니였다. 적지 않은 주급이 들어오면 이를 일상에 시원하게 써버려도 다음주면 다시 채워졌다. 언제 일을 그만둬도 적잖은 급여를 받을 자신이 생기면 미래를 위해 현재를 가난하게 살 이유를 찾지 못한다. 아마 한국에서의 개념에서는 '참 대책없다'할 수 있겠지만 각자가 각자의 생존을 위해 '미래의 도토리를 저장하는 다람쥐'같다는 생각이 든다. 곰이 동면에 취하기 직전에 급격하게 체중을 불린다고 한다. 겨울이 오면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워 급히 에너지를 충당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언제 기근해 질지 모르는 상태라면 급하게 먹어 살을 찌운다. 미래가 불안할수록 폭식을 통해 미래의 식량을 미리 섭취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여기는 이유는 그것이 현명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지금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오롯하게 현재를 즐기기 위해서는 '미래'를 대비해야 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미래라는 것은 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지평선 같은 것이다. 지평선을 목표지점으로 잡으면 언제도 도달할 수 없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말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를 즐기라'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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